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엔 부모님과 떠나는 드라이브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 어디를 가든 상관이 없었지. 그저 아빠가 “심심한데, 드라이브나 갈까?” 하고 말씀하시면, 온 가족이 우르르 마치 기다렸듯이 집 밖으로 달려 나가 차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떠났었지. 정말 아빠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알 수 없었어. 아니 사실 아빠조차도 계획이 딱히 있는 거 같진 않았어. 그저 우리에겐 차가 있었고, 지도 한 장만이 달랑 있을 뿐이었지.

드라이브는 1시간이 될 때도 있고, 반나절이 될 때도 있고, 하루 종일이 될 때도 있고, 어처구니없게 며칠 몇 박의 여행으로 이어지기도 했지. 그건 차라는 달리는 물체가 선사할 수 있는 가장 빠르면서도 자유로운 선물이었고, 계획되지 않은 것들의 무질서함이 주는 방기였어. 그 짜릿함이 내 여행의 토양분이 되어 지금의 나라는 싹을 키운 게 아닐까 난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지. 그래, 지금도 자라고 있는 ‘나’라는 나무는 그렇게 다독다독 보듬어지고 자란 걸지도 몰라.

굿샤로 호수를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보기 위해 비로호 고개로 향했어. 여전히 우린 차 안 이었고, 홋카이도의 이국적 풍경은 끊임없이 오르는 길 내내 이어졌지. 풀인지 대나무인지 아직도 파악이 안 되는 무언가가 바람에 따라 춤을 추고, 하얀 자작나무가 무리를 지어 자란 풍경은 이젠 차라리 평범함 마저 내포하고 있었지. 하지만 어느 순간, 난 또 다시 탄성을 터뜨리고 있었어. 마치 유럽의 고원을, 그래 스페인의 그 안달루시아를 떠오르게 하는 풍경이 여기 홋카이도 비로호 고개에서 보여 지고 있었던 거야.

산비탈에 아슬아슬 하게 놓인 검은 곡선의 도로와 녹색으로도 갈색으로도 보이는 수풀과 높은 지대에 올라갈수록 더욱 낮아지는 나무의 풍경을 어떻게 동양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높은 지대에 굿샤로 호수가 기적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거야. 넉넉한 호수는 커다란 나카시마 섬을 마치 어미 새의 알처럼 온유하게 품고 있었지.

아이누어로 목구멍 혹은 호수가 장을 빠져나가는 부분을 뜻하는 굿챠로에서 비롯된 굿샤로는 일본 최대의 칼데라 호로, 강산성을 띈 독특한 호수라고 해. 그래서일까, 굿샤로호의 물은 아름다운 비취색이지만 어쩐지 차가운 열을 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 그런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이곳엔 굿시라 불리는 미확인 거대 생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어.

비호로 고개를 츶은 날이 아주 좋은, 그야말로 행운이 따라주는 날씨였어.

토각토각

계단을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비로호 고개에서 굿샤로 호를 조망하는데 저 멀찍이 하얀 중절모를 쓴 듯한 산이 아스라하게 보이고 있었지. 정말 쾌청하게 맑은 날이 아니면 볼 수 없다던 샤리다케였어. 일본의 백개의 명산 중 하나이며, 아직도 잠자는 화산인 샤리다케를 볼 수 있는 행운이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었지.

비호로 고개의 가장 자리까지 걸어가며 가슴 가득 시원한 바람을 담고, 눈엔 푸른 굿샤로 호수를 담았어. 높은 고원이 주는 상쾌함과 호수가 선사하는 청량감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지.

다시 차를 타고, 올라온 만큼 내려가기 시작했어. 굿샤로 호수는 스나유, 온천이 솟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그걸 직접 만져보기 위해서였지. 살며시 호수로 다가가, 검은 모래 가 품고 있는 따스한 물에 손을 담갔어. 분명 바로 몇 걸음 앞의 호수는 차가운데 참 신기한 일이었지. 그 자세 그대로 눈앞의 호수의 풍경을 살폈어. 비호로 고개에서 내려다보던 장엄함은 그곳엔 없었지만 따스한 물이 솟는 곳에서 느낄 수 있는 포근한 오후의 햇살이 자리하고 있었어. 그 반짝거림을 어떤 색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수면에 반사된 빛은 황금빛도 은빛도 아닌 좀 더 오묘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냥 차라리 빛의 색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게 옳을까. 오후의 굿샤로 호는 정말이지 너무 따스해서 눈물이 날만큼 온화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