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은,
신발 끈을 묶고 현관문을 나서는 싯점이 아니라,
그 여행을 기안하고 설계하는 순간부터이다.
출발하기 전까지의 기나긴 기다림과 설렘,
그리고 상상 또한 그 여행의 일부라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괴나리 봇짐을 안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기다림의 허상은 긴박한 실상이 되고
막연한 설렘은 눈앞의 노동으로,
아련한 상상은 가혹한 고생으로 탈바꿈한다.
심지어 혹자는 여행을 일러
"개고생"이라고까지 가혹하게 말한다.
내돈 주고 선택한 개고생의 길...
저녁 8시 무렵,
우리가 도착한 곳은 우루무치역!
내일 돈황을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열차를 타고 긴 밤의 여행을 해야만 한다.
무려 1,000km의 대장정!!
이곳 신강성의 철도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우루무치 기차역도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62년에야 개통되었다. 이전의 중국 서부지역의 철도는 감숙성(甘肅省)의 성도인 난주(蘭州)까지였다. 1950년, 중국보다 훨씬 선진 대국이었던 소련의 원조와 지원이 절실했던 중국이 그 필요에 의해 1962년, 비로소 난주에서 우루무치까지 1892km의 난신선(蘭新鐵路)을 개통,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역사는 2004년 개축한 것!
그런데 여기서는 공공건물에 들어갈때마다 삼엄한 검문을 받아야 한다.
심지어 기차역에서도!!
게다가 검표 과정도 무려 3단계에 걸쳐서 실시하는데...
공항도 아닌데, 자국민은 주민등록증 검사,
외국인은 여권검사!
기차표에 있는 주민번호, 혹은 여권번호와 일일이 대조해본다.
그만큼 주민들의 이동과 흐름에 예민하다.
언제 어디서 행인들이 모여 불순한 목적으로 중국정부에 대항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반증이기도!!!
이 사진만 본다면 누가 기차역의 풍경이라고 할까!
재미있는 건 칼 반입 금지!
여행객들의 필수품인 다기능 맥가이버 칼도 여기선 모두 내놓아야 한다.
내놓으면 어떻게...?
다시 찾으러 먼 길을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버리는 셈 쳐야 한다.
일찌감치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줬던 가이드 덕분에,
칼을 소지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타고 다녔던 버스의 기사에게
모든 칼을 다 맡기고 왔다.
그와는 사흘 후 다시 재회할 것이므로...
기차 안에서 일어나게 될 칼부림?
미리 차단하는 건 좋은데,
과일 하나 못 깎아 먹으니,
좋은 용도로 갖고 다니는 사람들은 조금 불편해진다.
우루무치에서 밤 9시 22분에 출발하는 기차,
유원으로 향하게 된다.
이 차는 침대차인데,
9호차 14호 윗칸 침대를 이용하라는 것이 표기되어 있다.
기차요금은 287위안!
시내 버스 요금의 287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52000원 정도 되는 셈!
거리는 앞서 언급한대로
1,000km!
도착 시각이 정확히 나와있지 않은 이유는
중국 기차는 연착을 밥먹듯 하기 때문에
도착 시각이라는 게 따로 없다고...
다음 날 아침 9시쯤 도착한다고 하니,
12시간 정도 가야하는구나...짐작만 할뿐!!
현재시각은 밤 8시 59분!
그런데도 밖은 아직 대낮이다.
이대로라면 밤 9시 30분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일몰을 보게 될듯~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지하도 계단을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는데,
다들 묵직한 여행 트렁크를 갖고 있는 터라 여간 힘든게 아니다.
기차역에 에스컬레이터가 없으니,
일일이 무거운 가방을 낑낑거리며 들고 오르내려야 하는 상황!
힘들게 오른 기차 내부는 마치 게스트하우스 같다.
왼편으로 문이 보이는데,
이렇게 문이 달려 있는 것은
침대칸 중에서도 특실에 속한다고...
살짝 문이 열려 있는 칸을 들여다보니,
이전 역에서부터 이미 취침 상태인 사람도 보인다.
오늘 우리와 함께 동거를 하게 될 룸메이트는 60대 부부!
침대 열차는 처음 타보는 터라 모든 것이 낯설다.
그나저나 저 2층으로는 어떻게 올라간다??
탁자를 밟고 올라가야 하나?
두리번거리던 중 벽에 붙어 있는 작은 편자 같은 것을 발견했다.
거기에 잠시 한발을 의지하고 2층으로 뛰어올라야 하니,
보통 힘든게 아니다.
그래도 베개와 이불 완비!
좁긴 해도 그리 나쁘진 않다.
룸메이트가 된 아주머니는
얼마전 인도에 갔다가 침대 열차를 탔는데,
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그 밤이 악몽 같았다고 한다.
거기 비하면 여긴 호텔 수준이라는 말을
다음 날 아침까지 10번도 더 하셨다. ㅋ
공용 세면실!
물론 물이 줄줄 나오는 정도고,
샤워나 머리 감기는 꿈도 못 꾸지만,
세수와 양치질 정도는 불편함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어디인가!!
이곳은 식당 칸!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간식과 음주로 시간을 보내기도...
밤 10시쯤...
서서히 하늘이 붉게 물든다.
해넘이가 시작된 것!
풍력발전기가 쉼없이 돌아가는 걸 보면 이 기차도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는 듯 하다.
룸메이트가 된 기념으로 우리 방에서는 작은 술파티가...
46도짜리 조금 쎈 술로. ㅋ
열차에 승차하기 전에 미리 약간의 안주를 곁들여 준비해둔 터였다.
목이 타 들어갈 정도의 독주에 시속 100km의 음주 주행!
더러 이런 오지에서의 밤은 정신줄을 놓아도 좋다.
11시간을 달리는 야간 열차의 체감 속도는 "금방"이었다.
그래서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도 불면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날 밤,
육신은 이즈음에서 쉼표를 찍으려 하는데,
발밑이 궤도에서는 하염없이 갈 길을 재촉하고,
그렇게 그 밤은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나그네의 시신같은 육신을 싣고
2,500릿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기차는 허허벌판 사막을 달리고 있다.
어제 저녁에 본 화면 그대로...
마치 일시정지 화면을 보는 듯, 똑같은 장면이 아침까지 이어서 상영되고 있었다.
무려 열 시간도 넘었는데...
아침 햇살을 받아 사막은 황금의 땅으로 변해있다.
버려진 땅이 너무나 많은 중국!
비록 황무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땅떵이가 넓은 중국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황무지 같은 그 땅에도
빨대만 꽂으면 석유가 넘쳐나고,
쇠스랑으로 살짝 긁기만 해도 석탄이 쏟아지니...
어쩜 주변에 산도 하나 없는지,
보이는 건 모조리 지평선이다.
이곳도 조금씩 개발붐이 일고 있는지,
간간이 공사현장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아직은 여백이 대부분이다.
그 광대한 여백에다 어떤 밑그림을 그려넣고,
얼만큼의 채색을 덧칠하게 될지...
궁금증보다 두려움이 먼저 다가온다.
가게와 사람 사는 집들이 하나씩 등장하는 것은
조만간 곧 도시가 나올 거라는 전주곡이다.
옆방에 투숙한 중국 아이들!
우리는 여행을 간다지만,
너희들은 1,000km 이상 달려 어딜 가는거니?
물어보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하는 관계로...쩝~
너희들이 커서 이 대륙을 지배할 무렵,
그 때는 과연 어떤 모습의 중국이 되어 있을까...
좁은 땅에서 비좁게 성장한 우리 땅의 아이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오늘 같은 아침을 맞이할까...
아침부터 괜히 생각이 많아진다.
지난 밤 독주에 취하고 야간열차에 흔들린 탓이다!
드디어 도착했다.
유원역!
우루무치에서 돈황을 가려면 반드시 경유해야하는 기차역이다.
유원 (류위안-柳園)!
이곳에 자생하는 홍류(紅柳-주로 사막 지대에 자생하는 키 큰 나무의 일종)가 특히 많아서 붙여진 지명!
여기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오른다.
이들은 또 어디로 얼마나 달려가야 하는 걸까...
밤엔 자면서라도 온다지만,
낮 시간엔 긴거리를 달린다는게 여간 지루한 일이 아닐텐데...
밤새도록 철길에 시달린 나그네는
팔자에 없는 남 걱정으로 아침부터 정신줄을 추스린다.
이동식 구내 매점! 평상시 같았으면 냉큼 달려가서 어떤 흥미로운 먹거리가 있는지, 요모조모 들었다 놨다하며 이국의 입맛을 궁금해 할테지만, 지금은 입안이 사막처럼 건조하다. 게다가 잠에서 덜 깬 몽롱한 아침멀미로 패스~!
수천릿길 마다않고 나를 무사히 실어다 준 대륙의 열차에 그렇게 등을 돌리고 나그네들은 제 갈길을 간다.
유원역은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역이다.
단지 간판의 글귀들만 생소할 뿐!
이른 아침(9시) 이라 거리는 한산하다.
아직은 하늘의 열기도 참을만하다.
여행은 사서 하는 고생이 확실하다.
만일 어느 누가 약간의 일당을 주면서 하라고 한다면
짧은 기간으로 한 두번은 몰라도 오랜 시간은 어림없는 일이다.
그 고생길을 나설 때마다
항상 고맙고 감사함을 느낀다.
아직도 두 무릎이 건강하고 체력이 뒷받침되어 준다는 것!
동행했던 몇 분이 건강과 무릎 불편으로 여행 자체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내가 가진 훌륭한 자산을 새삼 실감했다.
아무튼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한다.
실크로드의 중심지!
보물의 중심지!
돈황을 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