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감독 : 제임스 보빈

주연 : 이사벨라 모너, 유지니오 델베즈

이 영화, 왜 개봉 못한 거지?

<도라도라 영어나라>가 실사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뻤다. <도라도라 영어나라>는 아들이 어렸을 적, 내가 자주 틀어줬던 애니메이션 비디오로 얼굴이 도라라는 꼬마 여자아이가 정글에서 모험을 하는 내용이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원숭이 부츠도 나오고, 못된 여우 스와이퍼가 악당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아용 영어 교재로 편집이 된 만큼 재미있게 보기만 해도 유익하다. 이렇게 아들과의 어린 시절 추억이 있기에 실사 영화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라도라 영어나라>의 실사 영화인 [도라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는 2019년 8월 9일에 개봉해서 개봉 첫 주 1천7백만 달러로 4위를 기록하는데 그쳤으며, 북미에서 6천만 달러라는 미지근한 흥행 성적을 올렸다. 북미 흥행 성적이 부진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결국 국내 개봉은 아예 무산되고 말았다. 북미 흥행 성적이 부진하더라도 극장에서 보려고 했던 내 계획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이다.

Seezn에서 이 영화의 가격이 2천5백 원으로 내리길 기다렸다가 아들에게 [도라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를 보자고 꼬드겼다. 하지만 아들은 북미에서 망한 영화는 재미없는 영화라며 보기를 거절했다. 하긴 아들은 너무 어려서 <도라도라 영어나라>를 봤기에 나와는 달리 이 영화에 대한 추억이 없으니 기대감 또한 없었나 보다. 그래도 효자인 아들은 한번 속는 셈 치겠다며 토요일 오후 [도라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를 봐줬으니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다.

정글을 뛰어놀던 그 아이, 도시에 가다.

[도라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는 원작 그대로 여섯 살 꼬마 아이 도라와 도라와 사촌 디에고가 벌이는 신나는 정글 모험을 오프닝에 담았다. 하지만 디에고가 미국으로 떠나고 도라는 고고학자인 아버지 콜(마이클 페나)과 동물학자인 어머니 엘레나(에바 롱고리아)와 함께 정글에 남는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도라(이사벨라 모너)는 어느덧 열여섯 사춘기 소녀로 성정한다.

그 사이 콜과 엘레나는 고대의 잉카 제국의 잃어버린 황금 도시 파라파타를 찾을 단서를 발견하게 되고 모험을 나설 준비를 한다. 그리고 아직 어린 도라는 디에고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보내진다. 미국에서 사촌 디에고와 재회하고 학교에 다니며 새로운 생활을 적응해나가는 도라. 하지만 도시 생활은 결코 쉽지 않다. 정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다움을 내세우는 도라.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도라가 괴짜라며 따돌림을 시키고, 급기야 디에고도 도라를 창피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도라가 힘겨운 도시 학교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한다. 자연사 박물관으로 현장 학습을 나갔다가 친구들과 함께 괴한들에게 납치된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도라를 앞세워 도라의 부모가 찾아낸 파라파타의 황금을 빼앗는 것. 위기의 순간 콜의 친구라는 알레한드로(유지니오 델베즈) 교수가 도라와 친구들은 구해준다. 이제 그들은 악당들에게서 도라의 부모를 지켜야 한다.

어린이 영화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물론 예상은 했었다. 유아용 영어 교육 영상물인 <도라도라 영어나라>를 영화화했으니 당연히 영화도 어린이 관객을 타깃으로 만들어졌음을 말이다. 솔직히 나는 그래서 더욱 재미있었다. 영화 자체가 약간 장난스럽지만 그렇기에 부담 없이 1시간 42분을 즐길 수가 있었다. 특히 좋았던 것은 도라를 연기한 이사벨라 모너의 매력이다. 마치 만화에서 툭하고 튀어나온 듯한 귀여운 외모와 과장된 연기를 선보이는데, 정말 <도라도라 영어나라>의 도라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줬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도라도라 영어나라>의 팬을 위한 서비스이다. 영화의 초반 어린 도라는 마치 <도라도라 영어나라>가 그러했듯이 화면 밖 관객에게 말을 걸며 스페인어를 가르쳐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교육용 영상물이지만 미국에선 스페인어 교육용 영상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 도라를 보며 콜과 엘레나는 '크면 괜찮아지겠지?'라며 걱정한다.

더 좋았던 것은 CG로 완성된 도라의 원숭이 친구 부츠와 악당 여우 스와이퍼이다. 솔직히 부츠와 스와이퍼 CG는 할리우드 영화답지 않게 어색하고 이질적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원작인 <도라도라 영어나라>의 향취를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스나이퍼가 악당들을 도와 도라의 지도를 훔치는 장면에서는 내가 실사화된 영화 [도라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도라도라 영어나라>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이제 아들과 어린이 영화를 볼 시절은 지났나 보다.

나는 나름 [도라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를 재미있게 봤다. 특히 잘 빠진 실사회가 아닌, 조금은 B급 감성이 느껴지는 장면들, 예를 들어서 부츠와 스와이퍼의 CG, 도라가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은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 덕분에 흔한 할리우드 어드벤처 영화와는 차별화된 재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아니었나 보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함께 극장에서 봤었는데, 1년 사이에 훌쩍 커버렸는지 이제 이런 영화는 유치해서 못 보겠다고 한다. 지금 나는 아들에게 제92회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크리스 버틀러 감독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와 우리나라에서 미개봉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노우 몬스터]를 보자고 꼬드기고 있는데, 아무래도 실패할 것 같다. 이들 영화는 혼자 봐야 할 듯...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큰다. 하지만 부모는 그러한 아이들의 성장을 제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이 사춘기 반항의 이유가 아닐까? [플레이모빌 더 무비]에 이어 [도라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를 보고 나서 유치하다는 영화에 대한 아들의 평가를 듣고 나니 이제 아들에게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은 부쩍 커가고 있는데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도라도라 영어나라>를 함께 보던 시절의 어린 아들이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앞으로 이런 영화는 내 손자, 손녀와 함께 봐야 할 듯... 그때까지 혼자 봐야겠지?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