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안동 하회마을을 돌아보기 위해 찾아가던 중,

함께 간 풍산 류씨 후손의 제의로 하회마을을 내려다보기 좋은 '부용대'에 자리잡고 있는 '겸암정'을 먼저 들려보기로 했다.

'겸암정'은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이며 서애 유성룡의 형이기도 한 유운룡(1539-1601)이 학문에 정진하던 곳으로 스승인 퇴계가 이름을 지어주었고,

유운룡이 이를 귀히 여겨 '겸암'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전한다.

하회마을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 건너편에 자리잡은 겸암정으로 들어서는 길은 호젖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포장이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기다랗게 이어지는 담장 너머로 겸암정의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조용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어 옛 선비들이 글공부 하기에 좋은 곳임을 짐작케 한다.

입구에는 시비가 서 있어 방문객들을 반긴다.  

겸암 유운룡이 명종 19년에 스승인 퇴계를 모시고 청량산에 갔다가 선생의 '운'에 따라 지은 시를 14대손이 새겨넣은 시비이다.

약간 경사진 길이 끝나는 지점에 기와지붕의 작은 건물이 서 있다. 마치 군대의 위병소처럼 보이는 건물은 측간(화장실)이다.

입구에 왠 화장실? 원래 겸암정 입구는 반대편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져 버려 후원쪽으로 진입로를 내었단다.

널따란 후원 한쪽 구석에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시비가 또 하나 서 있다. 

서애 유성룡이 형인 유운룡을 기리며 지은 시를 13대 후손이 새겨놓았다.

'우리 형님 정자 지어 겸암이라 이름 붙였네.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 내리고 매화는 뜰 가득 피어 있구나

 발 끝에 향그런 풀냄새 모이고 호젖한 길에는 흰 안개 피어나네

 그리움 눈물 되어 소리없이 내리고 강물도 소리 내어 밤새 흐르네'

형님에 대한 동생의 애틋한 마음이 구구절절 배어있다.  

 
반대편 구석엔 강아지 한 마리가 낮잠을 즐기고 있다. 집을 지키라 했더니 잠만 자고 있는 것이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더니........ 

 
계단을 내려서 겸암정의 전각들을 살펴본다. 안채와 바깥채, 두 채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안채인 살림집을 대하게 된다. 우체통이 달려 있는걸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대문이 굳게 잠겨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바깥채가 '겸암정'이다. 일자형인 전각 대청마루 처마 한가운데에 현판을 붙여 놓았다. 퇴계 선생이 쓴 휘호이다. 

 
안쪽엔 '겸암정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겸암정은 그냥 정자이고, 겸암정사는 서당 구실을 한 교육기관의 뜻을 가진다.

처음엔 겸암 선생이 홀로 거처하던 정자였으나 나중에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썼기에 그 기능이 변한 것이다. 

 
정면 사 칸 측변 두 칸의 사백 년 넘은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겸암정은 푸른 대나뭇잎들이 그 정취를 더해준다. 

 
대청마루에 올라 발 아래 낙동강 줄기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출입을 금지하고 있음이 또한 아쉽다.

강 너머로 하회마을, 그 뒤로는 산이 평풍처럼 하회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 곳에 홀로이 머무른다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

겸암은 일찌기 학문에 뜻을 두어 스물여섯 살 때 이 정자를 지어 벼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은거하였으나,

결국은 음서제도에 의해 인동현감을 거쳐 사복시 첨정이 되고 후에 풍기군수에 오른다.

조용한 곳에 머물며 배우며 후학을 양성하려 했던 그의 뜻은 그가 가진 능력을 아깝게 여긴 주변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았던 것이다.

 
겸암정은 강 쪽 말고는 비탈 따라 담장이 감싸고 있다.  
 

문을 나서면 최초 건립 당시 진입로였던 오솔길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끊겨 있다. 길이 막힌 곳에 '능허기'란 표석이 서 있다. 무슨 뜻일까? 
 

나뭇가지들 사이로 쉼없이 흐르는 낙동강, 그리고 모래톱 너머 울창한 송림이 바라다 보인다. 

9월이지만 아직 여름, 하지만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에 몸은 시원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