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길. 1941년 경북 의성 시골 오지에서 태어남. 연세대 의과대 졸. 1976년 본교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 1978년 강남에 박호길 내과의원 개원. 현대미술작품을 가장 많이 소유한 사설미술관을 설립하는 게 꿈. 2000년 이제 60이다. 땅을 찾아 헤맨다. 어디가 좋을까. 전국을 헤멘끝에 경기도 양평군 전수리 19번지 남한강변 500평을 사들인다.
팔당대교 건너 양평방향으로 계속 직진. 양평 읍에 들어서자 양근대교楊根大橋다. 이름도 희한하다. 버들나무가 많은 동네. 1997년 완공된 765미터의 19번째 한강다리. 다리 건너면 우회전해서 3킬로미터만 가자. 우측에 코르텐이 펼쳐진다.
땅을 구입한 닥터 박은 건축 책을 뒤지기 시작한다. 누구에게 설계를 맡길까요. 25년간 벼르던 일. 장충동 웰콤시티의 설계자 승효상이 맘에 든다. 마침 승효상은 이 대지의 건너편에서 웰컴시티의 주인 박 사장의 별장인 노헌 설계중. 왜 집 이름이 노헌蘆軒이냐구요. 갈대가 많은 동네에 지어진 별장이다 뭐 그런 뜻이다. 참 묘한 인연.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연이어 설계의뢰가 들어오니. 무조건 오케이다.
현관 들어서니 입장료가 6천원이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요. 남한강변 1층에 마련된 카페에서 제공되는 내가 좋아하는 모카커피 값이 포함된 가격이라 그렇다. 남한강변 북서쪽 풍광을 유리창 너머로 관조하면서 커피를 마셔도 되고 아예 남한강변 목조 발코니로 나가 시원한 강바람 맞으면서 마셔도 된다. 갑갑한 도심의 커피전문점에서도 5천 원 하는 커피를 공짜로 마시는 기분. 프런트에서 촬영협조를 구했다. 대번에 오케이다. 미술관 촬영 다니면서 제일 큰 스트레스가 촬영허락 받는 거다. 우선 기분이 삼삼하다.
강변 창가에서 여유롭게 커피 삼매경에 빠진 마누라 놔두고 2층올라가는 계단 촬영부터 시작. 노출콘크리트. 심플하다. 말이 없다. 2층으로 올라가니 좌측으로 1층 카페 쪽으로 보이드된 아트샵. 우회전하니 전시실. 난 할 말을 잊었다. 삐딱한 대지 모양대로 만들어진 전시실은 조금가다 3층 슬래브가 있고 조금 가다 없고 조금가다 있고 없고를 반복한다. 뚫어진 천장을 올려다보니 3층 지붕 슬래브 역시 조금가다 천창이고 조금가다 인공조명이고 조금가다 천창이고 이게 계속 반복되는 거다.
이 갤러리는 연면적 350평에 불과한 소품이지만 설계부터 공사까지 3년이나 걸린다. 2층 전시장 전면에 그랜드피아노가 놓이고 스테이지도 있다. 40인 이상의 단체가 3주전에 예약하면 라이브공연이 여기서 펼쳐진다. 1인당 10만원. 물론 뷔페와 와인 제공. 그림감상도 하면서. 중앙의 노출콘크리트 계단 오르니 3층 전시실이다. 뚫려있고 닫혀있고. 열려 있고 막혀있고. 대단한 장관을 연출한다.
3층에서 하늘정원 나가는 철문 여니 옥상정원이다. 그야말로 현란한 정원. 이 갤러리는 떠 있는 배다. 1973년 만들어진 팔당댐의 관리소장이 댐문을 열면 이 남한강은 좌에서 우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댐문 닫으면 다시 이 강물은 우에서 좌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이 갤러리는 가만히 있어도 팔당댐 관리소장의 명령에 따라 동으로도 갔다가 서로도 간다. 흔들린다. 곳곳에 1층까지 뚫린 선큰가든으로 이 갤러리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 3층 옥상정원에서 내려다보니 남측으로 기다란 1층 코르텐 상자가 강변에 걸쳐져 있다. 9명 직원의 숙소다. 전 직원이 이곳에서 자고 밥해 먹으면서 사는 공간. 9명 전 직원이 싱글인게 그나마 다행.
허탈한 심정으로 1층으로 내려온 난 큐레이터로부터 브로슈어 한 권을 얻었다. 표지는 전면의 강렬한 붉은색의 코르텐강판. 책 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 갤러리 관장인 박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바로 설계자 승효상의 작가의 변이 나온다. 나 수많은 미술관 다녀봤지만 이렇게 당연한 건축에 대한 예우에 감동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고맙습니다. 관장님. 건축가를 인정해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