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아직 부모와의 여행도 두려움으로 가득했을 나이에 어린 나는 저금통을 뜯어 동생과 손을 잡고 드림랜드로 향했다. 전 해 외숙모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갔던 길을 상기하며 떠난, 생애 첫 아이들의 여행. 이제는 없어진 350원짜리 칙칙폭폭 비둘기열차를 타고 의정부에서 전철로 갈아타고 다시 수유에서 15인승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했던 그때의 감회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이나 더 찾아갔던 드림랜드는, 세월이 감에 따라 서서히 퇴색하는 유원지마냥 관심이 멀어지더니 어느샌가 뚝 기억속에서 사라졌었다.

그렇게 10여년도 훌쩍 지난 2009년 잊혀졌던 그곳이 북서울 꿈의숲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나타났다. 탈바꿈한 어린 시절의 추억의 장소를 아니 찾아가볼 수 없는 일. 거기다 공원이라면 여유있게 오후의 한때를 보낼 수도 있으리라. 그런 기대와 함께 미아삼거리역에서 내려섰다.

미아삼거리 1번 출구에서 북서울 꿈의 숲까지는 걸어서, 넉넉잡아 15분 거리. 가는 길이 언덕도 있어 좀 숨이 차긴 했지만 그래도 가을색이 완연한 도로를 걷자니 기분은 그저 좋다.

언덕을 넘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헬리곱터 같이 생긴 건물. 문화센터와 전망대란다. 함께 간 언니 말로는 뱀이 또아리 튼 것 같단다. 안에 들어가볼까 싶었지만 역시 동행이 있어 먼저 의사를 묻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다음번에 혼자 와서 들어가봐야 할까나.

문화센터 건물을 지나쳐 거울못과 점핑분수를 지나치자 갑자기 탁 트인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양 옆에는 숲이 중간에는 너른 잔디밭이다. 이정도로 넓직한 곳이라면 역시 가족의 소풍 장소를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아직 잔디를 심지 않은건지 아님 제자리를 잡지 않은건지 알 수 없는 공터에는 공원 개장을 축하하는 공연을 하려는 듯 준비가 한참이다. 바로 아래 카페테리아인가 싶은데 글래스파빌리온이란다. 다른 것보다 그 앞에 펼쳐저 있는 하얀 파라솔이 그저 너무 예뻐보인다.

글래스파빌리온 앞 잔디밭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뽁언니가 점심으로 싸온 유부초밥과 내가 미아삼거리 일대의 치킨집을 찾아다니다 못 찾고 결국 궁여지책으로 골랐던 KFC 치킨을 펼쳐들고 아직은 흐린 하늘을 올려보며 배를 채운다. 간만에 공원에서 먹는 도시락은 그저 꿀맛.

그러고보니 어렷을적에 드림랜드에 왔을때 우리는 도시락을 싸 왔던 거 같다. 엄마한테 김밥을 싸달라고 했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던 것 같다. 도시락을 열고 동생과 얌얌 먹으며 그저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더랬지. 도시락을 다 먹어치우고 그대로 누워버렸다. 추울지 몰라 챙겨온 무릎담요를 목까지 덮고 있자니 구름 속에 가려졌던 해가 서서히 고개를 내민다.

막상 자려고 폼을 잡았는데 잠이 달아나 버려 결국 가방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엎드려 팔랑팔랑 책을 넘기고 있자니 정말 오후의 여유로운 피크닉인지라 그저 즐겁다. 기념으로 가지고 온 책도 한 장 찍고. 간만에 다시 읽는 도쿄타워는 세 번째 읽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내용이 새롭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의 특징은 아무생각 없이 그저 가볍게 훌렁훌렁 읽을 수 있다는 것과 가을에 잘 어울린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너무 예쁘게 나온다는 것.

그만 게으름을 피우고 공원을 둘러보기로 하고 돗자리를 접었다. 어느쪽으로 방향을 잡을까 하다 아까, 노오란 소국이 예쁘게 핀 길이 기억나 그쪽부터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꽃와 벌은 최고의 궁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꽃의 꿀은 벌에겐 일용한 양식일 것이고 벌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떠도는 것은 꽃에겐 씨앗을 뿌려줄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노오란 국화와 노오란 벌은 그 색만으로도 충분히 조화로워보인다.

개장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목도 잔디도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역시나 마당이 넓은게 너무 마음에 든다. 거기다 가을색이 완연한 풍경은 눈을 즐겁게 하고.

어쩐지 가을하면 갈색이 먼저 떠오른다. 이상하지. 그렇게 총천연색으로 물드는 단풍들이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건 깊은 그림자도, 떨어진 나뭇잎도 갈색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긴 건물들이 모두 참으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까 문화센터와 전망대도 그렇더니 미술관도 만만찮다. 마치 레고를 쌓아 놓은 것 같은데 얄팍한 기둥으로 하부를 받들고 있어 좀 불안해 뵈기도 한다.

미술관을 지나치자 눈에는 제법 큰 연못이 보이고 귀에는 시원스러운 폭포소리가 들렸다.

바로 월영지와 월영대, 그리고 월영폭포. 우리나라식 정원이라고 했던가. 뭐 여튼 아름다운 경관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보호대를 설치하지 않았다는데 사실 아이들이 많은 공원에는 좀 위험한 생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근데 사진 찍은 걸 보자니 또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고.

월영지에서 좀 더 걸어내려가자 푸른 대나무숲이 보인다. 어쩐지 여름에 다녀온 죽녹원이 생각나는 풍경.

그리고 대나무숲을 통과하자 한옥이 하나 나타났다. 창녕위궁재사라고 하는데, 순조의 딸 북온공주와 부마가 유생들의 공부하는 집으로 만든 곳이라는데. 한일합병때 김석진이 일본이 내린 남작 작위를 거절하고 자결한 곳이기도 하단다.

대나무 숲의 창녕위궁재사의 뒷뜰쯤으로 생각되는데 어쩐지 저번주에 갔던 군산의 동국사가 생각났다. 그때도 아담한 절 뒷켠에 저렇게 푸른 대나무들이 서 있었더랬는데. 그래서 언뜻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건축이 가까워져보인다. 재사 뒷쪽에 땔감도 쌓여있다. 이제 슬슬 겨울 준비를 하는걸까.

재사를 나와 나무에 리본이 달린 것을 보고 뭔가 싶어 가려다 작은 개울과 먼저 만났다. 옷을 이쁘게 입은 꼬마 아가씨는 거기가 좋았나보다. 부모님이 위험하다고 아무리 그래도 벗어나려 하질 않는다.

자, 드디어 리본에 뭐라 쓰여져 있는지 알 수 있을정도로 가까워졌다. 리본에는 역시나 사람들의 소원이 가득가득 담겨져있다. 언젠가 이렇게 주렁주렁 달린 리본들의 소원이 다 이루어질 날이 올까.

슬렁슬렁 걷다 아주 아름다운 숲길을 발견했다. 역시 가을 색이 짙은 곳인지라 걸음을 했는데 막상 사진으로 찍어두니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뭐 좋은 곳을 보았으니 마음만은 뿌듯.

월영지 끄트머리에 보이던 분수가 드디어 가까이에 있다. 쭉쭉 뻗는 물줄기와 햇살에 드러나 무지개가 너무 좋다. 여기에 음악까지 나왔으면 좀 더 풍성항 풍경이 되었을텐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아주 괜찮은 곳으로 변했구나 하는 묘한 그리움과 행복함이 피어오른다. 사실, 세 번째 찾아왔던 드림랜드는 그렇게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사람도 별로 없는데다 놀이기구들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여기저기 마치 버려진 듯한 모습들 투성이었던지라 실망감을 숨기지 못할 정도였다. 그랬던 곳이니 이런 멋진 곳으로 변했다는 게 참으로 행복하다고 할까. 더불이 어릴적 나의 첫 여행지였던 곳이 사라지고 이젠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그리움이랄까.

곳곳에 가을색으로 물든 꿈의 숲은 분명 새로이 개장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어쩐지 오래된 친구같은 그런 기분이 들게한다.

또 희한한 건물과 만났다. 뭐하는 곳인가 싶었는데 홈피에서 슬쩍 살피니 공연장이란다. 언젠가 저기에서 연주회나 연극 같은 문화생활을 누릴 수도 있겠지.

설렁설렁 둘러보니 어느새 처음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아까는 별볼일 없어 보이던 거울연못이 황금빛 오후의 햇살이 내리자 어쩐지 황홀할 정도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거기다 이리저리 뛰노는 아이들의 발에서 퍼지는 물방울은 빛의 홍수.

한때는 꿈의 나라로, 나의 동심을 뒤흔들었던 드림랜드는 사라졌다. 자취도, 흔적도 없이 완전히. 하지만 그곳에 새로 들어선 북서울 꿈의 숲엔 미래를 꿈꾸는 공원이 되었다. 어렷을적 내가 드림랜드를 보며 행복해 했듯이 지금 저 뛰노는 아이들에게 꿈의 숲은 즐거운 놀이터이자 휴식터이겠지.

지금은 조금 부족해 뵈는 잔디도, 수목도 조금 세월이 지나면 더더욱 풍성해지겠지. 미래에는 좀 더 아름답고 멋져질 북서울 꿈의숲을 기대해본다.

간단정보 찾아가기 대중교통 - 도보 : 4호선 미아삼거리역 1번출구 - 전방 300m 삼거리에서 우회전 - 오현로 따라 10분(약 2.2km) - 버스 : 4호선 미아삼거리역 1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9,11번 탑승 홈페이지 : http://dreamforest.seoul.go.kr 문의전화 : 운영팀 ☎ 2289-4001~5 / 관리팀 ☎ 2289-4001~5 * 모든 자료는 꿈의 숲에서 담아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