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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테일의 대가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은 영화 '아가씨'를 통해 디테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이효균 기자 |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우의 마음"
[더팩트｜권혁기 기자] "나가시게요? 비도 오시는데…."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용필름)에서 김태리가 김민희에게 건네는 대사 중 하나다. '비도 오시는데?' 어법에 맞지 않은 대사였다. 영화를 보면서 귀에 쏙 들어온 대사 중 하나였다. '비' 외에도 이런 틀린 존칭이 몇개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박찬욱(52) 감독의 디테일이었다. 영화에 있어 어느 하나 허투루 연출하는 법이 없는 거장 박찬욱 감독은 '역시는 역시'였다.
'아가씨'는 1930년대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에게 새로운 하녀 숙희(김태리 분)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그들 사이에 아가씨의 막대한 유산을 가로채겠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이 등장하면서 히데코의 마음을 흔들게 된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은 "비도 오시는데"라는 대사에 대해 "사실 예전에는 그런 표현이 많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실 예전에는 그런 표현이 많았어요. 가뭄 때문에 비가 소중했으니까요. '비가 오신다'라는 말로 비의 소중함을 표현했던 거죠. '아가씨'의 배경 자체가 1930년대니까 고풍스러운 구식 말투를 살리려고 했어요. 너무 많이 쓰면 알아 듣지 못하는 관객이 있을까봐 적당하게 쓴거죠. 아마 제가 그런 말투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요? 어린 시절 일제강점기를 보내신 부모를 둔 사람이니까요. 저희 아버지가 33년생이세요. 1901년 생이신 할머니께 직접 들었던 말투도 있죠. 그래서 '비가 오신다'고 한겁니다."
영화의 디테일은 그런 대사도 그렇지만 특히 일본어에서 두드러진다. 박찬욱 감독은 "일본어에는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썼다"며 "신빙성이 있어야 했다. 숙희를 빼고 다 일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설정이 돼 있었고, 일본으로 수출도 돼야 했다. 일본에서 들었을 때 전혀 문제가 없어야 했다. 한국 관객들이 봤을 때는 대충 짐작으로 이 배우가 일본어를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생각하겠지만, 배우들부터 일본어에 자신이 있으면 그만큼 연기에도 자신감이 붙을거라 생각했다. 연습을 많이 못하면 딱 드러났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지독하게 시켰다. 제작사 한편에 출석표와 성적표를 붙여 내가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무언의 압박을 줬다"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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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는 일본인이 들어도 문제 없도록" 박찬욱 감독은 일본인들이 들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배우들에게 일본어 교육을 강조했다. /이효균 기자 |
"일본어 수업이 있는 날 결석하는 배우가 있으면 '바쁘냐?'라는 문자를 보냈어요.(웃음) 촬영이 끝나고 '후시녹음'을 할 때도 조금씩 손을 봤죠. 할 수 있는 만큼 다 한 것 같아요. 실제 일본인들도 영화를 보고 (일본어도 시대 배경에 맞는 고어에 가까웠기 때문에 자국 작품을 포함해)어떤 작품보다 (일본어가)훌륭하다고 하더라고요. 자막이 없어도 알아 들을 수 있다고 했어요. 일본인들도 책을 낭독하는 장면은 자기도 잘 모르는 옛날 귀족들 말투라고 하더라고요. 어려움이 있는 대사인데 알아듣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만큼 디테일을 챙긴 박찬욱 감독이 신인 김태리에게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일까? 박 감독은 "항상 불러다 앉혀 놓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김민희와 같이 불러서 얘기하기도 하고 따로 따로 얘기하기도 했다. 둘의 관계를 생각해 둘만 만나서 얘기 좀 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대사 한줄 읽고, 어떻게 찍을 건지 스토리보드 놓고 설명했다. '이 대사는 (김)태리 뒤에서 찍을거다'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캐릭터를 구체화시키는 대화를 많이 했다. '이 때 감정은 질투심이다'라고 설명해주기도 했다. 현장에서 '이게 맞네 틀리네'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게 하고 싶었다. 미리 조율을 할만큼 하긴 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오롯이 배우의 몫인데, 카메라 앞에서 김태리는 잘 해줬다"고 김태리를 극찬했다.
언론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 때도 언급한 문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솔직히 대본을 쓸 때는 히데코의 이모 역에 누군가를 염두하고 쓰지는 않았어요. 숙희 오디션을 볼 때 문소리 씨를 불렀죠. 여배우니까 그의 시각이 필요했죠. 그러다 '슬쩍 얘기해볼까?'라고 생각했죠. 사실 역할이 작잖아요. 문소리 배우한테 실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조심스럽게 접근했죠. 김해숙 선배도 그랬어요. '박쥐' 때 놀랍지 않았나요? 그 때부터 큰 존경을 품게 됐고, 이번 작품에도 부탁을 드린거죠. 문소리 배우는 '화내면 어쩌나'라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두 분 모두 기분 좋게 하겠다고 해주셨죠. 김해숙 선배는 등장 횟수도 적지만 신(scene) 자체가 짧았기 때문에 걱정했는데, 촬영 때마다 어찌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시는지. '훗'하고 웃는 연기만 봐도 섬뜩했죠. 진정한 선수라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입증하신거죠."
연기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지론은 '짧은 연기든 긴 분량이든 배우들은 어떤 캐릭터인지 분석하고, 걸음걸이 하나에도, 웃는 표정 하나에도 신경을 쓰기 때문에 배역에 상관없이 힘든 연습 과정을 거쳐 오기 때문에 캐스팅 권유를 할 때 신중할 수밖에 없다'이다. "그냥 친해서 출연을 부탁하면 안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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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우 연기 보셨어요?" 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은 극 중 백작 역을 맡은 하정우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효균 기자 |
하정우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정우가 김민희한테 '당신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장면 말인데요. 그 다음 대사가 이거죠. '내가 진심을 얘기하면 아무도 믿질 않고 거짓을 얘기하면 다 믿어요. 어때요. 믿어지나요?'라는 대사인데, '어때요. 믿어지나요?'라는 대사는 없었어요. 하정우가 백작에 완벽하게 몰입해 있다고 느낀 지점이죠. 편집 때문에 앞뒤 부분을 잘랐지만 하정우의 섬세한 연기를 알 수 있었어요. 자세히 보시면 히데코가 백작을 밀어내는 장면에서 좌절하는 표정이 살짝 보여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처럼 말이죠.(웃음)"
끝으로 박찬욱 감독은 영화의 사령탑으로서 배우들을 대할 때 중요한 에티튜드(태도)에 대해 설명했다.
"항상 스토리보드(영화나 텔레비전 광고 또는 애니메이션같은 영상물을 제작하기 위해 작성하는 일종의 문서로, 영상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한 스토리나 구성요소, 촬영정보, 동선 등의 제작시 필요한 정보들이 미리 약속된 기호들에 의해 중요한 장면별로 간단히 스케치한 것)를 만들기 때문에 스태프들이 준비하거나 배우들 입장에서 자발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스토리보드가 없으면 감독이 뭘 찍을지 모르고 감독 '입'만 쳐다보는 거죠. 그런데 이 스토리보다가 배우들 입장에서는 답답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왜냐, 배우 입장에서는 저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여기서 서서 얘기하고 싶은데요?'라는 배우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우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연기를 해야 영화가 살아있을 수 있으니까요. 스토리보드를 정확하게 준비하더라도 배우가 기탄없이 얘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연기가 돼요. 그래서 아침 전체 리딩 때 물어봐요. '어때? 불편해?' 확인하고 바꿔야 할 부분은 바꾸죠."
배우들이 박찬욱 감독과 왜 같이 작업하고 싶어하는지 그 이유를 엿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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