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술 씨와 고비사막에 다녀온 후 나는 '달의 계곡' '소금 사막'이라는 별명이 붙은 아타카마 사막에도 다녀왔다. 서울에선 평범한 직장인이자 소심한 남편으로 사는 동안 틈틈이 몇몇 악명 높은 사막을 달리고 또 달렸으며 이번엔 호주에 왔다.
그런데 이번 호주는 만만치 않았다. 코스도, 길이도, 날짜도 보통 레이스의 몇 배나 힘든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레이스 후반부로 갈 수록 심신이 지쳤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먼 호주까지 와서 거지꼴을 한 채 다리를 절룩거리며 롱데이 코스를 달리고 있는 걸까. 발을 땅에 댈 때마다 칼로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참아가면서도 왜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뜨거운 햇볕 아래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내 안에서는 ‘이만 포기하자.’고 유혹하는 나와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가자.’고 격려하는 또 하나의 내가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내 자신을 모두 던져버리지 않고서는, 완주는 꿈도 꿀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사막마라톤 대회에선 자연환경 보호가 철칙 중의 철칙이다.
그때까지 나는 그 규정을 철저히 지켜왔지만 당시는 그런 걸 고려할 처지가 못 되었다. 어떻게든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버릴 수 있는 것들을 낱낱이 버리고 마지막으로 침낭과 세리머니를 위해 준비해 온 대형 태극기가 남았다.
결승선까지 꼭 안고 가야 할 만큼 내게 중요한 것들이 무엇일까?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침낭을 버리면 분명 CP에서 덜덜 떨며 추운 밤을 보내야 할 것이다. 태극기를 버리면 출발할 때부터 계획한 멋진 세리머니를 접어야 한다. 어려운 환경 때문에 원하는 것을 끝까지 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늘 ‘완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태극기 세리머니를 통해 가슴 속 열망을 기어이 현실로 끌어낸 나 자신에게 멋진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출국 전 종로의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대형 태극기를 구입해 여기 오기까지 내내 메고 다녔다.그런 태극기를 여기 이 모래 속에 묻어버리고 가야 한다니….
결국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무게로 따지면 침낭보다 태극기가 더 무거웠지만, 도저히 태극기를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됐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갈지 결정해야 하는 절박한 순간을경험하면서 내가 이 미친 짓을 계속하는 이유도 알게 된 것이다.
가슴 속에 담아둔 열망을 현실로 끌어내는 일, 내가 가장 원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열망은 어디에 있는가?
분명 당신에게도 끝까지 가보고 싶은
열망이 있을 것이다.
위 글은 명진출판에서 출간한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 글/제공 :명진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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