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미리 상상해보는 것이다.

여행을 갈 땐 그곳에서 만날 풍경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 예상은

완전히 들어맞을 수도 있고,

제대로 빗나갈 수도 있다.

여행 중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만났을 때,

그것은 신선함이라는 점수까지 더해져 꽤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울릉도에 문화예술공간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않았는데,

있었다!

예림원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그곳에서 나는 외쳤다.

"심봤다~!!"
 

신나게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말았다.

눈에 띄는 간판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자조각박물관>

'울릉도에도 박물관이 있네~ 그런데 문자조각은 뭐지?'

막연한 호기심으로 산아래에 있는 박물관으로 올라갔다.

주차장에 서니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저 안엔 도대체 뭐가 있길래...??

호기심 증폭!

입장료 4000원을 내고, 동굴 같은 입구로 들어갔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설렘 같은 것이 밀려온다.

동굴을 빠져나오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다.

꽃과 나무와 호수가 있고,

새들이 지저귀고, 개구리가 우는...

그런 무릉도원 같은 곳!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마련되어 있는데

꼭 뭘 해야하고, 반드시 뭘 봐야한다는

강박관념 따위는 잠시 내려놓고,

그저 느린 걸음으로 거닐기만 해도 좋겠다.

이건 "꿈"이다.

문자조각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글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문자 조각의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

게다가 그 문자 안에 적혀 있는 글들은 어찌나 마음에 와닿던지..

오래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등에 "행복"을 싣고 가는 달팽이 같다.

일곱획을 써야 완성할 수 있는 '행'이라는 글자가

어떻게 하나로 이어져 공간 속에 서 있을 수 있는지...

이런 작품을 하나 하나 완성해 갈때마다 만끽했을 작가의 행복이 느껴지는 듯 하다.

불?

새 두마리와 '불'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번엔 숨은그림찾기다.

...

잠시후 찾아냈다.

왼쪽 새 아래 부분에서 "더" 라는 글자와

오른쪽 새 아래에서 "어"라는 글자를...

더.불.어.

하늘(天) 향해 두팔 벌려

큰 대 (大) 자로 서 보니

이 또한 즐겁지 (樂) 아니한가...

뜻 모르고 보면 그저 멋진 조각에 지나지 않는데,

작가가 내어놓은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그 깊은 의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도 그랬다.

弗 (아니불)....뭐가 아니라는 걸까 궁금했는데,

그 아래에 절을 하고 있는 사람 (人) 이 있다.

두 글자가 더해지니

人 + 弗 = 佛

"부처 불" 자가 된다.

그러니, 마지막 네글자에 담긴 의미를 알겠다.

견성성불 (見性成佛)

참된 자기를 깨닫고 앎으로써, 깨달은 자가 되는것!

어디 내놔도 미모에서 빠지지 않는 야생화들도 곳곳에 잔뜩 피어 있는데,

다채로운 문자조각에 그 인기가 밀렸다.

오죽하면 나무들조차, 잎에다가 문자를 새길까..

낮은 언덕을 따라 올라가자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나온다.
이름하여 연인바위!

남녀가 각자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 바위 뒤에서 만나면

천녀의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단, 바위 뒤에서 뽀뽀는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런 신성한 무릉도원에서 뽀뽀를 해서 풍기문란을 일이키지 말라는 당부다.

그런데...

"하"...다음엔 "지마"를 건너 뛰고 "세요"로 가라고 그려져 있는 화살표를 놓칠 뻔 했다.

그러니, 바위 뒤에서 뽀뽀 하...세요??

어머나 세상에~

공공장소에서

"뽀뽀하세요" 라고 부추기는 건 처음 봤다.

아무튼 이곳 주인의 위트에 또 한번 웃고...

입장권을 살 때 매표소 아주머니가 당부했던 게 있다.

문자조각작품들만 보고 나오지 말고.

거북바위 위 전망대까지 "꼬오옥~~" 갔다 오라고...

아래에서 본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그래도 특별히 당부한 것이니, 못 이기는 척 올라가 보기로....

올라가는 길에 본 신기한 나무!

서로 다른 두 나무가 자라다가 가지가 붙어버리는 걸 "연리지"라고 하는데,

이 두나무는 아예 뿌리가 붙어 "연리근"이 되어버렸다.

느티나무와 풍게나무라는 전혀 다른 두 나무가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제대로 정이 들었나보다.

어쨌든 처음보는 연리근...

신기했다.

시원스레 떨어지고 있는 폭포!

인공폭포인가 하며 살짝 물음표를 찍어봤는데, 자연폭포란다.

도로변에도 떨어지는 폭포가 다반사거늘...

울릉도에 인공폭포가 있을거라 의심하다니...

살짝 미안해진다.

마침내 다다른 전망대!

바다의 품에 살포시 안기는 기분으로 전망대에 올라선다.

왼편으로는 현포항과 현포마을!

오른 쪽으로는 뾰족히 솟은 추산과

시원스레 뻗은 해안도로!

뒷편으로는 예림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지금껏 내가 봐왔던 그 어떤 풍경보다도 아름다웠다.

내려올 때 본 오묘한 자태의 나무...

동굴을 통과해 들어온 낯선 세상은

그야말로 신기한 것 투성이였다.

멋드러지게 생긴 이 나무는 주목나무임을 한눈에 알겠다.

그런데, 조금은 특별한 이름표를 달고 있었으니...

울릉도 최장수 주목나무!!

무려 1200년의 수령을 갖고 있단다.

천년 넘은 고목을 올려다봤다.

아직도 가지에선 초록 잎들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 신통해

1200년 넘은 어르신 나무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울릉도의 바람을 만끽하며 달리다가

즉흥적으로 들리게 된 예림원.

울릉도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문자조각박물관"엔

울릉도를 돋보이게 하는 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한 보물들을 만난 건, 분명 예상밖의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