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등 무려 4개 부문을 휩쓸며 큰 화제가 되었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만큼은 아니지만 큰 주목을 받은 것이 있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이다. 이미 작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작품상, 감독상 등 10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저력을 보여줬다면, 이번 제92회 때는 여러 편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이 아카데미 주요 후보에 오르며 더 이상 넷플릭스가 영화계의 주변이 아닌, 중심에 진입했음을 선언했다.

작품상에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과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가 나란히 후보에 올랐다. [아이리시맨]과 [결혼 이야기]는 작품 상 외에도 주요 후보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중 [결혼 이야기]는 여우 조연상(로라 던)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두 교황]이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후보에 올랐고, 장편 애니메이션상에는 [클라우스]와 [내 몸이 사라졌다]가 기라성 같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영화들을 제치고 후보에 올랐다.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으로 아카데미의 여운이 채가시지 않은 지난 주말,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넷플릭스 영화들을 봤다. 이미 [아이리시맨]과 [결혼 이야기], [클라우스]는 봤으니 이번에 내 타깃이 된 영화는 바로 [두 교황]과 [내 몸이 사라졌다]이다.

제목 : 두 교황

감독 :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주연 : 조나단 프라이스, 안소니 홉킨스

종교인은 아니지만...

솔직히 나는 종교가 없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교회에 가는 것도 귀찮고, 산 중턱에 있는 절에 가는 것도 귀찮아서 이렇게 40여 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종교 없이 살고 있는 중이다. 뭐 아직까지는 종교가 없어서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하기에 앞으로도 종교가 여전히 없을 계획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가끔 극장가에 종교 영화가 개봉해도 내겐 별 감흥이 없다. 그렇기에 [두 교황] 역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내가 이 영화를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실화 관련, 실존 인물 관련 영화는 좋아한다는 점이다. [두 교황]은 종교 영화임과 동시에 실존 인물 관련 영화이다.

실존 인물 관련 영화를 볼 때, 내가 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영화 속 실존 인물들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는 것이다. 영화에 그려진 실존 인물의 행적과 실제 행적을 비교하면서 영화를 보면 실존 인물 관련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교황]도 마찬가지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어떤 인물인가?

[두 교황]에는 세 명의 교황이 나온다. 영화의 시작은 2005년인데 그 해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세상을 떠난 해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내게도 굉장히 익숙한 이름인데 1984년 5월 3일 우리나라를 방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요한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그 친구를 '요한 바오로 바보 2세'라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흠흠... 어찌 되었건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굉장히 보수적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죽음으로 교황청은 새 교황을 뽑기 위해 콘클라베가 열리고, 이 콘클라베에서 보수파인 개혁파가 맞붙게 된다. 그리고 보수파인 독일의 요제프 라칭거(안소니 홉킨스) 추기경이 선출되어 베네딕토 16세가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동안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일단 베네딕토 16세는 어린 시절 히틀러 소년단에 가입한 이력이 있어서 수많은 신자들로부터 나치라는 비난을 받았고, 2012년 5월에는 교황청 내부의 암투와 비리를 폭로한 책이 출간되며 큰 곤욕을 치렀으며,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교황청에서 은폐했음이 드러나며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다. 결국 그는 2013년 2월 11일 성명을 발표하여 2월 28일 자로 사임한다고 발표한다. 이로써 베네딕토 16세는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 만에 나온 퇴임 교황이자 사임한 3번째 교황이 되었다.

모든 것이 달랐던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두 교황]은 사임을 결정한 베네딕토 16세가 아르헨티나 추기경이며 개혁파인 호르헤 베르고글리오(조나단 프라이스) 추기경을 교황청으로 초대하여 며칠간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실 호르헤 추기경은 사임서를 제출하기 위해 베네딕토 16세를 찾은 것이지만 베네딕토 16세는 호르헤 추기경의 사임서는 애써 외면하며 그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로 시간을 보낸다.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보수파인 베네딕토 16세와 개혁파인 호르헤 추기경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베네딕토 16세는 타협했다고 비난하고, 호르헤 추기경은 타협이 아니라 진리가 변한 것이라 답변한다. 이렇게 서로 생각이 달랐지만 사임을 결정한 베네딕토 16세는 은연중에 호르헤 추기경을 자신의 후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교황청의 위기를 타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강력한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호르헤 추기경임을 베네딕토 16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의 바람대로 호르헤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다.

의외로 재미있다.

사실 [두 교황]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두 교황'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거의 대부분이라 종교적이지 않은 나로서는 영화를 보기 전 어디에서 재미를 느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조나단 프라이스와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안소니 홉킨스의 명불허전 명연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두 교황'의 대화는 비록 조용하고 차분하게 진행되지만 열광적이었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젊은 시절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긴장감도 느껴졌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독재자에게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한의 눈물은 아르헨티나의 독사 독재 시절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두 교황]을 본 시간이 늦은 밤이라서 보다가 잠이 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2시간 6분의 러닝타임 동안 온전히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만큼 의외의 재미도 지니고 있는 영화이다.

제목 : 내 몸이 사라졌다

감독 : 제레미 클라핀

더빙 : 하킴 파리스, 빅투아르 뒤부아

프랑스 애니메이션이라고?

이제는 벗어났다 싶었는데 [내 몸이 사라졌다]라는 제목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앞에서는 또다시 프랑스 애니메이션에 대한 두려움이 되살아났다. 제목도 기괴한데 내용은 더욱 기괴하다. 잘린 손 하나가 해부학실을 빠져나와 자신의 주인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고 있다니... 베리 소넨필드 감독의 기괴한 코미디 [아담스 패밀리]에서 손 사람은 본 적이 있지만 잘린 손이 주인을 찾아 나서는 애니메이션이라니 솔직히 보기 꺼려졌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그렇게 기괴한 영화는 아니었다.

[내 몸이 사라졌다]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나우펠의 이야기이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고, 어머니를 따라 피아노 연주자도 되고 싶었던 나우펠은 교통사고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부모,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 이후 나우펠은 피자 배달원으로 일하며 근근이 생활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일하는 가브리엘을 알게 되고 그녀를 몰래 따라가다가 그녀의 삼촌이 운영하는 목공소에 취업을 하게 된다. 교통사고 이후 그 어떤 희망도 없던 나우펠에게 사랑이라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 순간이다.

스릴러와 로맨스의 기묘한 결합

영화는 잘린 손이 주인인 나우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림과 동시에 가브리엘을 향한 나우펠의 사랑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이 기묘한 애니메이션은 스릴러와 로맨스의 묘미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가브리엘을 향한 나우펠의 사랑이 조금씩 진행될수록 도대체 왜 어쩌다가 나우펠의 손이 잘리게 되었는지,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가브리엘을 향한 나우펠의 사랑이 더욱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진다. 가브리엘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은 나우펠. 하지만 그 순간 가브리엘은 나우펠에게 돌아서게 된다. 나우펠 입장에서는 부모를 잃은 후 유일한 희망이었던 가브리엘을 잃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벌어진다. 부모도, 가브리엘도, 그리고 한쪽 손마저 잃은 가브리엘. 그는 자신을 향한 운명을 거역해보기로 한다.

뭐든 맘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다.

분명 나우펠의 인생은 뭐든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암울한 인생이다. 사실 나우펠은 그러한 것을 어린 시절 깨달았다. 자꾸 눈에 거슬리는 파리를 잡기 위해 어린 나우펠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파리를 잡는 방법이 있냐고... 아버지는 측면에서 공격하라고 대답해준다. 하지만 나우펠이 아무리 측면에서 파리를 잡으려 해도 파리는 도망치고 만다. 아버지가 시킨 대로 했는데도 파리를 잡을 수 없다고 투덜거리는 나우펠에게 아버지는 쉽다고 한 적은 없다며 웃는다. 그러한 파리는 뭐든 맘대로 안되는 인생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사실 파리는 꽤 많은 장면에서 나온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그리고 고아가 된 나우펠이 친척의 집에 가는 장면에서, 나우펠의 손이 잘리는 사고의 장면에서도 파리는 등장하고 때론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파리를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었던 나우펠의 어린 시절처럼, 나우펠의 인생은 번번이 그의 손아귀를 빠져나가 어떻게든 불행으로 인도하는 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운명을 바꾸려면 예기치 못한 행동을 해야 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우펠은 옥상 난관에서 건너편 크레인으로 점프한다. 이건 위험하고도 미친 짓이다. 점프에 성공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만약 실패한다면 크레인 밑으로 추락해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우펠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크레인으로 뛰어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해야만 한다고 나우펠은 가브리엘에게 말했었다. 그렇다. 인생은 맘대로 되지 않는다. 때론 하늘을 향해 어떻게 나한테 이러냐고 욕이라도 퍼붓고 싶어진다. 분명 나우펠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원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우펠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크레인을 향해 점프를 하며 자신의 운명이 거스르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것임을 선언한다. 비록 부모도 없고, 사랑도 떠났고, 손도 하나 잃었지만 새로운 운명을 향한 그의 점프는 앞으로도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내 몸이 사라졌다]는 기괴하지만 희망을 안겨주는 애니메이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