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로 들어가 먼저 주일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을 찾았다. 꽤 오래된 듯한 빛바랜 빨간 벽돌의 화순성당이 작은 언덕 위에 서있었다.
미사를 드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고인돌 유적지'와 '운주사'를 향해 길을 나섰다.
초행길이라 고인돌공원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길 따라 갔다가 다시 돌아서는 시행착오를 한번 거친 끝에야 찾을 수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어 찾는 이들도 거의 없고 임시로 설치한 관광안내소에도 사람이 나와 있지 않았다. 다만 아치형 입구와 공원임을 나타내주는 안내표지가 유적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오른쪽 야트막한 언덕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바위마다 번호가 적힌 작은 팻말들이 붙어 있는 걸로 보아 하나 하나가 다 고인돌인 듯 하다. '화순 고인돌 대신리 채석장군(採石場群) ', 141기의 고인돌이 집단으로 분포되어 있는 곳으로 '대신리 지석묘군'을 대표하는 곳이다. 옛날 선사시대의 공동묘지인 셈이다.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보니 집채만한 커다란 바위가 서 있다. '감태바위', 그 생김새가 마치 갓을 쓴 형상으로 고인돌 채취용 바위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화순의 고인돌 유적은 이 채석장이 발견됨으로 인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인근에 있는 답사지인 천불천탑 '운주사'의 유적들도 모두가 돌로 된 것들이니 화순 일대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돌과 연관이 많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운주사에 도착할 즈음 비에다 바람마저 불어댔다. 차에 그냥 남아있겠다는 아이들을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꼬시고 절 안으로 들어섰다. 매표소 바로 뒤에 서 있는 일주문은 아마도 최근에 지어진 듯 의외로 크고 반듯했다. 오래 전 천불천탑이 세워졌다는, 불교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불가사의한 유적으로 알려진 이 절터의 이미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이다. 하긴 지금은 새로 세워진 절이 있으니 일주문 또한 새로이 만들어짐도 당연한 것이니 옛모습 그대로 있음을 바라는 건 찾는 이의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으리라.일주문을 지나 조금 걸으니 오른쪽 암벽이 있는 곳에는 여러 기의 돌부처가 합장한 채 서 있다. 장구한 세월을 비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렸을 터인데도 찾아드는 사람들을 반김인지 모두가 넉넉한 표정이다. 이 또한 누구나 쉽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소박하고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다. 운주사지의 탑과 불상은 아마 당시의 민초들과 가까웠음을 짐작하게 한다. 운주사지에서의 탑과 돌부처의 첫만남은 이렇게 편안히 시작되었다.
길 아래쪽 넓은 잔디광장 구석에 얼굴만 덩그러니 있는 돌부처가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다가간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기대어 포즈를 잡는다. 운주사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허름하게 보이는 9층석탑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다. 보물 796호,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자연암반 위에 세워진 이 탑은 다른 절의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탑과는 달리 울타리가 없다. 탑신에는 단순한 무늬와 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높이 솟아 있간 하지만 그저 친근하고 소박하다.
와불 옆으로 '칠성바위'란 이름을 가진 일곱 개의 동그란 바위가 놓여져 있다. 전남대 박물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일곱 개의 돌은 실제 북두칠성의 위치와 닮았다고 한다. 결국 하늘에 있는 별을 땅에 박아 놓은 셈이다. 저 멀리 하늘을 향해 빌어보는 대신 땅 가까이에서 평등세상을 빌어보기 위해서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칠성바위를 끝으로 운주사를 빠져 나왔다. 남아있는 120여기의 탑과 부처를 다 보지는 못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 돌아보지 못함이 큰 모자람은 아닐 것이다. 한 개의 탑, 하나의 부처를 대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나타내려한 옛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한 단편을 알 수 있었다면 우리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한 답사가 되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