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2002년 한국, 월드컵 4강 진출!

2006년 호주, 월드컵 16강 진출!!

2008년 러시아, 유로 2008 8강 진출!!!

7년 전,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슴을 뜨럽게 달궜던 거스 히딩크 감독. 그가 또다시 마법을 부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시 한 번, 명장은 명장이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 거스 히딩크 감독의 러시아 마법은 아쉽게 8강에서 멈추었지만, 우리는 그의 소식을 통해 다시금 2002년의 꿈을 추억하며 설레지 않았던가.

너무 오래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히딩크 감독의 소식을 다시 들으니 7년 전 내가 찾았던 히딩크 마을에서의 감동들이 다시금 떠올라, 먼지 쌓인 여행일지와 사진들을 다시 꺼내어 보게 되었다. 그동안 왜 그 때의 설레임과 뿌듯함, 벅찬 감동과 찐한 우정의 그 짜릿함을 잊고 지냈을까....

내가 유럽을 찾았던 2002년 9월은, 아직도 월드컵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그래서 그당시 우리 대표팀과 맞붙었던 팀들을 곱씹어 떠올려보면 이해가 가겠지만, 스페인에서는 차마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없었고, 이탈리아에서는 태극기를 달고 지나가다가 물세례를 맞은 여행객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며, 독일에서는 어쩐지 분한 기분이 들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한국인이오~'라며 태극기를 맘껏 흔들어 보일 수 있었던 곳! 나를 마치 고향사람이라도 되는 듯 반갑게 맞아주었던 곳. 유럽에서는 한국인이란 이유로 최고의 대접을 받았던 바로 그 곳!! 히딩크 감독의 고향인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Varsseveld(파르세펠츠)였다.

나는 유럽 여행 계획을 짤때, 대강의 루트만 그렸을 뿐, 구체적인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꼭 가봐야겠다고 한국에서부터 마음먹고 갔던 몇 곳 중 하나가 바로 이 히딩크 마을이었다. 그래서 사전조사를 해가기는 했었지만, 그때까지도 어느 여행책에나 나올 법한 유명한 곳이 아니었던 데다가 암스테르담에서도 기차로 2~3시간은 족히 떨어져 있는 매우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찾아가는 데에 적징낳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현지인들에게 물어물어, 기차를 잘못타는 위기를 몇번이나 모면한 끝에 간신히 도착한 히딩크 마을에서 나를 놀라게 한 것은..............바로, 곳곳에서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 광경에 나는 울컥 눈물이 날 뻔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워낙 오래전 일이니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파르세펠츠의 분위기는 오로지 한국인만을 위한 마을이라는 느낌이었다.

유럽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느꼈겠지만, 유럽의 그 어느 유명한 곳을 가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는 많아도 한국어로 된 안내책자나 표지판은 발견하기 힘들어 괜시리 서러워질 때가 많다. 하지만 히딩크 마을에는 태극기 뿐 아니라, 한국어 간판은 물론이고 한국어로 된

안내지까지 안내소에 마련돼 있을 정도다. 또한 그보다도 가장 먼저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히딩크 마을로 가는 고속도로(?)에, 약간 어색한 한글로 또박또박 '파/르/세/펠/츠"라고 쓰여있던 이정표였다. 하긴, 당시에 그 조그만 마을을 찾아오는 동양인이라곤 100이면 100, 모두 한국인 뿐이었을 테니까.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이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지나가는 나를 향해서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거실에서 식사를 하던 꼬마들은,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라고 어설픈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히딩크 마을은 사실, '히딩크'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라고 한다. 그래서 곳곳에서 익숙한 Hiddink라는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크지 않은 마을이지만, 그곳에서도 Guus Hiddink 감독은 인기인지, 히딩크 감독이 태어난 생가도 따로 안내하고 있고 히딩크 감독의 이름을 딴 '거스빵(Guusjes)을 팔기도 한다. ㅋㅋ

하지만 나의 가슴을 '쿵'하고 때린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히딩크 마을, Varsseveld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겐, 혹은 한국인에겐 '뭉클' 그 자체였지만, 내 가슴을 '쿵쿵' 두방망이질 치게 만든 건 다음 순간이다.

산책에 지쳐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나에게 어떤 젊은 여자가 전단지를 건네며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

9월 25일부터 28일까지 히딩크 마을에서 펼쳐진다는, 네덜란드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파티였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행사를 안내하고 있는 전단지를 내게 건네준 그 여자는, "우리는 가족이고 친구다"라는 말과 함께 꼭 와주었으면 한다고 인사했다.

Guus Hiddink 감독.

대체 그가 누구길래, 어떤 존재이길래 비행기로도 13시간, 거기다 기차로 3시간만큼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민족, 머리카락색깔도, 눈동자 색깔도, 언어도, 사고방식도 다른, 이렇게도 이질적인 두 민족을, 이렇게도 끈끈하게 연결해 놓았을까.

나는 지금도, 내가 히딩크 마을을 찾았을 때 받았던 환대와 감동을 생각하면 심장이 뜨거워지다 못해 벅차올라 온몸의 털들이 쭈뼛쭈뼛 설 지경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이때만큼 가슴 미어지게 자랑스러웠던 적은, 월드컵 4강을 놓고 스페인과 맞섰던 당시, 승부차기에서 홍명보 선수가 골을 넣던 바로 그 순간과 더불어, 살면서 몇 번 없을 것 같다. 또한, 아마도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극진한 환대받을 수 있는 곳 역시 지구상에서 딩크 마을 외에 얼마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지금

다시 찾는다면 또다른 기분이겠지. 2002년, 월드컵 직후였기에 가능했던 감수성과 감동들이기에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추억들이다.

지금은 히딩크 마을에서 러시아 사람들을 더 많이 보게 되진 않을까. Dutch-Russian week, Dutch-Austrailia Week 같은 게 생기진 않았을까. 관광안내소의 안내지는 이제 한국어/영어/러시아어로 만들어져 있지는 않을까.

정말 대단한 히딩크.

꿈은 정말 이루어지는 군요.

앞으로도 계속,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