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의 로망을 이룬 정근옥 씨의 동화 속 목조 주택 |
| 어릴 적 읽은 동화나 애니메이션 영화 속의 환상적인 집은 정근옥 씨의 마음에 꼭 이루고 싶은 꿈으로 자리잡았다. 삐걱거리며 열리는 나무 창문, 뾰족한 지붕, 나만의 세상이 열리는 다락방…. 이제는 그녀가 동화 속 집의 주인공이 되었다. |
 아파트 생활은 그곳이 서울이든 지방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획일적인 구조와 유행을 따른 비슷비슷한 인테리어는 쉽사리 싫증을 느끼게 하고, 집을 단순히 기능적인 공간으로만 만들기도 한다. 정근옥 씨 역시 아파트 생활을 하며 늘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 건축과를 희망했을 만큼 집짓기나 집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언젠가는 내 집을 짓겠다는 욕심이 컸다. 아파트를 처분해 땅을 사고, 터를 고르고, 조금씩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정근옥 씨의 만족감은 컸다. 여름을 난 목조 주택은 초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밴 고재를 고루 사용하고 아이보리와 같은 은은한 컬러와 하나둘 사 모은 앤티크 가구들, 인테리어 분위기를 완성시키는 조명들…. 이러한 조화로 완성된 집은 이사한 지 서너 달 되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오랜 세월 살아온 듯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가을이란 계절과의 어울림도 근사하다. “어릴 적 주택에서 산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서 다시 살아봐야지 했어요. 남편은 주택에 사는 걸 조심스러워했죠. 내가 몸이 약해 살림하기 힘들 거고 벌레도 많이 나온다면서 걱정했는데, 제가 2년 동안 남편을 설득했어요. 그런데 이사와서 한 달 만에 남편도 주택의 매력에 폭 빠졌어요. 다시는 아파트 못 가겠다고 할 정도예요.” 5년 전에 땅을 구입하고 가족들의 이해를 얻어 1층 35평, 2층 25평의 목조 주택을 완성하기까지 정근옥 씨는 상당한 정성을 기울였다. 10여 년 넘게 하우징 페어를 찾아다녔고, 스타일이 다른 집들을 구경하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했단다. ‘많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던 스타일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정근옥 씨는 경기도에 자리한 쁘띠프랑스에 머물며 최종적으로 목조 주택을 짓기로 결심했다. “나이가 드니까 자연적인 대상에 눈이 가요. 나무를 보면 편안한 기분이 들고, 내 자신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듯하거든요.” 1층은 거실과 주방, 가족실과 드레스룸, 욕실, 다용도실, 2층은 부부와 두 딸의 방, 욕실로 구성된다. 노트 1권 분량이 될 만큼 설계도를 직접 그린 정근옥 씨는 머릿속에 원하는 집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올랐단다. 마름모꼴 대지에 집을 어떻게 앉힐지부터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맞추고, 갖고 있는 가구의 크기 등을 고려해 배치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구입한 식탁도 주방 설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당시 팔이 짧은 아이들이 음식을 먹기 쉽도록 폭이 좁고 긴 디자인을 선택했는데, 조리 공간 옆 테라스 창가에 공간을 확보해 배치했다. 시간이 갈수록 앤티크의 멋이 더해가고 손님들 접대하기에도 좋아 1층에서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직접 참여해서 가족이 살 공간을 만들었기에 실현 가능했던 맞춤형 주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문은 얼마나 빠른지 집 구경을 오겠다는 사람도 많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삿짐을 풀자마자 TV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 집을 구경한 사람은 모두 ‘동화 같은 집’이라고 말한다. 정근옥 씨가 원했던 바가 바로 동화 속에 등장할 법한 집을 갖는 것이었으니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증명한 셈이다.  |
| 1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과 선선한 기운이 묻어나는 바람이 가족들의 식사 공간을 가득 채운다. 커다란 창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주택이 주는 선물 중 하나. 그 앞에 놓인 6인용 앤티크 식탁과는 벌써 10여 년의 세월을 같이했다. 2 설계 과정에서 가구의 배치까지 고려한 터라 예전부터 갖고 있던 가구들이 제자리마냥 새로운 공간에 어우러진다. 실내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공간으로 클래식한 카페 분위기가 난다. 정근옥 씨가 만든 인형이 장식품이 되어준다. 3 꿈꾸던 집을 갖게 되면서 더 큰 행복을 얻게 되었다는 정근옥 씨. 새집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일도 귀찮기보다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고. 4 내추럴한 가구와 컬러로 꾸민 주방은 1층 공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능적인 주방 가구로 편리하게 꾸미고, 벽과 천장은 톤 다운된 민트 그린과 고재를 조화시켜 생기와 편안함을 연출했다. 5 1층 거실과 주방은 파티션을 설치해 공간을 분리했다. 성인 허리 높이 정도의 파티션이라 부담스럽지 않게 넓은 공간이 어수선해지는 걸 막아주고 있다. |
| 사는 공간을 주택으로 바꾸고 나서 생긴 큰 변화 중 하나는 네모반듯한 콘크리트 외관의 집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덧문이 달린 격자창문이나 아래층보다 튀어나와 처마 역할을 하는 2층 발코니 등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 보기만 해도 즐겁다. 실제로 발코니는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고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따라 해본 것이라나. 또 하나의 변화는 정원이 생겼다는 점이다. 올여름엔 유독 비가 많이 내렸지만 정근옥 씨는 정원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화분 몇 개를 가꾸던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만큼 나무 한 그루를 보살피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나무에 물을 주고 가치지기도 해주면서 돌봐요. 며칠 뒤에 나가 보면 싹이 틔어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요. 주택은 힘은 들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아요. 땅을 밟으며 몸을 움직일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 여기서는 수시로 그런 일을 찾아서 하죠.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내가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쾌해요.” 바람 따라 흔들리는 여린 들꽃이나 담벼락 밑에 조르르 심은 봉선화, 그리고 주방 창밖에 심은 삼달나무 등은 정근옥 씨의 계획과 취향에 맞춰 선택한 종류들. 불과 몇 달 만에 정원까지 완벽하게 정비된 걸 보면 집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움직였을지 눈에 선하다.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지면서 몸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는 걸 정근옥 씨는 체감해간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집이 텅 빌 테고 저도 할 일이 없어지잖아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을 보니까 둥지증후군을 심하게 느끼더라고요. 앞으로 저도 같은 상황을 겪게 될 텐데, 그때 정원이 제게 놀이터 같은 존재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제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죠.”  |
| 1독특한 구조를 보여주는 1층 거실. 사진 왼쪽 현관문 앞으로 펼쳐진 공간이 바로 거실이다. 추운 계절이 오면 페치카를 중심으로 뒹굴면서 쉬는 휴식 공간으로 제대로 활용되기를 기대하며 만들었다. 2 1층에 자리한 또 하나의 거실로 가족실 용도로 쓰인다. 가족들이 주로 이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유리문을 달아 나중에 다른 부실로 바꿔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3 선반을 지른 식기 수납장은 살림 잘하는 정근옥 씨의 취향과 솜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뒤쪽으로는 다용도실이 자리하는데 인테리어를 망치는 주범인 덩치 큰 냉장고를 바깥으로 빼고 세탁실을 마련했다. 4 가족실에 연결된 부부의 드레스룸으로 서랍장을 놓은 벽면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면은 모두 짜 맞춤 가구를 이용해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5 아이들은 아파트 공간에서는 갖지 못했던 다락방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진은 둘째 아이의 방으로 다락방에서 내려다본 모습. |
|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정근옥 씨는 1층에서 지낼 생각이다. 가족실로 사용하는 공간에 유리 격자문을 단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가족실을 안방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가족실 옆이 부부의 드레스룸이라 완벽한 침실이 될 수 있다는 것. 백과사전의 주(住) 파트를 열심히 보았다는 초등학교 시절의 정근옥 씨는 ‘빨강머리 앤’의 앤과 닮아 있었다. 창가에 책상이 놓여 있고 창문을 활짝 열면 햇살이 들어오는 그런 동화 속 집들을 보며 자랐다. 딸들이 성장해 부모 곁을 떠난 후까지 고려해 집을 지은 철두철미한 정근옥 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위해서도 마음을 다해 집을 만들었다. 자신이 소녀 시절에 품었던 로망을 딸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정근옥 씨는 중학생 때 다락방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난방이 안 돼 난로를 켜놓고 지낸 다락방에서의 시간이 그녀에게 잊지 못할 낭만이고 추억이 되었다. “아이들이 이런 공간이 주는 여유를 갖길 원하는데 정작 제 기대만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요.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반응이 컸을 텐데 말이죠. 큰아이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주말에만 오니까 제 방을 제대로 누릴 시간도 부족하고요. 이곳으로 이사하니 주변이 조용하기만 하고 친구를 쉽게 만날 수 없어 아이들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아이들에겐 어른들보다 좀 더 긴 적응 시간이 필요할 거라 여기며 엄마 정근옥 씨는 마음을 편하게 가진다. 요즘은 가을이 다가오면서 벌레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벌도 많고 나방이며 쥐며느리까지 집 안에 등장한다. 무섭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지만 벌레가 살 수 있는 환경이 결국 사람에게도 좋은 거 아니겠냐며 이 역시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이사하고 며칠 뒤 뻐꾸기 울음소리에 잠을 깬 정근옥 씨는 아카시아 향이 퍼지는 곳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며 정말 축복받았다는 생각을 했단다. 계절이 바뀌어가는 지금, 가을을 닮은 이 집에서 그녀는 또 어떤 아침을 맞이하게 될지….  |
| 1고심 끝에 결정한 독일식 목조 주택은 자연 친화적이라 사람들에게 여유를 준다. 덧문을 단 창문, 나지막한 담, 소중하게 심어놓은 나무들이 전원 풍경을 연출한다. 2 두 아이의 방 사이에 마련된 부부 침실은 중앙에 놓인 침대를 중심으로 몇몇 가구만으로 정갈하게 꾸몄다. 이 방은 나무 패널을 덧댄 침대 뒤쪽 벽이 인상적이다. 3 이국적인 인테리어로 연출한 2층 욕실. 샤워실과 세면대 사이 파티션 부분의 손으로 빚은 듯 자연스러운 라인이 멋스럽다. 소박하면서도 앤티크한 느낌의 소품들도 욕실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다. 4 2층 복도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테라스로 연결되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문은 욕실과 부부 침실 입구다. 복도 뒤쪽으로 아이들 방과 계단이 있다. 5 큰아이 방에도 다락방을 설치해 동화 속 공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사다리 옆쪽 벽면으로는 붙박이장을 설치했다. |
| 자료제공ㅣ리빙센스 진행: 임상범 기자 | 사진: 이봉철| 촬영 협조: 베른하우스(031-8003-4150, www.bernhaus.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