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기 # 9. 보드가야 - 좋거나 혹은 슬프거나 ①

악명높은 비하르주에 다시 왔다.

더러움과 두려움과 안쓰러움과 경건함과 정신나감이 뒤범범 마블링이 되어있는 느낌의 그곳.

다른 몇몇 곳들처럼 나는 이곳에 두번째 방문을 하게 되었다.

보드가야로 가기위해 다시 가야역에 내렸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곳, 보드가야.

깨달음의 정체가 무엇일까 암만 고민해봐도 깨달음이라는 단어의 뜻 조차 이제는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지몽매한 범인(凡人)들이 어떻게서든 깨달음 끝자락이 지나간 바람이라도 느껴볼까 해서 찾는 그곳.

보드가야의 여정은 항상 가야역에 대한 기억부터 시작된다.

인도에서 기차를 수도없이 타봤지만,

여기만큼 도착하기전에 갑갑해지는 곳이 없다.

가난한 여행자는 우리나라 33배에 달하는 넓이의 땅떵이를 돌아다님에 있어 야간 기차이동이 필수임에, 기차 이동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어찌보면 허름하고 뭐가 나올지 모르는 불안한 숙소보다는

기차 침대칸이 더 편하다 느낄때도 있었다.

다만,

가야역에서 나를 긴장케하는 것은 사람. 사람.

비하르주가 가난한 동네라는 걸 너무 익히 들어서 각오를 단단히 한 탓일까

어쩌면 나의 편협된 시각이 과잉 편견을 그 각오속에 박아버려서일까.

여느 기차역보다 더 더럽고 더 붐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느 역보다 역밖을 나설때 긴장의 심호흡을 두배는 더 해야한다.

카주라호를 떠나, 사트나를 거쳐, 가야역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4시.

해는 6시 반쯤 뜰테니, 그때까지 잠시 머물 웨이팅룸으로 일행들을 인도했다.

이보다 더 더러운 웨이팅룸을 많이 보아오긴 했지만,

보름전 내가 이곳을 거쳐갔을때 고여있던 물웅덩이가 그모습 그대로 (물색깔만 조금 더 진해진채로) 고여있음에 기겁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건 나만 아는 사실이니 애써 괜찮은척 해 본다.

사실 보름전에 왔을때는 그 웅덩이를 못참고 차라리 복도에 나가서 자련다 라는 생각에

복도에 침낭피고 눈을 붙이는 용기도 발휘하지 않았던가

"뭐, 생각보단 괜찮은걸? 여기 원래 이래. 말했잖아!"

라고 태연하게 말한 뒤,

나는 잠시 뜯어진 신발을 고치러 나간다.

역에서 정말 두발짝만 나가면 신발고치는 상인들, 물파는 상인들, 혹은 그져 내가 신기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둠속에 깊은 눈을 껌뻑거리며 일제히 나를 쏘아보기 시작한다.

긴장. 어딜가든 긴장만하면 오히려 여유로와지는게 여행길이다.

한 아저씨에 다가가 신발을 내보이며 꼬매고 붙여달라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나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원 하나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꼭두새벽에 등장한 신기한 구경거리를 마치 진짜로 뚫어버릴 태세로 바라보거나,

혹은 경계심 어린 눈빛을 가득담아 쳐다보기 시작한다.

쳐다보기만 하겠나,

영어도 안통하는데, 이사람 저사람이 어쩌따 저쩌따 내게 말을 걸고,

신발고치는 아저씨에게 참견하고, 심지어 내 신발을 뺏어서 자신이 고치겠다 나서는 통에

정신머리가 하나도 없다.

"조용조용! 나 이 아저씨한테 맡긴거니까 아저씨가 고쳐줘요!!!"

라고 어설픈 힌디 단어를 섞어가며 큰소리 치고 고 앞에 쭈구려 앉았다.

역 바로앞인지라 경찰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큰소리쳤지,

사실 그 눈빛들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저씨는 재빨리 내 신발을 낚아채서 본드질을 시작한다.

본드 통 뚜껑을 열고...맨손으로 푹 떠서 검지과 중지를 이용해 쓱쓱쓱 바라는 익숙한 손놀림.

꼼꼼히 본드를 다 바르고 갈라진 바닥을 붙인 뒤, 자신의 손을 검디검은 수건으로 쓱쓱닦고

실통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 마치 수놓는 것처럼 쓱싹쓱싹 꼬맨다...

굳은살이 박힐대로 박혀 삐쩍마른 팔뚝에는 어울리지 않을만큼 두리뭉툭한 투박한 손으로 본드를 바름에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것과 더불어, 마른 본드를 손에서 떼내는 잔인한 아픔에 대한 급 상상으로 어쩐지 인상이 써진다.

물론,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내내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추근덕거림 때문에도 인상이 써지는지 모르겠다.

"너 이 시계얼마니? 이거 나줘!"

"너 이 가방 좋다. 나 줘@!"

"너 물 안살래? 이거 단돈 10루피야!!"

그리고 슬며시 내 팔도 한번씩 만져보는 사람.

고작 5천원짜리 시계에 눈독을 들이고, 5천원짜리 가방을 부러워하고, 250짜리 가짜물한병 팔려고 혈안이 되있는 것은...어줍잖은 동정심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겠지만,

손한번, 팔한번, 살한번 만져보고 싶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서는 동정심보다는 두려움, 아니 그보다는 여행에 적응할대로 적응해버린 나의 "화"가 솟아오른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이미 눈으로 내 온몸을 훑어봤음이 느껴진다.

갑자기 빙글빙글 사람들을 둘러보니, 다들 제정신이 아닌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내가 정신이 나갔는지도 모른다.

"뭐 하는 거야? 저리 안가?"

내 말을 알아듣던 말던 일단 소리높여서 화를내니

신발 고치는 아저씨는 행여나 온 손님을 놓칠까 덩달아 같이화를 내주고,

사람들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흩어지는 '척'해 준다.

알다시피, 진짜 화를 낼만큼 내가 그리 대범하지는 않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여행에 적응을 하다보니 나름의 대처방식이 생겼고, 경찰이 있는 앞에서 쪼꼬만 여자애가 소리를 지르면 다들 물러난다는걸 배워버린 내 방식의 '두려움의 표현'이다.

물론 이건 때와 장소 사람을 가려해야하는 것은 물론이요, 쉽사리 흉내내서도 안될것이라!

한달을 성의없이 질질 끌며 다녀서 헤질대로 헤진 나의 싸구려 신발에 본드를 바르고 실로 튼튼하게 이중 매듭을 짓는데 드는 비용은 단돈 30 루피. 손님을 끌기위해 사람들과 쟁탈전을 벌이고, 화를내고, 손에 본드를 범벅한 댓가는 고작 우리돈으로 750원.

이렇게 가난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해가 된다.

털레털레 신발을 들고 웨이팅룸에서 두려움에 떨고있는 일행들에게 와서는 이전에 내가 보고 느낀 가야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다. 최대한 선입견을 주지 않으려 노력은 했지만, 전혀 전달이 되지 않고 오히려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만 재촉했다 하여도 할 수 없다. 기차표를 끊어논 탓에 어쨌든 다음 여행지는 인도여행의 로망 바라나시니까, 그 로망때문에라도 이곳이 더 싫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새벽 해가 소리소문없이 다가오고, 역안에 늘어져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드가야는 여름이 비수기인지라 외국인이 우리밖에 없어 우리의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다.

보드가야는 가야에서 오토릭샤나 지프로 약 40분정도 더 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가 있고,

그 자리를 중심으로 각 나라의 절들이 세워져있다.

또 주변에 부처님이 수자타 여인에게 유미죽을 공양받으셨다는 수자타마을,

고행을 하시던 전정각산, 부처님의 그림자가 남겨져 있다는 유영굴 등

불교를 알면 흥미로운 유적지들이 있는 곳이고,

불교 신자라면 반드시 방문해야하는 성지이며,

불교를 몰라도 성지를 찾아온 사람들과 경건한 분위기에 한번쯤을 찾아갈만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불교를 그래도 어줍잖게나마 알고 가족이 불교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그리 좋아라하진 않는다. 이유는 나중에...)

겨울에는 북쪽 다람살라에서 추위를 피해 내려오는 티벳 승려분들과 성지 순례객으로 발디딜틈 없는 이곳은 여름에 방문한 우리들에게는 고요한 곳이었다.

이 고요함과 시골스러운 전원 덕분에 보드가야의 평화스러운 느낌을 좋아하는 이도 적지 않다.

더불어, 보드가야에서 절때 빼놓을 수 없는 티벳음식때문에 보드가야를 사랑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래서 우리도 숙소를 아주 수월하게 잡고, 피로도 풀지 않은 채 우선 식사부터 하고본다.

티벳음식은 한국음식과 매우 비슷한면이 많아 누구에게나 입맛에 잘 맞을 뿐더러,

보드가야의 음식은 그 놀라운 맛에는 턱없이 부족한 댓가로 느껴질 만큼 너무나 저렴하다.

우리나라 만두와 비슷한, 그러나 속 내용물에 따라 더 맛있기도한 모모가 한접시에 20~30 루피(500원~750원), 수제비와 유사한 맛의 뗌뚝이 한그릇에 30루피, 칼국수와 흡사한 뚝바가 30루피...(뚝바와 뗌뚝은 이름이 왜 맨날 헷갈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30루피면 한끼식사 흡족하게 할수 있는, 티벳음식뿐만아니라 그 밖의 음식들도 이곳을 따를 지역이 없는 보드가야는 내가 꼽는 인도의 대표적인 '맛지역'이기도 하다. (각국절이 있는 탓에 각국음식도 아주 맛나다)

허기짐과 안도감으로 인해 평소보다 두배의 양을 흡족하게 먹어치운 뒤,

타박타박 걸어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자리, 보드가야 최대의 유적인 마하보디 템플을 가기로 한다.

To be continued...

1편에는 사진이 별루 없군요. 가야역에서 카메라들면 위험해욧!

숙소 베란다에서 비행소녀

뒤에는 논 밭의 전원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