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휴식시간 ^^
석양이 지는 에얼리 비치의 풍경
에얼리 비치의 라군 (수영장)
“위기의 자전거 여행” -그
사람마다 체력의 차이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남자와 여자간의 체력차이는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여행 중에 나와 주현이는 체력이 남는데 비해 아내의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그날의 일정을 좀 앞당기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었다. 처음에는 별일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문제가 커지게 되었다. 급기야 나중에는 아내의 체력이 떨어져서 페이스가 떨어질 때면 주현이가 앞으로 나와서 혼자 먼저 목적지까지 가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 것이다.
주현: “나 먼저 갈게.”
나: “우리는 같은 팀인데 같이 가야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주현: “나 무릎이랑 팔꿈치가 너무 아파. 빨리 가서 쉬고 싶어.”
아내: “너만 아프냐? 나도 빨리 쉬고 싶어.”
주현: “그럼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네 뒤에 있으면 속도가 들쑥날쑥해서 자꾸 브레이크를 잡아야 해서 배로 피곤하단 말이야.”
나: “그럼 앞으로 가. 그 대신 너무 멀리 가지 마.”
주현: “알았어.”
하지만 그는 잠시 후 보이지도 않을 만큼 사라진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백미러로 거리 조절을 하기가 힘들어서 뒤를 돌아봐야 하는데, 이 좁은 하이웨이에서 뒤를 돌아보기가 너무 위험해서 그냥 달렸다고 한다. 몇 번 이런 일이 있고나니 나중에는 아침에 일정을 시작하자마자 그가 앞으로 가버리는 일이 생기고 만다. 그와 동시에 아내의 불만은 쌓여만 간다.
아내: “너 왜 자꾸 먼저 가냐? 예전에는 같이 좀 달리다가 가더니 이제는 아침에 출발하자마자 가더라?”
주현: “나는 혼자 달리는 게 좋거든. 네 뒤에 따라가면 힘도 더 들고 재미도 없어.”
점점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말이다. 그 언제가 될지 모르던 시한폭탄은 바로 이곳 에얼리 비치(Airlie Beach)에서 터지고 만다. 보웬을 출발한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주현이는 먼저 가고, 우리는 뒤에서 에얼리 비치를 향해 달리고 있다. 오늘따라 날씨는 왜 이렇게 더운지 준비해둔 물은 정오가 되기도 전에 바닥이 나고 만다. 게다가 펑크는 왜 이렇게 자주 나는지 벌써 오늘만 세 번이나 펑크를 때웠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에얼리 비치에 가려면 하이웨이에서 벗어나 국도로 들어서야 하는데, 바닷가로 향하는 길이라서 그런지 오르막이 좀 있는데다가 바닷가 근처라 맞바람이 만만치가 않았다. 맞바람이 어찌나 심한지 내리막에서도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덕분에 평지마저도 오르막으로 느껴지는 상황이다. 아시다시피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팀워크이다. 한명이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면 뒤에서 따라가기가 수월하고 선두가 지칠 때쯤 선두를 교체해주면서 주행을 하면 훨씬 수월하게 바람을 뚫고 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람 때문에 고전하고 있던 그 때 주현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에얼리 비치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바람 때문에 약이 바짝 올라있던 아내의 짜증이 드디어 터지고 만다. 더 이상 셋이 자전거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과연 이 상황을 어찌 중재해야 할까? 나로서도 참으로 난감한 입장이다.
잠시 후 우리도 에얼리 비치에 도착한다. 이곳이 젊은이의 도시이건 휘트선데이제도(Whitsunday Islands)로 향하는 관문이건 지금의 나에게는 중요치 않다. 어떻게 해야 지금 이 상황을 중재해야 좋을지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게다가 미션비치에서 이런 일이 처음 발생했을 때 내가 주현이에게 심하게 한마디 한 적이 있어서 더욱 조심스럽다. 행여 부부사이에 껴서 여행하면서 소외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은 샤워하고 뭘 좀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얼른 숙소를 잡는다. 숙소를 잡고 짐을 풀고 있을 때 주현이가 도착한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지만, 생각과는 달리 둘이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는 각자의 할 일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폭풍전야라는 것을 직감했다.
일단은 예전에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가 이곳에서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일하고 있어서 그 친구를 만나기로 선약이 되어 있던 상황이라 대화는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약속장소로 향한다. 오래간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나 맛있는 밥과 맥주를 마시지만 그 와중에도 둘의 신경전은 끊이질 않는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식사가 끝나고 이제는 친구와 헤어져 숙소로 들어갈 시간이다.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오랜 시간동안 침묵이 흐른다. 서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인 것 같다. 그런 상태로 얼마나 걸었을까? 아내가 말을 꺼낸다.
아내: “너 우리랑 같이 여행 하는 거 재미없어?”
주현: “아니 그렇지는 않아. 그냥 혼자 달리는 게 좋아.”
아내: “그럼 혼자 여행하지 왜 우리랑 같이 여행해?”
주현: “같이 가려고 노력했는데, 페이스가 너무 안 맞아서 힘들어. 게다가 나 요즘 무릎도 많이 안 좋아.”
두 사람의 입장을 종합해보자면 아내는 힘든 일도 같이 힘을 합쳐서 헤쳐 나가는 팀을 원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서운하고 주현이는 아내의 일정하지 못한 속도와 유일한 여자라고 특별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며 못마땅했다는 것이다. 사실 옆에서 쭉 지켜본 나의 입장에서는 둘 다 반반의 잘못이 있기에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지금 상황을 진정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대화를 지속했다.
나: “지금 이런 일이 생긴 것은 팀을 이끌고 있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 팀원들의 생각을 미리 듣고 중재를 시켰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주현: “어차피 우리 둘 문젠데 뭘”
나: “어찌됐든, 우리는 팀이잖아. 지금 이런 말이 오가는 것도 그동안 대화가 부족해서 오해가 쌓이고 쌓여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해.”
아내: “그래 그건 맞는 말이야.”
나: “그러니까 서로 한발자국 씩만 물러나자. 주현이 너는 앞으로 나가는 대신 수시로 뒤를 확인해서 거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 당신은 여자라고 특별대접 받으려고 안하더라도 우리가 알아서 배려해주니까 너무 티내지 말고, 알았지?”
아내: “그렇지만...”
열심히 설득은 하지만 서로 감정이 복받친 상태라서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럴 땐 역시 회식을 한번 해야겠지? 근처 상가에서 고기와 술을 한 병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맛있게 고기를 구워 술상을 차리고 한잔씩 술이 돌고나니 그동안의 케케묵은 사건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서로 기분 나빴던 일을 하나씩 얘기하고 듣는 이는 변명하기 바쁘다.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점점 좋아진다. 급기야 나중에는 기분 나빴던 일도 서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대화의 힘이 아닐까? 그동안은 혼자서만 속으로 쌓아두고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그동안의 오해와 실수를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당분간은 아내도 고집을 꺾고 힘들거나 하기 싫은 일도 솔선수범하기로 했고, 주현이는 주행 중에 무조건 맨 뒤에서 달릴 것을 약속했다. 다행히 일이 잘 해결되어서 나도 한시름 놓게 되었다. 물론 이 약속들이 잘 지켜진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술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할 때 쯤 우리는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안날만큼 다시 최고의 친구,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 있었다. 아픔만큼 성숙해지고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했던가? 어찌됐든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여행은 한층 성숙해질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회포를 풀기 위해 간만에 요리 솜씨를 발휘해 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