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11일 비상대책위와 혁신위원회를 동시에 구성하기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비대위원장을 정진석 원내대표가 겸임하기로 해 20대 총선 참패 충격 극복을 위한 쇄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20대 총선 참패 후 비대위 구성을 놓고 무려 한 달여간을 허비한 결과치고는 허무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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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오른쪽)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지도부·중진의원 연석회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이재문 기자 |
당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이날 오전 비대위 구성 등과 관련한 논의를 통해 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아울러 혁신위를 별도로 설치해 외부인사에게 전권을 주고 혁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 원내대표는 조만간 혁신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 인선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당은 다음주 중 전국위와 상임전국위를 열어 이 같은 결정을 의결할 계획이다.
이날 결론은 지난 9일 전체 당선자 총회 후 이틀 만에 이뤄졌다. 전날 당선자 1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대위 구성 관련 설문조사와 중진 의원 간 논의를 바탕으로 한 결과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2번안 관리형+별도 혁신위에 (당선자들이) 제일 많이 응답했다”고 말했다. 당은 전날 전체 당선자들에게 1.관리형 2.관리형+별도혁신위 3.진단형 4.혁신형 4가지 형태의 비대위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조사했다.
우선 비대위 구성 결정 과정부터 석연찮다는 지적이다. 설문조사 결과 2번 안에 대한 답변이 가장 많이 나왔으나 과반은 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4번 안도 비슷한 수준으로 답변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은 설문 결과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 회의에 중진 의원들은 18명 가운데 절반인 9명이 불참했다. 중진 의원끼리 총의를 모아 내린 결론이라고 보긴 어렵다.
비판 여론을 의식해 혁신위를 운영키로 했으나 ‘눈 가리고 아웅식’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혁신위는 전당대회 전까지 당권과 대권 분리 문제, 현행 집단지도체제 개선 방안, 정치개혁 방안 등을 논의키로 했다.
활동기간은 일단 전대 이전까지로 한정했으나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연장할 수 있게 했다. 김무성 전 대표 시절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위원장으로 한 보수혁신위의 재탕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위원장이 전권을 가지고 혁신을 추진하더라도 차기 당 대표가 수용하지 않는다면 혁신안도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친박, 이대로 당권 장악 수순 밟나
이날 결론은 당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의 주장이 그대로 관철된 것이나 다름없다. 친박계는 당 쇄신은 별도의 혁신기구에 맡기고, 관리형 비대위를 구성해 조속히 전당대회를 치러 당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친박계는 정 원내대표의 당선을 계기로 당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해 가는 분위기다. 이대로 갈 경우 친박계가 당권까지 장악할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비박계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총선 참패 이후 원유철 비대위를 무산시키고 혁신 비대위를 주장했던 비박계를 중심으로 한 당 쇄신파는 이날 아무도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일각에선 의원들이 벌써 4년 뒤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나서려고 하겠느냐”며 “지금 비대위가 원유철 비대위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정진석 비대위로 명함만 갈아끼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김채연 기자 why@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