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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열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고 어제 내린 노신사들의 빈 자리는
새로이 탄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새로 탄 사람들은 노신사들과 대조적으로
무척 조용했고 내게도 관심이 없었다. 아침을 먹고 창밖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승무원이 열차의 앞 방향을 가리키며 -놀쓰 까레이스키-라 했다. 이러기를 한 두번이
아니고 어제부터 내 옆을 지나칠 때마다 그러는 것을 보니 앞 칸의 북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했다. 시베리아 횡단에 탑승했던 첫날, 내가 배정받은 칸을 찾을 때
어느 칸인가 [평양-모스크바]라고 쓰인 한글을 분명히 보았는데 심심해하는 나를
보고 거기 한국 사람이 있으니 가 보라는 뭐 그정도 의미인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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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북한 사람과 만나 보고 싶기도 했고 딱히 할 것도 없었던 터라 심심풀이 반
호기심 반으로 평양에서 온 열차 칸으로 향했다. 그 차량은 2등석인 쿠페용 차량으로
4인 1실 단위로 개폐가 가능한 문이 달려 있었는데 한 곳만 빼고는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유일하게 열린 한 곳의 문 앞 복도측 창문에는 제복에 갖추어 쓰는 모자가
세 개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그곳으로 가서 인사는 건넸으나 들어가도 될지 몰라서
쭈뼜거리며 서성거리고 있었더니 잠시 나를 지켜본 그들이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그들은 평양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무슨 일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들의 억양이나 말투는 한국에서 가끔 볼 수 있는
TV 코미디 쇼에서 들은 북한 말투 모사模寫와 거의 흡사했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들이 나의 이름과 나이, 직업, 집안 사정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들을 해 왔다.
그 다음으론 이렇게 혼자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제약은 없는지, 나중에 직업은 누가
정해주는지에 대해 물어왔는데 나는 대답만 했지만 그 질문들로 인해 북한의 사회상을
조금은 역추론 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치자 그들은 나로서는
조금 꺼려하고 있던 정치, 사회적인 질문들도 서슴없이 했다. 그러면서 북한 사회는
경제적인 면에서 무척 안정되어 있고 발전된 사회라고 역설力說했는데 역설逆說적이게도
그들 앞에는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 갱지로 된 책이 놓여 있었고
제목은 혁명과 조국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선동적인 글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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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서 내 자리로 돌아가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들은 잘 가라는
인사와 함께 심심하면 또 오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북한이 최고이며 지금 시점에 있어서
남북관계에 관한 모든 문제는 남한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같은 한국어를 쓰는 그들과 말은 통했으되 대화는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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