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컬럼(여행) - 여성포털이지데이

겨울의 절정인 1월이었다. 내내 집에서 나가지 않는 그야말로 일하지 않는 자의 극치를 보여줌으로서 방한구석 먼지마냥 쌓여가다 드디어 집을 나설 생각을 했다. 그래, 집에서 쉬고 있다고 또 날이 춥다고 나가지도 않는다면 정말 한량이다. 동행으로 미리 뽁언니와 은경이를 꼬득여둔 상태. 아침에 일어나 씻고 아빠 출근하실 때 함께 집을 나섰다. 전철을 타고 10시에 외대에서 일행을 만나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영흥도로 출발!

영흥도는 4호선 남부 종착역인 오이도역에서 광역버스인 970번 버스를 타고 영흥도 종점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인터넷에서 보았다. 그 말대로 일단 1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 오이도까지 와서 역사를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바로 앞 정류장에서 운 좋게 기다리지 않고 바로 버스를 탔다.(기실 버스가 1시간에 1대꼴로 있기 때문에 버스 시간을 확인 해 두었다)

오이도역에서 영흥도 버스 터미널까지는 더도덜도 말고 딱 1 시간. 선재대교와 영흥대교까지 지나서 도착한 영흥도 버스 터미널은 진정 터미널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컨테이너 건물 달랑 두 개 있는 허르한 곳이었다. 영흥도에서 우리가 제일 처음 가기로 한 곳은 소사나무 군락지가 있다는 십리포 해수욕장. 다른 사람들은 다 장경리 해수욕장을 가기 위해 그쪽 버스를 탔는데 우리 일행만 덜렁 그 버스에 오르니 어째 이상한 기분도 좀 들긴 했다. 그래도 어쨌건간 목적했던 바대로 가는 게 맞는 게 아닌가!

버스를 타고 15분쯤 버다를 끼고 달리다 언뜻 숲으로 가는 듯 하더니 언덕 하나를 넘어 주차장과 관광안내소가 있는 십리포 해수욕장에 버스가 정차했다. 그리고 그 앞은 기대해 마지 않던 소사나무 군락지. 버스에서 내려 한달음에 달려간 그곳은 허나, 생각보다 아주 멋진 곳은 아니었다. 신비의 숲이니 해리포터의 숲이니 바람의 숲이니 하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던 이미지는 겨울의 스산함과 쌀쌀함, 그리고 횡량함만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도 바람의 흐름대로 비틀린 듯한 나무의 기이한 자태는 충분히 흥미를 이끌고 있었고, 또한 욕심에 마음에 차는 사진을 찍어야지 하는 것 때문에 제법 오랜 시간을 이곳을 배회하고 다녔다. 그러다 결국 무수하게 찍은 사진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는 실망감만 안은 채 군락지를 벗어났다. 그러자 펼쳐진 바다와 그 너른 풍경을 바라보는 쓸쓸한 겨울 의자 하나.

그래, 사실 겨울의 풍경은 쓸쓸함과 색조없음과 부족함 아니겠는가. 소사나무 군락지의 신비로운 사진들이 풍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었다는 걸 기억해내며 다음엔 그 사진을 찍으러 와야지 하며 생각했고 그러자 익살스럽게 반기는 대장군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들 와요 영흥도에, 즐기다 가요 여기 십리포에서' 그렇게 즐겁게 말하고 있는 그네들은 겨울바다의 삭막함도 바람의 차가움도 훠이훠이 날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겨울 바다나 좀 보고 갈까? 먼저 바다로 나간 두 일행을 따라 나도 휘적휘적 모래밭으로 걸음을 떼었다. 그곳에는 밀려간 물길 따라 길게 놓인 조개껍질들이 있었고, 내 뒤를 따라오는 발자국이 있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단화를 신고 온 나는 조개를 주우러 갯벌로 들어간 두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며 사진을 찍었다.

평상시엔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이럴 때야 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 하얀 표지판이 눈이 들어온다. 혼자 돌아다니자니 영 재미가 없다. 시계를 보니 2시. 장경리로가는 2시 10분 버스가 있다는 것을 미리 버스 기사님을 통해 알아 두었기에 뽁언니에게 전화해 갈거냐고 묻자 좀 더 있다가 가겠다고 한다. 딱히 더 일이 없었던 난 그럼 먼저 장경리에 가 있겠다 하고 먼저 길을 나서는 중간에 죽죽 뻗은 나무가 멋져 사진 한 방을 찍고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어라 언니가 전화를 했었네. 왜 그런가 싶어 다시 거니 아직 안 갔으면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같이 장경리를 가자고 한다. 혼자 나서는데 붙잡지도 않아 서운했던 마음이 그 말에 스르륵. 좀만 기다리면 곧 가겠다는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아직 미련을 못 버린 소사나무 군락지로 가 사진을 찍다가 두 사람과 합류 점심을 맛난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파란 하늘과 파란 버스정류장 표시판이 예뻐 찰칵.

가끔 생각하는데 카메라는 현실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는 기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아름다운 모습이긴 했지만 내 눈으로 보았던 것과 카메라를 찍어놓고 다시 본 풍경은 어쩐지 다르다. 더 섬세하고, 더 아름답고. 확실히 기능은 기술을 능가하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장경리 해수욕장 후문에 내렸다. 십리포와는 또다른 모습에 언니도 나도 은경이도 또 좋아라 하며 바다로 갔다. 십리포가 모래와 자갈이 가득한 곳이었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사장. 물결 모양인지 바람 모양인지 흐르는 모래밭이 너무 인상적이다.

설레이는 마음을 내비칠 길이 없어 사진 찍고 있던 내 옆에서 언니는 누군가에게 '보고싶다'고 적었고 나는 갈 곳 없는 마음으로 '사랑해'라고 적었다. 솔로 두 여자의 외침.

장난은 모래에 묻고 더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버려진 닻과 너무 작아 가지고 갈 수 없는 고동과 알이 땅땅하게 밴 바닷가재도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새 뒷켠으로 성큼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해는 벌써 산쪽으로 기울어졌고 하루가 마감하려고 하는 것이다. 더 지체하고 있다간 발 아래 물이 찰 것 같아 우리는 뭍으로 나왔고, 사람이 머물던 갯벌은 어느새 다시 바다의 터가 되었다.

장경리해수욕장 정문쪽에서 버스를 탈까 하여 길을 따라 걷는데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넌 어디 갔다 오니? 저 중국에서 오니 아니면 유럽에서 오니? 나도 한 달 전 쯤에 저 비행기를 타고 이곳을 지나치며 아 이제 돌아왔구나 하고 생각을 했더랬지. 부러움과 추억과 그리움이 멀리 사라져가는 비행기를 따라 날아간다.

언제쯤 또 그렇게 긴 시간을, 긴 호흡으로 여유 있게 여행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설레이는 마음이 또 다시 여행을 준비하라고 재촉하는 듯 하다.

기껏 도착한 장경리 해수욕장 정문에선 정작 버스 시간을 몰라 버스를 탈 수 없어 결국 다시 후문으로 가 익히 알고 있는 버스 시간표 대로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결국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터벅터벅 걸어가다 해지는 장경리 해수욕장의 풍경만 몇 장 카메라에 담았다.

슬렁슬렁 걸어 도착한 후문에선 몇 분 기다리지 않고 또 곧바로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버스 기사님과는 벌써 세 번째 만남. 우리보고 해 지는 것도 보지 않고 어딜 가냐는 말에 장경리에서 보는 낙조가 멋져서 보러 왔는데 산 뒤로 사라는 모습이 영 아쉬워 영흥대교에서 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거기에선 더 볼 수 없다고 알려주신다. 그러면서 좋은 장소를 알려주겠다는 멋진 기사님. 아저씨 말대로 거기서 좋은 구경할래 아니면 이대로 종점에 내려줄까 하는 말에 나는 냉큼 가겠다고 대답했고 그 길로 우리는 아저씨의 안내대로 종점을 지나쳐 길에 내려섰다.

알려주신대로 길을 따라 걷다 도착한 펜션의 정원은 쓸쓸함이 묻어났지만 제법 운치있고 아름다운 곳. 무엇보다 그곳에서 본 낙조가 너무 아름다워 정말 아저씨 말대로 잘 왔다고 우리는 환호를 했다.

정말로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보지 못하고 끝났을 영흥도의 해 저물녘 풍경. 오늘 정말 바다도 바람도, 낙조도 너무 아름답게 사진에 담아가는구나.

간단정보 영흥도 가기 4호선 남부 종점인 오이도역에서 하차 후 1번 출구로 나오셔서 쭉 걸어오시면 사거리가 나오고 정면에 아파트와 상점 건물이 하나 보이실 겁니다. 그 앞 횡단보도를 건너 바로 버스정류장 있을거고 거기에서 790번 버스 타세요. 영흥도에서 십리포 해수욕장 가기 영흥도 종점까지 가시면 버스 시간에 맞춰 마을버스가 대기중입니다. 버스 번호가 따로 없어요. 버스 타고 십리포에서 내리시면 관광안내소에 버스 시간표가 나와 있어요. 그 시간표대로 움직이시면 되요. 십리포에서 장경리도 그렇게 가시면 될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