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06시 30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가 제2경인고속도로와 인천대교를 연결하는 접속도로로 들어서자 행복날개를 상징하는 사장교의 주탑 조명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새로 개통한 인천대교 덕분에 30분 일찍 도착하여 대합실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사이 함께 할 일행들이 한 분 두 분 도착한다. 수속을 마치고 09:20분 발 중국 시안(西安)행 비행기에 오른다. 중국에서 4박5일동안 시안과 상하이(上海), 그리고 소주(蘇州)를 돌아보는 일정 중 첫번째 여정의 시작이다. 하지만 시안공항 일대의 기상이 좋지 않아 이륙 대기하던 중, 마침내 예정시간보다 40분 늦게 대한항공 KE807편은 영종도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서해를 지나 중국대륙으로 들어가 인천에서부터 무려 1,600km를 비행하여 세시간 지난 오후 1시, 눈발이 날리고 있는 시안의 센양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착륙한다. 자동로밍된 휴대폰의 시각은 12시,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한시간이다.

시안은 어떤 곳인가?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도시지만 시안은 생소한 지명이다. 하지만 시안의 옛 이름인 장안(長安)을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중국 역사 속에서 천년 이상 수도가 자리했던 곳으로 아테네와 로마,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로 손꼽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연결통로로 걸어가는 동안 여러명의 공항직원들을 대하게 된다. 인사말을 건네도 남자건 여자간 표정이 변화가 없는 사람들이다. 개방화 되었건만 아직은 사회주의라는 경직된 체제에 있기 때문일까?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더니 눈발이 더 거세지는 듯 하다. 아침엔 가을이었건만 세 시간 정도 지난 지금은 이국땅에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공항 인근에 있는 호텔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첫 목적지인 '진시황 병마용갱'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르며 간판을 돌아본다. 중국사람들은 호텔을 왜 주점(酒店, 우리나라에선 술집)이라고 부를까? 아마도 옛부터 숙박업소에서 술을 같이 팔았기에 그런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버스는 한 시간쯤 달려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입구에 이르렀다. 주차장에서 정문까지 가는 광장엔 엄청난 크기의 진시황 석상이 서 있다. 우리에겐 익숙한 이름인 '진시황', 중국대륙을 최초로 통일시킨 전제군주로 만리장성과 이 곳 병마용 갱 등 유무형의 유산을 남겼고 분서갱유로 악명을 떨쳐 죽은 지 2천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다.


입구에서부터 5분 이상 열심히 걸었더니 게이트가 가로 막는다. 여기서 티켓을 재확인 받고는 박물관 광장 안으로 들어선다.
박물관을 관람하기 전에 먼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

진시황릉에서 1.5km 떨어진 이 곳 병마용 갱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때는 1974년,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도기인형의 조각과 쇳조각이 우연히 발견되어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시작된 후 현재까지 4개의 지하 갱(4호갱은 폐기된 빈 갱)이 발견되었고 아직까지도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 병마용 갱은 진시황릉을 지키는 호위부대의 성격을 띈 것으로 진시황릉을 포함한 사후궁전은 전체면적이 60만평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전체 발굴이 언제 가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 살아서 대제국을 통일한 황제는 죽기가 싫었기에 불로초를 구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다 결국 죽어서도 황제로 영원히 남고 싶어 지하에 대궁전을 만들었던 것이다.


첫번째 코스는 규모가 가장 큰 1호갱이다.


좁은 출입구를 통과하여 갱 안으로 들어서자 입이 쫙 벌어진다. 길이가 230m, 너비가 62m인 이 공간에 수많은 군사들과 말 그리고 전차들이 마치 전쟁에 곧 임할 듯이 전투대형으로 늘어서 있다.


원래는 컬러로 도색된 병마용들이었으나 발굴되면서 햇빛을 보자 불과 몇시간 만에 색이 모두 바래버렸다고 전한다.


도열해 있는 병사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웃는 얼굴도 있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도 있고 땅을 쳐다보는 이도 보인다. 살아 생전에 진시황을 호위하던 이 병사들은 진시황이 죽자 지하무덤 아래 갇혀 죽임을 당해야 했고 또한 인형이 되어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 죽어서도 진시황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진시황에게 병사들은 인간이기보다는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갱 뒤쪽은 아직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발굴된 병마용들을 임시로 진열해 놓은 걸 볼 수 있다. 원래 이 1호갱 위에는 회랑이 지어져 있었는데 진나라 말기에 항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1호갱 뒷문을 돌아나와 3호갱으로들어선다. 군사지휘부로 추정되는 규모가 작은 3호갱 안에는 머리가 없는 보병용들이 한데 모여있고,


전차를 탄 자세의 장군용과 마용 4필을 볼 수 있다.

3개의 갱 중 마지막 코스인 2호갱으로 들어선다.


규모가 꽤 큰 편으로 1호갱의 반 정도 넓이이다. 아직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듯한 모습이다.


보존상태가 좋지 않았던 때문인지 훼손된 병마용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유리관 안에 병용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Kneeling Archer', 무릎 꿇은 궁수이다. 충성을 다짐하는 듯한 자세인 이 병용은 얼굴표정이며 갑옷, 손 등 몸체가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2호갱에서는 모두 160개의 궁수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Standing Archer(입사용)'. 서 있는 궁수이다. 손에 쥐어져 있어야 할 활이 없는 상테이다. 갑옷도 벗겨져 있따. 그래서 궁수라기 보다는 마치 쿵후라도 하는 자세이다. 172개가 발굴되었단다.


'안마기병용', 116개가 발견. 정교하게 조각된 말의 고삐를 잡은 병용은 마치 유리를 뚫고 뛰어나올 듯한 포즈이다. 이천년을 견뎌 온 이 모든 작품들은 하나 하나가 다 예술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병용들이 들고 있었던 무기들은 실제 무기였고 크롬 도금으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크롬 도금기술은 독일과 미국은 1937년과 1950년에 개발되었지만 중국에선 이미 2,200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안내문에서는 자랑하고 있다.


마지막 코스는 전시관 관람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병마용 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로 선정된 유적임을 알려준다.


조감도를 보면 리산을 병풍처럼 삼아 조성된 진시황릉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끼게 한다.



출토된 유적들을 대충 둘러보고 박물관을 빠져나간다.

진시황릉은 진시황이 즉위하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13세에 왕위에 올라 49세에 죽었으니 36년 이상 진행된 이 대역사에는 동원된 인원만 70만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 없이 절대군주의 횡포에 소중한 생명을 고스란히 바친 것이다.

병마용 갱을 나와 진시황릉 모형을 만든 곳으로 향한다. 가는 길 차창 밖으로 진시황릉을 스쳐 지나간다. 릉은 산의 형태이지만 우리나라의 왕릉과는 달리 얕은 구릉 형태로 나무들이 빽빽이 심겨져 있다. 동서 485m, 남북 515m, 높이 약 76m에 달한다고 한다.


'태릉지궁'이라고 이름붙인 건물에 진시황릉을 축소한 모형 지상궁전과 지하궁전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진시황릉 주변은 궁전처럼 조성되어 있었으나 항우에 의해 모든 건물들이 불타 버렸다고 전한다.


지하로 내려가면 진시황릉의 무덤 안을 복원해 놓았다. 진시황릉은 아직 발굴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한다. 발굴작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문을 열자 안에 있던 물건들이 빛을 받아 변색되버려 다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천년 전 대제국을 통일한 진시황, 나라만 통일한 것이 아니라 문자와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였고 법령을 정비하고 군현제를 실시하는 등 국가의 체제를 정비한 위대한 정치가이다. 그리고 지금 인류의 문화유산인 만리장성과 병마용 갱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무엇이 담겨져 있을까? 자신의 무덤 하나를 위해 70만이 넘는 백성들을 희생시킨 잔혹한 황제, 3개월동안이나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는 규모를 가졌던 아방궁을 만들도록 시켰던 포악한 황제,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땅 속에 파묻어 죽인 분서갱유의 주인공, 불로초를 구하려는 헛된 욕심을 가졌던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려 했던 무도한 황제, 그러기에 그가 죽자 진나라는 급속히 패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갔던 것이다.

과연 이천년이란 세월동안 진시황을 닮은 왕이나 정치지도자는 없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는 그와 닮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좋은 본보기가 있음에도 왜 그런 반복이 있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그 사람들이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