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여행 매거진 리스트 - 여성포털이지데이

유후인의 거리를 걸으면 삼청동이 생각날 거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며 여자 여행객들이 좋아할 곳이지만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넌스레를 떨던 말까지 함께 기억했다. 뭐랄까 옷이나 액세서리, 기념품등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둘러본다는 게 나에겐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 연상되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농담이었다. 그리고 나도 사실 반쯤은 공감하는 바이기도 했다. 막 풀어놓은 강아지마냥 산야강해를 뛰어다니는 건 좋아해도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들에 대한, 특히나 그것들이 한군데 뭉쳐있는 것은 잘 보지 않는 사람이 또한 나였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해거름이 내리고 때론 비가 내려 촉촉해진 유후인의 거리를 걷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건 어쩌면 낯선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일말의 설렘과 너는 아마 제대로 매력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장담했던 것들이 대한 반동 심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슬쩍 들긴 하지만 말이다.

유후인에는 진정 예쁜 가게들이 많았다. 지갑이나 유리공예, 아기자기한 소품에서 아이스크림, 차, 카페, 떡, 갖가지 식당, 카페에 그리고 작은 갤러리와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즐비한 곳이라고 할까. 굳이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내가 아는 한에서는 삼청동도 그렇지만 홍대의 거리와도 조금 닮은꼴 같기도 했다. 하여간에 하루 종일 걸어도 지루하지 않을 곳이라는 것에서는 그저 몇 번을 이야기해도 아쉬울 것이 없다는 게 결론이었지만 말이다. 그 중에서도 몇 개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유후인 포스팅을 보면서 유명하다고 생각되었던 곳이 ‘bee honey-하치미츠노모리’ 라는 옥색 건물의 벌꿀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처음에는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라 밖에서 유심히 쳐다보다 꿀인지 잼인지를 팔고 있는 것을 보고 꿀을 파는 곳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스크림 가게로 밝혀졌다. 유후인에서도 디저트 아이스크림으로 알려진 곳으로 잠시 서 있는 와중에도 많은 손님들이 출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후인에서 제일 알려진 곳은 롤케이크 상점인 B-speak였다. 유후인에서 약 300m 정도 떨어진 삼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깔끔한 인테리어 덕분에 처음엔 이곳에 그 롤케이크 가게가 맞는지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하나 사서 먹어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커다란 케이크만 살 수 있어 그걸 사자면 다 먹을 자신이 없어 포기해야했지만 대신 비도 피할 겸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달콤한 롤케이크와 담백한 커피 한 잔으로 몸도 녹이고 오후의 피로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눈이 즐거운 곳도 있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장식품이며 액세서리,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인 가라스노모리이었다. 짙은 녹색의 긴 지붕의 서양식 예쁜 건물을 한 곳으로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안을 들여다보자니 그렇게 따듯해 뵐 수가 없었다. 슬며시 안으로 들어서니 포근한 주홍빛 조명 아래 우윳빛 유리공예들이 반짝이며 진열되어 있었다. 하여간에 해외로 여행을 나오면 그다지 무언가 선물을 사가는 적이 없던 나에게 유일하게 선물 될 만한 것 좀 사볼까 고민하게 만든 곳이었지만 결국 제법 높은 가격과 배낭에서 깨어지지 않고 끝가지 무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포기하게 만든 곳이기도 했다. 1층에는 다양한 종류의 오르골들이 있어 오르골 특유의 맑은 소리가 간간이 들리기도 했다.

공상의 숲 아르테지오를 향하는 길은 좀 만만치 않았다. 공상의 숲이라는 멋진 이름 덕분에 가고 싶었던 곳이어서 간 곳이었는데 인적은 드물고, 차는 거침없이 달리는 완만하지만 끊임없는 오르막길이었던 것이다. 헉헉거리며 올라가다 카페 하나를 지나가는데 낙엽을 쓸던 종업원 아가씨가 반가운 목소리로 ‘곤니치와’ 인사를 건넨다. 화답하고 좀 더 올라가고 나서야 조금 무섭다 싶을 정도로 한적한 곳에 아르테지오의 간판이 눈에 뜨였다. 아르테지오에 오고자 했던 건 전시의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보단 레스토랑에서 런치를 먹을 예정이었다. 공상의 숲이라는 이름도 매력적인데 식사 또한 꽤 괜찮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약간의 현금만 가지고 왔던 난 레스토랑의 런치 가격을 완전 잊어버리고 있다 점심을 먹을 돈이 모자랐던 것에 더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통 건물을 둘러보아도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찾고 난 후에야 회색 모던한 건물의 회랑에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오늘 휴관인지 닫혀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찾기가 쉽지 않았었다는 것을 안 것은 약 20여분을 주변을 배회한 후의 결과였다. 소기의 목적 달성도, 곁들여진 전시 구경도 할 수 없는 조금은 허무한 공상의 숲과의 만남이 그렇게 어이없이 끝이 나버렸다. 주변의 다른 전시관을 가려 해도 오늘 날을 잘못 잡은 것인지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고, 결국 터덜터덜 오던 길을 내려가며 아까 마주했던 종업원과 다시 눈인사면 나누어야했다.

유후인의 해가 지는 거리를 걷다 우연히 들어선 곳에서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와도 만났다. 민속건물들이 즐비한 상점가인 야스라기 유노츠보 요초코이다. 그 중 한 상점에 저녁의 휴식을 즐기는 건지, 아니면 보금자리에서의 편안함을 만끽하는 건지, 아니면 무대가 열리길 기다리는 배우인건지 알 수 없는 두 마리의 고양이는 ‘かわいい (가와이)’ 를 외치는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그 도도함을 잃지 않았다. 그저 너무 극성스럽게 사람들이 좋아하면 팬 관리 차원에서 슬쩍 야옹 하며 애교를 부려주는 정도의 감칠맛만 전할뿐.

누군가 내에게 유후인에 대해 물으면 나는 그곳이 적당히 귀엽고,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아기저기 하며 그러면서도 사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즐비한 상점 거리의 유후인은 아기자기하고 깜찍한 이미지가 강했지만 아무래도 잔잔한 긴린코의 유후인은 깊은 생각을 하며 앉아 있기 좋은 곳인지라 후자쪽이 나에겐 더 매력적인 탓이었다. 무엇이 당신에게 더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뭐 하여간 유후인만큼 작고 아담하면서도 다양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 지역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