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쉼
폭풍같은 시간을 보낸 뒤에는
잠시 잠잠한 시간이 필요하다.
많이 말할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는
머리가 하루에도 수천가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그런 곳에서.
그래서 바다로 가기로 했다.
하루종일 바다만 보고 있어도 좋은 곳으로.
팔베개를 하고 창 밖으로 물이 보이는
햇살 잘 드는 큰 창문과 혼자 쓸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그런 곳으로.
# 2. 외롭게 걷다.
팬션은 예뻤고, 원하던 바다가 있었고, 고요도 내가 바라던 것이었지만
없는 것이 있었다.
친구가 없었고, 커피가 없었다.
첫 날 저녁 스타벅스 라떼가 간절해졌다.
바다와 접해 있는 팬션 주위에는 식당도, 심지어 슈퍼도 없었다.
욕구가 강렬했기에
난 대장정을 나섰다.
모자, 선글라스, 물통, MP3, 가벼운 똑딱이가 준비물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말리라!"
나갈 때는 체크아웃 하는 커플이 있어 픽업을 받을 수가 있었다.
슈퍼에는 스타벅스 라떼는 없었다.
카페라떼 카푸치노와 라떼 2개를 집어들고 나왔다.
하루에 몇 대 있다는 버스를 기다리기엔 너무 지루했다.
정류장 앞, 나를 힐끔거리던 아저씨께 여쭈었다.
"아저씨, oo 팬션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요?"
"아이고, 거기 먼데.."
"얼마나 멀어요?"
"한 10키로 될 긴데.."
"뭐 천천히 걷죠. 어디로 가면 되요?"
"저기로 쭉 가면 되요. 멀 건데.."
서두르지 않았다.
급할 게 뭐 있단 말인가.
지나는 차를 향해 손을 한 번 들어보기도 했지만
쌩 지나는 뒤꽁무니를 본 뒤로는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부르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으니 팬션 간판이 나왔다.
앞으로 전방 5km.
가만 있어봐.
1km를 걷는데 20분 정도 걸리니까..
앞으로 1시간 반을 더 걸어야 된다구?
햇살이 죽여주게 뜨거웠다.
2km 정도가 남았을 땐 정말 그만 걷고 싶었다.
'삼순이라고 생각하자.
한라산을 오르던 삼순이라고 생각하자.
이 길을 다 걷고 나면 근심도 슬픔도 다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자.'
걸어가니까 이런 풍경을 놓치지 않는 거야.
차로 올 땐 몰랐잖아?
팬션 도착.
온 몸이 땀에 젖어 목욕탕으로 직행하고
기념 사진.
커피야. 내 오직 너를 얻기 위해
이 발이 부르트고 아작이 나도록 걸었노라.
흥. 그렇다고 어떻게 한 대가 안 세워주냐.
예전에는 이렇게 혼자 걸어가고 있으면
지나가던 차들이 멈춰서 타겠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말이다.
치사한 것들을 향해
승리의 썩소를-!
# 3. 풍경
# 4. 돌아오는 길의 안면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안면도를 들렀다.
태안에만 벌써 여러번이다.
여름 수련회로, 데이트로, 회사 엠티로, 기름 유출 자원봉사로.
안면도의 일몰이 너무 보고파서 들렀는데
계속 헛짓만 했다.
캐리어를 끌고 있어서 편하게 가자 싶어 택시로 오션캐슬까지 갔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느낌이 온데간데 없었다.
다시 또 택시를 타고 할미 바위까지 갔는데 여기도 그 느낌이 아니었다.
콜택시 바가지만 뒤집어쓰고,
안개는 자욱하고,
물은 다 빠져 있고,
시간 계산은 잘못 했고,
아, 난 끝까지 허당이구나.
작품 : 금초의 < 바지락 줍기 >
비닐에 싸 둔 사과를 꺼내
아작, 아작, 깨물어 먹었다.
두 시간을 그렇게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봤다.
그래도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