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내에서 길을 알려준 러시아 아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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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욕심을 부리고 쉬지 않은 탓에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몸이 찌뿌둥했다. 이번엔 몸이
호전될때까지 정말로 밖에 나가면 안 되겠다 싶어 아침과 점심을 먹기 위해 주방을 들락거린
것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침대 신세를 졌다. 누워서 공상에도 잠겨보고 음악도 들어보고 잠도
자보고 했으나 역시나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 있는 것은 무척 따분했다. 다행히 점심을 먹고
나니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듯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휴식을 취했는데
오후 4시 정도가 되니 왠지 밖에 나가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도 어제 무리했다가
오늘 반나절동안 그 댓가를 치렀던 것 때문에 섣불리 나가지 못했고 한참을 갈등했는데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확신이 들었으므로 밖으로 가자기로 했다. 본의 아니게 반나절이 넘도록
방 안에 갇혀 있다가 바깥 바람을 쐬니 평소보다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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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로 향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위치를 정확히 몰랐던 나는 실수로
당역 바로 전의 지하철 역에서 내렸고 그랬기에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행인의 도움을 받고자 지나가던 한 쌍의 젊은 연인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남자는 자기가 지금 그쪽으로 가는 길이니 따라 오라고 했다. 그가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설명을 해 주는데 내가 내린 역의 다음 역은 아예 역명이 -University- 였다. 아무리
초행길이라지만 바로 뒤의 역명을 보지 못한 나 자신이 우스워 허탈한 웃음이 났다.
지하철 역 하나의 거리를 가기 위해 다시 표를 사기가 아까워 걸어가고 싶다고 했으나
웃으며 빨리 따라오라는 그의 등쌀에 나는 표를 구입해야 했다. 국립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University 역에 내려서 다시 승합차 크기의 조그만 버스를 타야 했는데 그는 최종적인 목적지가
그곳은 아니었는지 모스크바 대학교 앞에서 나와 작별을 했다. 내려서 본 국립 대학교의 모습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사진으로도 몇 번 보아왔고 시내에서 그것과 비슷한 양식의
건물을 보았음에도 그것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흥은 남달랐다. 그것은 대학교의 건물이라기보다
어지간한 5성급 이상의 호텔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 엠게우(모스크바 국립 대학) -

계속해서 감탄을 하며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는 건물 내로 들어가 보려 했는데
한 눈에 보아도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듯 보였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러시아인이었지만 비非재학생이 그곳에 들어가보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짐짓 모른척하며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보려고 했으나 그와 나 모두 건물 내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원에 의해 돌아나와야 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주변의 공원에 몰려 있던 학생들에게
나는 여행객인데 저 건물에 내가 들어갈 방법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 학생들은 학생증을 내게 보여주며 이것이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아마도 힘들 것이라 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른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으나 그들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가버렸다. 러시아를 다니다 보면 아직도 구舊소련의 잔재가
조금 남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나는 이것 역시 그 잔재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훗날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출입을 통제하는 대학교는 못 보았고 중국에서도 여권만 인증받으면
입장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곳에 들어갈 권리가 없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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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국립 대학교의 외관을 보고 경탄했지만 일순간 허무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 외관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 나라의 최고 대학, 순수 과학이 그토록 발달했다는 러시아의
대학교를 직접 느껴보고 내부 시설이나 강의실도 보고 싶었는데 그 모든 것이 무산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기껏 여기 와서 사진이나 찍고 가려고 지하철을 내렸다 탔다 하며 길가던
사람에게 도움도 청하고 버스까지 타고 왔나 싶었다. 하지만 애시당초 외부인이 들어갈 방법이
없는 이상 내가 뭐라고 생각하고 어떤 느낌을 갖든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건물 주위를 조금 더 둘러보다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 다시 찾은 붉은 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