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도 이름만으로도 친근한 곳이 있다.
내겐 선운사가 그렇다.
어느 봄날 바람결에 들려온 노래 한 곡!
| 선운사
송창식 작사,작곡,노래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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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로 시작되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
동백꽃 필 즈음이면 습관처럼 흥얼거리면서
언젠가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점찍어 뒀는데
바람 불어 설운 어느날!
작정한듯 선운사로 향했다.
선운산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오랜시간 산을 타야하나 했었는데,
선운산 입구에서 바로 만날 수 있었다.
피안처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 너머에 있는데...
다리 이름은 절묘하게도 "극락교"다.
이 다리를 건너는 모든 분들이 극락정토, 행복의 세계에 이르시길 기원합니다....
준공비에 적혀 있는 글은
피안으로 건너가려는 이의 다리에 더욱 힘이 들어가게 한다.
다리를 건너면 가장 먼저 <보왕삼매론>을 만나는데...
절에 가면 부처님께 빌고 싶은 내 소원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리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사는게 힘들지 않게 해주세요~
그 모든 것들을 바라지 말라고 일치감치 경고하고 있다.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니,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하는 일이 쉽게 풀리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니 여러 겁을 겪어 일을 성취하라고...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니 적은 이익으로 부자가 되라고...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사치한 마음이 생기니 근심과 곤란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돌아서면 기다리고 있는 진리의 말씀!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한마디 한마디가 뜨거운 열이 되어 단단하게 굳어있는 내 마음을 스르르 녹여버린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그 한줄의 불씨는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꺼지지 않았다.
한결 정화된 마음으로 둘러본 선운사 경내.
선운사의 명물이라 할만한
천연기념물 제184호 동백나무숲!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대웅전 뒷편으로 돌아가봤다.
대웅전 뒤 5000평 넓이엔
평균 수령 500~600년생 동백나무가 3000그루가 넘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중 가장 크고 잘생긴 이 나무는 <관측표준목> 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이 나무에 꽃이 피는 걸 기준으로 선운산 동백꽃 군락지의 평균 개화시기를 산출한다고...
동백은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 추백, 동백으로 부르는데
선운사 동백은 "춘백"이라 봄이 되어야 붉게 핀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씩 올라오고 있는 꽃봉오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선운사 1년에 3번, 이 일대가 붉게 물들 때 오면 장관을 볼 수 있다는데,
첫번째는 3000그루의 동백꽃이 만발하는 4~5월!
두번째는 꽃무릇이 피는 9월!
세번째는 오색단풍이 물드는 10월이란다.
붉게 핀 동백꽃을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아쉽기만 한데,
선운사 한쪽 돌비석을 보니
나처럼 서둘러 왔다가 아쉽게 돌아선 이가 또 한명 있었다.
| 선운사 동구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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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릿집 여자....
육자배기 가락....
목이 쉬어....
아직 피지도 않은 동백꽃에겐 미안하지만,
그 시어들이 동백꽃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나오는 길,
선운사의 여운을 마음에 정리하기 위해 차 한잔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았다.
다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니,
예쁘고 좋은 글들이 내 마음을 다시 한번 정화시킨다.
오미자차 한잔 놓고 창가에 앉았다.
오미자차를 마시고 싶었던 건
미처 보지 못한 동백빛깔에 대한 미련이었나보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담장 위로 누군가 가지런히 올려놓은 돌에 한참동안 시선이 머문다.
오후의 햇살이 따스해 스르르 졸음이 밀려온다.
비몽사몽간에 제 오시는 봄처녀를 얼핏 본 것도 같다.
동백으로 붉게 물든 선운사의 봄을 동경해본다.
조금씩 녹고 있는 계곡물을 보며
또 한편의 시를 떠올려 본다.
| 선운사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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