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토니아의 우체국 -

- 타르투 시市 정중앙에 있던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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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통과는 수월했다. 러시아 출국 심사 때 이것 저것 캐묻고
에스토니아 입국 시에는 여행자 보험을 강제로 들게 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으나 절차가 간소화 된 것인지 그저 헛소문이었는지
출국 도장은 별 문제 없이 받을 수 있었고 에스토니아 입국 심사 역시 내 눈엔
처삼촌 벌초하듯 진행되었다. 보통의 경우 상트 페테르 부르그에서 탈린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발트 3국을 다 돌고 나서 다시 핀란드로 가기 위해
에스토니아로 올라와야 하는 나는 곧바로 에스토니아 제 2의 도시인 -타르투-로
향했다. 아침 6시 반에 버스에서 내려 숙소도 10분만에 찾았으나 8시 반이 되어서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유인즉슨, 타르투에 오는 여행자는 거의 대부분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나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에서 오게 되어 있는데
나처럼 상트 페테르 부르그에서 직행으로 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아침 일찍 찾아온 경우를 본 적이 없었기에 숙소 주인이 손님들처럼
늘어지게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현관문의 벨을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근처의 공원으로 갔는데 아침 일찍 공원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전화로 숙소 주인을 깨워주어서 8시 반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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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주인은 현지인이 아니라 캐나다인이었다. 내역을 들어 보니 그는 예전에
이곳으로 배낭 여행을 왔다가 에스토니아가 너무 좋아 아예 숙소를 차려 놓고
이곳에 살게 되었다고 했다. 어쩐지 아까 현지인이 전화를 걸어 줄 적에 에스토니아어가 아닌
영어로 통화하는 것이 이상했는데 내역을 듣고 나니 상황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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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투는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이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제 2의 도시는 제 1의 도시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 않게 번화하고 크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무척이나 작았다.
시내의 중심부는 걸어서 15분 이내에 가로지를 수 있었고 인구도 무척 적어서 분위기가 한가롭다
못해 고요하기 까지 했다. 이 나라에 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크기가 작고 인구 밀도가
무척 낮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규모가 작고 사람이 없었다.

- 타르투의 한 골목에서 -

- 에스토니아의 이정표 -

규모가 작다는 것은 낙후되고 후진적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모든 건물과 공원들이 무척 깔끔하고 세련되게 정리되어 있다. 물론 구舊시가지
밖으로 벗어나면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주택이 있지만 적어도 구舊시가지 만큼은
무척이나 고풍스럽고 한적하여 번잡한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의 작은 규모 덕분에 박물관, 크고 작은 조각물과 동상 등을
낮 동안에 다 돌아볼 수 있었다. 박물관은 도시에 걸맞게 별도의 큰 건물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흔히 지나쳐 다니는 일반적인 건물의 내부에 있었다. 단 하루만에 극히
일부의 면만을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조금 위험한 것이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이곳의
사람들은 영어를 참 잘하고 러시아를 몹시 싫어한다. 길을 찾다가 말을 걸었던 할아버지도
그랬도 마트의 계산원, 식당의 종업원 등 에스토니아 인이 영어를 잘한다는 말은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내가 에스토니아를 다니는 동안에는 길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영어를 못했던 적은 없었다.

- 타르투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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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원을 지나쳐 가며 10명 가까이 몰려서 놀고 있던 대학생들에게 길을 물었었는데 그들은
길을 알려주는 대신 나에 대해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 역시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것을 즐겼기에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며 그들이 주는 보드카도 사양하지 않고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사실 에스토니아는 공공 장소에서 금주령이 적용되지만 그들이 있던
장소는 타르투에서 유일하게 음주가 가능한 공공장소라고 안내 지도에 설명이 되어 있었다.
보드카를 컵도 없이 병째로 돌려가며 마시던 그들은 내가 그것에 입을 대지 않고 마셨더니
그것이 -Korea Style- 이냐고 물으며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참을 웃었다.
나는 단지 그들과 나, 서로에게 위생적이기 위해 그리한 것 뿐이었는데.
그렇게 놀던 와중에 그들이 나에게 러시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왔다. 나는 내가 느낀
솔직한 느낌 그대로 사람들이 친절했고 좋았다고 했더니 자기들은 그들이 너무 싫고
증오하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 말을 하던 몇몇 이들은 심지어 웃고 있던 얼굴이 조금 굳어지기까지
했는데 역사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거기에서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냐고 물었는데 그들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 대답했다. 하긴, 러시아의 밝고 이쁘게 포장된 면만을 보고 온 여행객인 내가, 그들처럼
러시아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들과 같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외압에 휘둘려온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의 국민으로서 그들의
심정이 이해는 갔다.

- 그들과의 사진 -

- 익살스런 조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