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새로 향하던 길에 있던 모스크 -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처음 마주친 것을 시작으로 이르쿠츠크, 알혼 섬,
그리고 모스크바에서까지 계속 마주쳤던 한국인 누나가 있었는데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와서는 아예 같은 숙소에 묵게 되었다. 여행객들의 이동 경로와 동선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함께 성 피터 폴 요새로 갔는데 그녀는 여행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관광지를 둘러보며 심심치 않았고 사진 찍기도 수월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사진에 들어가면 건물이나 풍경을 망친다며 자신이 사진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 성 피터 폴 요새의 교회 종루 -
- 교회의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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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와 강변의 모래 사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강 건너 바로 보이는 에르미따쥬 박물관으로
갔다. 이곳은 파리의 루브르, 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을 이루는 곳이라
한다. -세계 몇 대-라든지 -꼭 보아야 할- 이라는 수식어에 괜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나였지만 세계 3대 박물관을 모두 돌아보았다는 허영 가득한 자부심 보다는 러시아
최대의 박물관은 어떤 곳인가 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요새를 둘러보고 갔기에 역시나
표를 사귀 위한 줄이 무척이나 길었다. 오랜 시간 기다린 후 입장권을 사고 들어갔는데 내부
역시 먼저 들어온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입장을 한 이후로는 사진을 찍을 일도 없고 각자
편하게 둘러보자며 동행한 누나와 헤어졌다. 처음에는 전시물들을 천천히 둘러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전시물들에 대한 나의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큰 감흥도 없었고 지루하기만
하였다. 몇년 전 갔었던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그랬는데 억지로 모든 전시물을 다 보고자 하여
하루 종일 거의 7~8시간에 걸쳐 그곳을 보았으나 크게 남은 것이 없었던 기억이 나서
욕심 부리지 말고 대강 둘러 보다가 내가 흥미를 느끼는 작품들만 자세히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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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 중동,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관 등 나라와 주제별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다른 초대형 박물관처럼 이 곳 역시 이 큰 규모의 전시관을 채우기 위해 다른
나라의 유물과 유적을 얼마나 약탈해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시관을 세우기 위해
약탈했다기 보다는 전시戰時에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런 박물관을
세우게 된 것이었겠지만 여러 강대국에 문화재를 약탈당한 약소국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국민으로서 보는 동안 조금은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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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미따쥬 박물관의 천장에 있던 문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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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자들이 그렇겠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부분은 역시 전쟁과 관련된 곳이었다.
아마도 중세의 기사들이 착용했을 성 싶은 갑옷과 사용했던 무기들을 보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박물관을 둘러 보며 어느 시점 이후로는 박물관 내부의 안내 지도를
보지 않았다. 전시관의 순서대로가 아니라 내 발길이 닿는 대로 마음 편하게 둘러 보고자
함이었는데 나는 언젠가부터 길을 잃어 계속 같은 구간을 돌고 있었다. 그때의 위치가
2층이었는데 잠깐 쉬면서 내부 지도를 보며 내 위치를 확인했는데 몸도 피곤했고 대강이지만
웬만큼 전시물도 보았다 싶어 아직 가보지 않은 3층만 마저 둘러보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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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은 아시아,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극동 지방에 대한 물품이 있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상은 했지만 막상 가보니 역시나 중국과 일본에 관련한 전시물은 꽤나 있었던
반면 한국과 관련된 것은 전혀 없었다. 이번 여행을 다니며 5년 전에 했던 유럽 여행 때보다
한국의 위상과 인지도가 많이 향상되었음을 여러 번 느꼈는데 이런 면에 있어서는 아직도
중-일에 비해 역부족임을 느끼며 박물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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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짧은 생각으로는, 한국과 일본은 공히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은
섬이라는 지형적인 이점을 이용해 중국 영향력에 대한 취사 선택이 가능했고 그랬기에
한국보다 비교적 더 독자적인 문화를 가질 수 있었다. 한국 역시 중국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독자적인 요소를 가미한 한국만의 문화가 있으나 아무래도 일본이
중국 문화를 닮은 정도보다는 더 많이 중국과 닮아 있다. 그것은 고화古畵나 고서古書,
혹은 옛 유적지나 건물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는 닮음의 정도가 문화의 우열을 가리는
요소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다는 그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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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의 관광업 개발을 어렵게 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장애 요소와 더불어
중국 문화, 특히 고古 건축물에 있어서 중국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관광객들이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 산재해 있는 각종 개신교, 천주교 예배당들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듯이 아마 많은 외국인들이 중국과 우리 나라의 성곽, 사찰 등을 비슷하다고 느낄
것이다. 거기에다 중국은 압도적인 인구 수와 넓은 면적으로 국제적으로 동양 문화에 대한
인지도를 선점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가 우리색色을 표출하기가 조금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은 국제적 인지도 뿐 아니라 건축 문화라는 면에 있어서 중국 문화와
우리 문화보다 조금 더 큰 차이를 가지기 때문에 관광업 개발이 조금 더 수월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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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순히 문화 차이의 정도로 인해 관광업의 성패가 결정되었다는 문화결정론이 아니다.
나는 중-일이 관광업에 기울인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엔 이러한 어려움이 있으니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이 가진 문화적 장점도 있다.
문화라는 것은 비단 건축이란 면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비슷비슷한 맛과 종류의 버터, 치즈,
빵이 주류인 유럽 음식들에 비하면 한-중-일의 음식은 꽤나 상이한 편이다. 생각해보면
외국인들이 흔히 -Korean Barbeque- 라 부르는 갈비나 불고기는 참 독특한 문화이다.
실내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직접 불판에 고기를 구우면서 먹는 문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주主 요리 이외에 밑반찬을 가득히 깔아두고 먹는 나라 역시 극히 드물다. 이는 유럽과의
비교가 아니라 바로 이웃한 중국,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식食문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