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비행기 # 10. 보드가야 - 좋거나 혹은 슬프거나 ②







 

보드가야는 불교의 4대 성지중의 하나로서 탄생지인 네팔의 룸비니, 최초의 설법을 한 사르나트, 그리고 열반지인 쿠쉬나가르 와 함께 불교인들에게는 필수 순례지이다.

(개인적으로는 열반에 드신 쿠쉬나가르에 가보고 싶었는데, 농담섞어 얘기하자면 한때 락밴드 "NIRVANA"에 완전 빠졌었기 때문이다.)

아뭏든 그런 이유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절반은 스님들이시고, 그 나머지의 절반은 성지순례객, 그 나머지의 절반은 현지인, 그리고 남은 나머지가 바로 우리같은 어중떠중 관광객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 부모님께서 불교인이시니, 어줍잖게 불교에 대해 들은 바도 많아서

사뭇 진지한 마음으로 마하보디 대탑으로 향했다.

마하보디 대탑은 부처님이 나무 아래 앉아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나무 자리에 서있는 큰 탑이다.

 

 

내가 어줍잖게 들은바로는 힌두교가 대세인 이 나라에서 이곳의 주인 역시 힌두교도였더랬다.

하여 불교 유적에 대한 관리가 매우매우 소홀했던 바,

불교가 국교인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아 겨우겨우 관리를 해왔지만

더이상 발전시킬수 없음에 통탄하며 불교인들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이 성지를 불교인에게 돌려주라는 운동을 마구마구 펼쳤다고 한다.

하지만 힌두교도에게 불교는 힌두교의 종파의 하나일 뿐이기에

서로 한치의 양보 없이 현재까지도 인도 불교계로 이 사원이 넘어가지 않았다한다.

불교의 발생지에서 불교가 천대받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불교의 유적을 다른 종교에서 쥐고 양보하지 않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이다만...

예전에야 많이 망가졌었을지언정, 현재의 마하보디 대탑은 깔끔하게 보수와 관리가 되어있다.

맨발로 들어가도 찝찝하지 않을 정도의 외적 환경을 지니고 있고,

수많은 불교인들이 참배를 하는 모습은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경건한 마음을 끌어내게 만든다.

이 뜨거운 햇살아래 맨발로 뛰어다니는 것은, 내 발바닥을 쥐포화 만드는 느낌이긴 하지만...;;

 

 

뜨거우니까, 발바닥에 모터달아 폴짝폴짝 뛰어 대탑 안으로 들어간다.

황금색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티벳, 미얀마 스님들이 불경을 외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가는 길에는 부처님의 발바닥 자국도 볼 수 있는데,

왜...그렇게 비현실적으로 크게 만들어서

이 경건한 공간에서 "부처님이 공룡만큼 컸단말인가?" 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부처님 조각상들을 보며 대탑을 한바퀴 돌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보리수가 나온다.

이름도 예쁜 보리수, 반얀트리.

여기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나와 나의 일행 역시도 여기에 주저 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으니 우리 또한 그래야 한다는 군중심리도 있겠지만,

아름드리로 펼쳐친 보리수 나무 아래 그늘은

강렬한 햇살도 지져진 발바닥을 식히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기에 최적의 휴식장소였던 것이다.

물론 떨어진 잎 하나를 줏어보겠다고 이리뛰고 저리뛰는 뻘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무에서 따면 안되요!)

 

 

아이고 더워라.

 

관광객답게 브이~

 

 

이 보리수는 진짜 보리수의 손자뻘 되는 아이로

진짜 나무가 벙개맞아 쓰러져서...친히 쓰리랑카에서 분묘해놨던 아이를 모셔왔단다.

...번개맞은 고목나무로 만든 염주가 영험하다던데...흠흠...

 

보리수 나무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움직거리기 싫어하는 게으름병이 솟아오른다.

요기는 이따 해질녘에 다시한번 와서

멋진 야경과 함께 촛불에 소원을 담아 불을 밝혀 볼 예정이므로

템플 한바퀴만 가볍게 돌고 이곳을 나섰다.

아침에 먹은 맛난 티벳음식 먹으러 가자고 꼬시면

밍기적거리다가도 다들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서기 마련이다.

(참고로 이곳에는 대탑과 보리수 외에 식인메기 바글거리는 연못, 아쇼카 기둥위에 돌던지기 등을 보고, 즐길 수 (?) 있다.)

 

진한 비타민 씨~ 즉석 모잠비 쥬스

 

티벳음식은 아니지만 맛있게먹은 치킨 커리와 짜파티

 

이곳은 불교 성지인 만큼 불교를 국교로 가지는 각 나라의 절이 모여있다.

태국, 방글라데시, 티벳, 일본 등 각 나라의 사찰마다 어쩜 그리 특징이 잘 나타내져 있는지

조근조근 걸어서 둘어보기에는 꽤 재미있다.

특히 태국절에 가니까, 간만에 느끼는 태국 분위기에 감회가 새로웠음이다.

더불어 일본절 앞에 있는 노점에서 길거리 쵸우면의 환상적인 맛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아니면 조금 멀리 전정각산과 유영굴을 다녀오는 것도 좋다.

전정각산은 부처님이 고행을 한 곳이고, 유영굴은 부처님의 하산(?)을 막던 산의 호랑이신이 갸륵하여 부처님이 자신의 그림자를 남겨두고 왔다는 전설이 유명한 굴이다.

 

 

나는 일행들과 다음날 이곳을 방문했다.

이곳 바로 앞에는 존경할만한 스님인 법륜스님께서 시작한 빈민가 학교인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다.

 

수자타아카데미로 향하는 길

오토릭샤를 타고 나이란자 강을 지나 상쾌하다면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달린다.

 

 

 

 

 

아침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지역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기분이 좋아진다.

신이 나서 달리던 길.

 

 

그러나 어느 순간 급 우울해지는 지점에 이르렀고,

그 우울함의 광경이 보드가야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규정지어버렸다.

 

 

 

 

 

 

수자타 아카데미 혹은 전정각산, 유영굴을 가기 위해서는 하리잔들 즉, 카스트 계급에조차 끼지 못한다는 불가촉 천민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쳐야 한다.

 

 

 

 

20~30분이라는 꽤 긴 시간을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데,

양 옆에는 폭격이라도 맞은 듯 도저히 사람이 거주할 수 폐허를 지나게 된다.

이 폐허에서 조금씩 사람이 사는 듯한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둘씩 아이들 혹은 주민들이 나와서 초롱초롱하고 깊은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온다.

어떤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하는건지 난감하다는 생각 이전에,

이곳에서 이렇게 편안히 앉아 바람을 쐬며 상쾌하다는 사치를 부리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없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면서 천진난만하게 손을 흔들기도 한다.

순간 나는

카메라를 통해 이들을 바라보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저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줘야하나 말아야하나,

안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행위를 과연 저들에게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이 옳은일인가

아니,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인가...

 

나는 부끄러운 인간이었다.

무슨 위험한 것이라도 되는 양, 사파리 관광하듯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그들의 겉모습을 보면서 안됐다...라며 혀만 쯧쯧 차고 마는

알량하기 짝이없는 위선적인 동정심을 발휘하고 있는 가식적인 인간에 불과했다.

 

혹자는 내려서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한지 몰라~"라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은 나의 세속성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환한 미소로 카메라 앞에 서지만,

나는 다른이들처럼 내릴 수도, 고개조차 들 수가 없었다.

나 역시도 한없이 가증스런 인간이기에, 그렇게 내려서 아이들과 사진한장 박고

혀를차며 안쓰러워하지만, 결국엔 냉정하게 돌아서 오는 관광객의 위선적인 모습을 욕할수도 없다.

 

이렇게 부끄러워하다가 지나면 또 재빠르게 잊고,

이런 가식적인 사진 몇장 뿌리며 빈민가를 방문했노라 하고

대단한 모험가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떠들 미래의 내 모습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 했다.

나는 복받은 인간이었어 라는 깨달음과 함께...

 

 

 

 

 

어쩐지 회피하고 싶었다.

그런 부끄러운 내 모습도,

그런 나를 마치 멀리서 온 이상향이라도 되는 듯 쳐다보는 눈빛도...

세상의 불공평함에 거의 처음으로 내가 우위에 있음을 실감하지만

기쁘지도, 안도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 안에 깊숙한 곳에서는 내가 저곳에 있는 아이들이 아님을 부모님께, 조국에, 하늘에 감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솔직한거다.

이런 불공평함이 정말 온 가슴이 찢어지게 요동을 칠 만큼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증스런 나의 가슴은, 이렇게 순간 아파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거

지금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거...

그런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지금도...너무 밉다..

왜 실천하지 않는가에 대한 핑계 5가지쯤은 댈수 있지만

하나하나의 핑계를 댈때마다 내가 내 자신을 얼마나 부끄러워하며 얼마나 가슴아파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난...자꾸 피하고만 싶다.

이들을 떠올리는 것도,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도...

 

 

 

수자타아카데미의 병원

 

 

 

안타까움이 채 가시지 않은채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법륜스님의 이야기나 수자타 아카데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실천하는 분들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일어났다.

법륜스님의 작은 자비심으로 시작한 수자타 아카데미는 하리잔 아이들의 작은 학교로 시작, 지금은 병원까지 운영하며 마을의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처음에는 오히려 교육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일반 양민(?)들과 어울리지 못하였는데,

차츰 서로의 계급 너머에 있는 우정을 만들고 배움에 대한 열망을 채워가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내게...이런 해피엔딩을 만들 수 있는 실천력이 없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부끄러움을 느낀다.

심지어 이곳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에 살짝 동정심과 나 자신에 대한 감사의 위안이 느껴짐에 흠짓 놀라기까지 했다...나. 고작 이런 사람이라는거...한없이 작다. 나란사람...

 

나누는 사람이 되자.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 꼭...

그렇게 한 후에도...그래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다짐한다..

 

앞의 전정각산에 오르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유영굴에 들어가

어둠속에 적응해보고...

이후의 일들은 돌아가는 길의 또다시 마주해야하는 부끄러운 내 모습에 가려

아무런 감흥도 남기지 못했다.

 

돌아가는 길...

집이라 말할 수 없는 무너진 벽 너머에서 태어나, 너려있는 오물을 밟으며 걸음마를 시작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살기엔 현재의 몸뚱이 가누는 것이 너무나 벅찬 사람들...

벗어나기엔 희망의 구멍이 너무나 멀고 작아 바라볼 수 조차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멀끔한 외국인의 가식적인 인사에 환한 미소로 반가움을 표하는 사람들..아이들...

 

행여나 부끄러워하면서도 결국 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있는 나의 무답이 상처가 될까 싶어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

가슴이 아팠다...

 

 

 

 

 

내게 보드가야는 이런식이었다.

부처님의 성지 라는 점 외에 더 크게 내 한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보드가야의 기억은 아픔이었다.

수자타를 나와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도 크게 다르지 않는 가난한 모습들.

마하보디 템플 앞의 삥뜯는 아이 대장이 무서운 눈초리를 함에 얄미워하던것도

명상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염불소리의 장엄한 울림도..

그 어떤 기억보다 더 크게 차지하는 건 아픔. 슬픔.

 

 

한동안 이런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다시 나의 현실, 여행자의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 왔다.

...식사시간.

인간은 하등의 동물임이 틀림이 없는 것이...

배가 고프자, 다시 먹을 생각을 하고, 그 전의 고귀한 감정 따위는 다 잊어버린다.

그래도 여행은 지속함에...

 

 

 

 

 

 

 

해질 녘, 다시 마하보디 대탑으로 간다.

조그만 그릇에 담긴 양초를 하나 사서

불빛을 밝히고 소원을 빌어본다.

마하보디 대탑 전체를 울리는 염불소리와 음악소리는

이상하게 마음을 차분하고 경건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진지하게 다가가 촛불을 밝히고,

하늘에 영롱하게 떠서 영험한 빛을 발휘하며 대탑을 더욱 아름답게 밝혀주고 있는 달빛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숙소로 돌아온다.

 

 

 

 

 

 

이제 보드가야를 떠나 여정을 계속해야 하는 시간...

밤기차를 타기 위해 조심스럽게 지프를 타고 조용히 이동을 한다.

가야역에 도착하고...

웨이팅룸에 고여있는 물웅덩이는 여전하고...

나의 여행은 계속 되었다.

 

보드가야를 떠올리며...비행소녀

마하보디 대탑 안 황금불상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