도두봉을 출발점으로 바닷가 따라 터벅터벅 걷기 시작한다.



낚시하기 좋은 갯바위들이 이어지는 바다풍경, 여름이면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바람이 불어대고 있었지만 오랜만의 따스한 휴일을 맞은 어느 나들이 가족이 갯바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도두봉에서 용두암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엔 이따금씩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물새들이 모델이 되어주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내려가 바다로 가까이 가보면 제주바다의 자랑은 뭐니뭐니해도 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의 맑음 그 자체란걸 알 수 있게 해준다.

도두봉에서 제주시내 쪽으로는 행정구역상 도두2동, 옛날엔 몰래물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던 곳이다. 몰래물은 모래와 물을 합친 말로 모래가 있는 곳에서 물이 솟았기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네는 없어졌는데 아직도 몇 채의 가옥이 남아 있다. 옛날 집들은 바닷가의 세찬 바람에 적응하기 위해 길 아래 납작 엎드려 있다. 1970년대 당시 초가집이 태반이었던 제주시의 집들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되었는데 아마 그 때 다시 지어진 집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듯 하다.

포구. 달랑 배 한 척만 정박되어 있었다.

다른 배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휴일이건만 고기잡이 나가지는 않은 것 같은데....

바닷가는 오로지 물새들만 지키고 있다.

이 몰래물 마을은 신사수동(新沙水洞)이라 불리기도 한다. 새몰래물 마을이란 뜻이다. 원래 400년 전에 형성된 몰래물 마을은 일제강점기인 1941년, 이 곳에 일본군의 비행장이 만들어지면서 동네일부가 강제로 이주 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해방 이후 다시 땅을 되찾아 새몰래물 마을이 되었지만, 1978년 제주공항이 국제공항으로 승격되면서 마을 전체가 공항부지로 수용되어 결국 몰래물 마을이 사라지게 되고 주민들은 주변 마을로 이주하게된다. 지금은 군데군데 펜션과 횟집만 자리하고 있을 뿐 오손도손 모여 살았던 마을의 자취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고향이란 거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겐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몰래물 마을의 향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엉물언덕이라 불리는 바닷가 작은 터에 공원을 조성하고 기념비를 세워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언덕에는 정지용의 시 '고향'을 새긴 비석을 세워 마을이 사라져버린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싼꽁이 알을 품고 뻐꾸이 제 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진하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베 끝에 홀로 오르니 힌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예로부터 제주도의 해안가에는 용천수가 솟아나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몰래물 마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엉물언덕이란 이름 또한 이 용천수로 인해 비롯되었다. 엉물의 '엉'은 언덕을 이르는 제주도 사투리이다. 

물이 솟아나오는 곳은 두 군데, 마을은 사라졌건만 그 옛날 몰래물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생명수는 지금도 끊임없이 솟아나오고 있다.


용담-이호 해안도로엔 드라이브 나온 차량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걷기에 더 좋은 길, 나들이 나온 한 가족이 정겨워 보인다. 부럽기도 하고...

걷다보니 방사탑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의 지형 중 기가 약한 곳에 쌓은 돌탑으로 부정과 악의 출입을 막아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토속신앙의 한 표현이다. 이제 길은 옛 어영마을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