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여행칼럼 - 여성포털이지데이

2박3일을 지낼 마우나오션리조트로 가던 중 경주 보문단지에 잠시 들렸다.

워낙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천년고도 경주지만 유적지 답사는 계획에 넣지 않았다.

하지만 보문단지까지 왔기에,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도 경주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 싶었기에,

한낮을 내리쬐던 태양이 식어갈 즈음이라 어디 한 곳 들려볼까 하다 진평왕릉 안내표지판이 눈에 띄여 가보기로 했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의 릉으로 높이 7.6m 지름 38m, 아무런 시설 없이 평야 가운데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진평왕은 남산성을 쌓았고 명활산성을 개축하는 등 경주방위를 중요시 하였다........(중략).....외교에 힘써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2009년의 인기드라마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은 드라마에선 아주 유약한 인물로 표현되고 있으나,

사실은 신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왕이었고 또한 삼국통일의 주춧돌이 되었음을 안내판은 가르쳐주고 있다.

왕릉 주변엔 관리사무소도 없고 그래서 당연히 입장료도 없다. 시설이라면 이동식 화장실 하나만 덜렁 있다.

다만 관리인이 상주하지는 않고 있음에도 주변 정리는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왕릉은 저만치 앞에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고, 푸른 잔디밭 사이로 나 있는 길이 자연스럽게 왕릉으로 인도해준다.

푸른 잔디가 입혀져 있는 왕릉은 삼국통일 전 신라의 왕릉이 거의 그러하듯 큰 무덤에서 볼 수 있는 그 흔한 석물 하나도 볼 수가 없다.

그러기에 다가가기가 외려 편안하다.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경주에 있는 155개 고분 중에서 왕릉으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고분은 진평왕릉뿐이다.'

라고 강조하며 진평왕릉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왕릉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로선 그 분이 얘기하는 위용은 모르겠으나 온화한 느낌은 확실하게 다가오는 듯 했다.
무려 52년간 왕위에 있었던 왕, 그렇지만 자신의 사후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았던 것만 같다.

중국의 진시황릉은 왕위에 오를 때부터 엄청난 규모의 스스로의 왕릉을 준비하였건만 신라의 왕들은 백성들이 힘들까봐 그러한 요구를 하지 않았음일까.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긴 풀섶을 헤치고 왕릉에 가까이 다가가본다.

제단은 최근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적임을 알리는 표석은 세월의 흐름속에 글자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옆에 새로이 세워진 비석에 '사적 180호 신라 진평왕릉'이라고 씌여있다,

천천히 왕릉을 한바퀴 돌아본다.

그 옛날을 떠올리며, 아니 어떤 생각을 하면서든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찾는 이들의 다리엔 편안한 걸음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눈에는 싱그러움을 가득차게 해 주는 곳이다.

밑둥이 큰 나무들이 다시금 세월의 장구함을 느끼게 한다. 나무들에 비하면 사람의 수명이란 얼마나 보잘것 없음인가.

이 엄청나게 오랜 세월을 지켜왔을 아름드리 나무들은 왕릉을 지켜주는 파수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썩어 부스러져거는 고목 하나가 서 있어 눈길을 끈다. 진평왕과 관계없이 역사 속에서 왕에게 충성하다 먼저 사라져간 충신들을 떠올리게 했다,

크고 작은 나무들에 겹겹이 둘러싸인 진평왕릉은 평야 저 쪽에 있는 그의 딸 선덕여왕릉을 마주하고 있기에 더 평화스럽게 잠들고 있지 않을까?

진평왕릉을 나와 보문단지로 가던 중에 '명활산성' 표지가 보여 들려보기로 했다.

드라마 덕에 안내판에 써 있는 선덕여왕 때에 비담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드라마라는 것이 성격상 역사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줄기는 왜곡할 수는 없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공부에는 도움이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석성이 4.5km라고 써 있었지만 보이는 건 100m도 안될 것 같다. 석성은 토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약간 경사진 언덕에다 자연석을 차곡차곡 포개어 쌓은 성이다. 돌들의 색깔로 보아 옛날에 쌓은 것이 아닌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옆으로 돌아서 성 위쪽으로 올라가 보았으나 뭔가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위쪽은 누군가의 사유지인 듯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사적 47호 표석만이 길 옆에 덩그러니 서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명활산성의 역사는 서기 405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지만 그런 역사성이 무색하게 제대로 보전 관리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덕여왕이란 드라마가 없었다면 이 명활산성 또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을까.

다행히 경주시에서는 2016년까지 명활산성 복원작업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느긋하게 기다려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