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다행스럽게 하늘이 맑게 개어있다. 화순온천지구를 나와 15번 국도를 타고 옥과를 지나쳐 순창을 향하여 가는 길에 '섬진강 자연학습원'이란 표지판이 붙어 있어 들려보기로 한다. 섬진강 줄기로 보이는 냇가 따라 약 5분여 들어가니 이쁘게 단장한 건물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현관 입구에 '자연과 더불어 사람답게 살자'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효와 환경이 살아 숨쉬는 현장체험 전인교육장'이란 현판도 붙어있다. 얼마나 좋은 말들인가, 그만큼 우리가 '자연'과 '효'와 '환경'의 고마움을 잊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기자기한 정원처럼 꾸민 마당을 여기저기 둘러보는 과정에서 이 예쁜 학습원의 탄생배경을 알 수 있게 된다. '곡성군 자연학습원', 2003년 3월 곡성군에서 어린이를 위한 곤충, 도예, 짚풀, 야생화 체험학습장으로 개원, 사전에 미리 신청을 해야 체험학습을 할 수 있단다.

넓은 마당은 산책로며 작은 연못, 초가집과 물레방아 등으로 장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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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또한 이쁜 잠자리 모양을 하고 있다.

둘러보고 있으려니 한켠에 서 있는 기념비가 이 학습원의 유래를 가르쳐준다. '옥수초교' 1938-1995, 번성기 7학급 332명 폐교시 3학급 38명. 폐교이다. 도시화 과정의 산물이라고나할까. 이제 이런 시골마을에는 아이들이 살고 있지 않다. 나이 지긋이 든 노인분들만 그분들의 마음과 몸의 안식처인 고향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없어졌어도 건물과 운동장을 이용해 도심지의 아이들 그리고 도시로 떠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이런 아이디어를 내어 실현한 곡성군의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온다. 진정 이러한 것이 '위민행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순창으로 들어선다. 읍내로 들어서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까지 고추장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담양으로 가는 새로 포장한 국도로 들어서니 그제야 표지판이 보인다. 읍내에도 표지가 있으면 좋은련만 읍사무소의 세심한 배려가 아쉬워진다.

옛 국도변에 자리한 고추장마을에는 의외로 번듯한 기와지붕 한옥들이 모여있다. 장 담그는 마을이라하여 초가지붕을 연상한,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았던 생각이 영 잘못되었음이다. 산(아미산, 515m)을 든든한 배경으로 삼고는 한옥으로 지어진 고추장가게들이 모여있다. 관광지의 여느 음식점처럼 KBS니 MBC니 매스컴 촬영장소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가게들도 눈에 띈다. 하긴 그러한 글귀가 사람의 발길을 끄는 것이니 달리 탓할 일도 아니건만 괜한 거부감이 느껴지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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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쪽에 자리한 '이조고추장'이라는 가게로 들어선다. 가게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옆에 있는 대문으로 들어서니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드넓은 마당 한가득 크고 작은 장독이 자리하고 있다. 마당 끝 닫벼락 아래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고 있다. 윤덕이와 윤홍이가 재빨리 뛰어 다가간다.

커다란 가마솥 두껑 틈에서 김이 자욱하게 솟아나오고 화덕에선 장작더미가 시뻘겋게 불사르고 있다. 그 옆에서 주인할머니와 그 분의 손녀인 듯한 처녀의 손길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찌고 있는 콩이 다 익었는지 할머니께서 두껑을 열어제친다. 앞이 잠시 안보이더니 김이 걷히고 난 솥에선 잘 익은 노오란 콩이 나타났다. 어릴적 매년 콩을 쪄 메주를 담그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순간 떠오른다. 메주를 곱게 빚으시면서 어머니께서는 옆에 앉아 쳐다보고 있는 내게 저런 찐콩을 맛보게 했었다. 그 맛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일에 열중하시던 할머니가 우릴 보고는 맛을 보라며 바가지에 콩을 담아 내어주신다. 신기한 눈빛의 윤덕이와 윤홍이가 받아먹는다. 그 콩으로 간장과 고추장을 만든다고 말해 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 아무래도 이해가 잘 안되는 표정이다. 하긴 요즘의 세태가 뭐든 만들어진 완성품들에만 많은 관심을 두지 그 과정까지 생각하려는 노력은 부족하지 않은가 싶다. 어떤 것이든지 그걸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의 땀과 열정이 더 중요할진대 그리 가르치지 못하는 건 우리 어른들의 잘못일 것이다.

'이조고추장집'은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고추장마을은 조성된지 약 10년쯤 되었다고 할머니가 가르쳐주신다. 군청 재정지원사업으로 읍내에 흩어져 있던 가게들을 한데 모아 한옥마을로 이전을 시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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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로 올라서기 위해 담양으로 향했다. 4차선의 국도가 2차선으로 바뀌며 운치있는 메타세콰이어 길이 시작된다. 걸어가면서 길을 느끼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 닿기 직전까지 확장된걸로 보아 아마 이 길도 곧 4차선으로 포장될 모양이다. 길이 바뀌면 저 나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옆으로 옮겨 심는다 해도 중앙분리대가 있는 회색빛 콘크리트 길이 열리면 이런 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은 다시 가질수는 없을 듯 하다.

논산으로 간다. 친한 지인이 있어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점심식사 후에 관촉사를 들려보기로 한다.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관촉사'는 충남 논산군 은진면 관촉리, 논산의 평야 한쪽 귀퉁이에 있는 반야산 기슭에 있다. 옛날 중국의 '지안'이라는 승려가 이 곳에 왔다가 은진미륵(보물218호, 정식명칭은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고, “아아, 마치 촛불을 보는 것같이 미륵이 빛난다!” 고 말하였다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절의 이름이 석불에서 비롯될 정도로 이 불상이 절을 대표한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고려초기 대표적 불상인 이 석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높이가 무려 18m이다. 어딘가에서 온화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띈 불상이라고 소개된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가만히 올려다 봤건만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 내 마음이 부처에 열리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윤덕이와 윤홍이는 크기에 놀라면서도 그 생김에 대해서는 영 실망스런 기색이다. 하긴 몸체에 비해 지나치게 큰 얼굴이며 납작한 코 등 친근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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