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국회의원·대통령 출마자, 선거 90일前 현직사퇴
현직조합장, 선거당일도 신분 유지…형평성에 문제있어
'法사각지대' 놓인 조합장선거…특정인이 십수년째 독식
사상 처음으로 실시되는 전국 농업협동조합장 동시선거가 23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현직 프리미엄을 내세운 현(現) 조합장의 전횡([단독] ‘돈선거’된 농협조합장 첫 동시선거…억대 금품 살포, 15일자 본지보도 참조)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공명선거를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나섰지만 ‘선거일 전 90일까지’ 현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대통령 후보자와 달리 농협조합장은 선거 당일에도 신분을 그대로 유지해 통상적인 업무집행임을 이유로 선거가 임박해도 아무런 제약 없이 조합원에 각종 선심성 정책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16일 “조합장선거에 적용되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하 위탁선거법)상 기부행위와 직무상 행위는 구별된다”며 “사업계획 및 수지예산에 따라 집행하는 금전·물품을 조합 명의로 제공하는 행위는 직무상 행위로 기부행위에 해당되지 않아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위탁선거법에 따르면 농업협동조합법상 조합장은 재임 중에 기부행위를 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천·강화·옹진 축산업협동조합이 다음달 11일 치러질 전국 농협조합장 동시선거를 불과 1개월 앞둔 시점에서 우편 송부한 1억5000만원 상당의 기프트카드는 축산자재, 동물약품 등 축산농가의 양축에 필요한 영농자재를 무상으로 공급하기 위한 사업에 해당하므로 직무상의 행위로 기부행위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홍보성 활동을 못하게 하는 조항을 둬 최소한 현직 조합장의 치적 홍보 등을 금지해야 공명선거에 부합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직선거법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장·국회의원·대통령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두도록 정하고 있는 반면, 조합장선거에는 현직 조합장의 신분에 관한 제한을 전혀 두고 있지 않다.
특히 현직 단체장이 재차 해당 지방선거에 출마할 경우 직무를 정지시키고 부단체장 직무대행체제로 돌려 선거 전에 본인의 홍보를 위해 지자체를 새로이 동원할 수 없도록 한 조치와도 극명히 대조된다.
게다가 공직선거법은 농업협동조합법·수산업협동조합법·산림조합법·엽연초생산협동조합법에 의해 설립된 조합의 상근임원과 이들 조합의 중앙회장이 공직선거에 출마할 경우 선거 90일 전 현직 사퇴하도록 하고 있지만, 조합장이 조합장에 다시 나갈 때에는 규제가 없는 입법 공백마저 초래했다.
금권선거로 얼룩진 직선제 조합장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공직선거법을 준용해 농·축·수협 및 산림조합장 선거관리를 중앙선관위가 엄격히 하도록 했지만 ‘입법의 불비’로 제도의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다.
이 같은 허점을 ‘무풍지대’가 된 대부분의 현직 조합장들이 파고들고 있다.
실제로 인천·강화·옹진 축협은 “전년도 경영이 어려워 조합원 전이용대회를 하지 못해 일부에서 조합원 환원사업을 요구해 강화군선관위 지도계에 기프트카드 제공 관련 구두질의 후 이사회와 총회 보고 등 적법한 절차를 취했다”면서 “2015년 사업계획 및 수지예산서 편성돼 금품살포가 아닌 기프트카드로 조합원 환원사업을 실시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심스런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인천·강화·옹진 축협은 올해 사업계획에 ‘영농자재지원비’로 1억5000만원을 책정해 이를 당초 계획대로 정상 집행했다는 입장이나, 인천·강화·옹진 축협은 지난 2013년 ‘기자재교환권’으로 조합원에게 7만원씩 제공한 이후 축산비지원사업을 한 적이 없다.
2년 가까이 안 해온 사업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시기인 조합장선거를 한 달 남겨두고 굳이 강행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지만, 2013년 7만원이던 지원비가 10만원으로 오른 데다 현금으로 주던 것을 현금카드로 바꾼 것도 석연치 않다. 선거를 의식했다고 밖에는 풀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게다가 다른 선거에서 공식 선거활동기간을 정해 이를 어기면 사전 선거활동으로 선거법 위반이 됨에 반해 조합장선거는 이마저도 무력화시키는 입법 실수를 범했다. 공식선거활동 전이라도 선심성 정책을 벌이고 전년도에 수립한 사업계획에 따른 통상적인 업무집행행위라고 하면 그만인 까닭이다.
선거 당일까지도 현직 조합장의 신분에 조금도 변함이 없으면 사전 선거활동이라는 개념도 의미가 없어진다.
한마디로 제1회 전국 농업협동조합장 동시선거의 공식 선거기간이 이달 26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2주간이지만, 조합장에 도전하는 후보자에게만 불리하게 작용할 뿐 현직 조합장은 걸림돌이 될 게 없어 오히려 반사적 이익을 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애초에 출발점부터 공명정대한 선거는 기대하기 불가능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조합장이 현금과 똑같은 기프트카드를 무려 1억5000만원 배포했는데도 강화선관위가 저촉 소지가 없다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일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이게 문제가 안 된다면 사료 구입에 쓰라고 현금을 주든가 조합원 통장에 10만원씩 송금해도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법조계의 또 다른 관계자도 “현금을 줘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텐데 키프트카드로 줬다는 건 스스로도 무엇인가 찜찜하니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꼼수’를 부린 것으로 생각이 든다”면서 “입법 불비에 조합장들의 모럴헤저드(도덕적 불감증)까지 겹치며 혼탁선거를 막을 길이 없어졌다”고 평가했다.
앞서 인천·강화·옹진 축협은 이달 10일경 조합원 1480명에게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이 가능한 NH농협카드 발행 기프트카드를 1인당 10만원씩 보냈다. 또 현직 인천·강화·옹진 축협조합장이 조합 내 근황을 담은 소식지를 지난 5일자로 발간하면서 조합원 전원에게 본인의 얼굴이 나온 인물사진 및 인사말과 여타 유인물도 동봉해 물의를 빚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지방선거·총선·대선에 대해서는 키프트카드 등 용도와 사용처를 불문하고 후보자가 현금카드를 유권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금품살포로 보고 이를 선거법 위반이라고 유권해석하고 있다. 이번에는 선관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현직조합장, 선거당일도 신분 유지…형평성에 문제있어
'法사각지대' 놓인 조합장선거…특정인이 십수년째 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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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선거를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나섰지만 ‘선거일 전 90일까지’ 현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대통령 후보자와 달리 농협조합장은 선거 당일에도 신분을 그대로 유지해 통상적인 업무집행임을 이유로 선거가 임박해도 아무런 제약 없이 조합원에 각종 선심성 정책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16일 “조합장선거에 적용되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하 위탁선거법)상 기부행위와 직무상 행위는 구별된다”며 “사업계획 및 수지예산에 따라 집행하는 금전·물품을 조합 명의로 제공하는 행위는 직무상 행위로 기부행위에 해당되지 않아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위탁선거법에 따르면 농업협동조합법상 조합장은 재임 중에 기부행위를 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천·강화·옹진 축산업협동조합이 다음달 11일 치러질 전국 농협조합장 동시선거를 불과 1개월 앞둔 시점에서 우편 송부한 1억5000만원 상당의 기프트카드는 축산자재, 동물약품 등 축산농가의 양축에 필요한 영농자재를 무상으로 공급하기 위한 사업에 해당하므로 직무상의 행위로 기부행위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홍보성 활동을 못하게 하는 조항을 둬 최소한 현직 조합장의 치적 홍보 등을 금지해야 공명선거에 부합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직선거법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장·국회의원·대통령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두도록 정하고 있는 반면, 조합장선거에는 현직 조합장의 신분에 관한 제한을 전혀 두고 있지 않다.
특히 현직 단체장이 재차 해당 지방선거에 출마할 경우 직무를 정지시키고 부단체장 직무대행체제로 돌려 선거 전에 본인의 홍보를 위해 지자체를 새로이 동원할 수 없도록 한 조치와도 극명히 대조된다.
게다가 공직선거법은 농업협동조합법·수산업협동조합법·산림조합법·엽연초생산협동조합법에 의해 설립된 조합의 상근임원과 이들 조합의 중앙회장이 공직선거에 출마할 경우 선거 90일 전 현직 사퇴하도록 하고 있지만, 조합장이 조합장에 다시 나갈 때에는 규제가 없는 입법 공백마저 초래했다.
금권선거로 얼룩진 직선제 조합장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공직선거법을 준용해 농·축·수협 및 산림조합장 선거관리를 중앙선관위가 엄격히 하도록 했지만 ‘입법의 불비’로 제도의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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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달 11일 실시되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위반행위 사례예시집. 자료=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실제로 인천·강화·옹진 축협은 “전년도 경영이 어려워 조합원 전이용대회를 하지 못해 일부에서 조합원 환원사업을 요구해 강화군선관위 지도계에 기프트카드 제공 관련 구두질의 후 이사회와 총회 보고 등 적법한 절차를 취했다”면서 “2015년 사업계획 및 수지예산서 편성돼 금품살포가 아닌 기프트카드로 조합원 환원사업을 실시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심스런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인천·강화·옹진 축협은 올해 사업계획에 ‘영농자재지원비’로 1억5000만원을 책정해 이를 당초 계획대로 정상 집행했다는 입장이나, 인천·강화·옹진 축협은 지난 2013년 ‘기자재교환권’으로 조합원에게 7만원씩 제공한 이후 축산비지원사업을 한 적이 없다.
2년 가까이 안 해온 사업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시기인 조합장선거를 한 달 남겨두고 굳이 강행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지만, 2013년 7만원이던 지원비가 10만원으로 오른 데다 현금으로 주던 것을 현금카드로 바꾼 것도 석연치 않다. 선거를 의식했다고 밖에는 풀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게다가 다른 선거에서 공식 선거활동기간을 정해 이를 어기면 사전 선거활동으로 선거법 위반이 됨에 반해 조합장선거는 이마저도 무력화시키는 입법 실수를 범했다. 공식선거활동 전이라도 선심성 정책을 벌이고 전년도에 수립한 사업계획에 따른 통상적인 업무집행행위라고 하면 그만인 까닭이다.
선거 당일까지도 현직 조합장의 신분에 조금도 변함이 없으면 사전 선거활동이라는 개념도 의미가 없어진다.
한마디로 제1회 전국 농업협동조합장 동시선거의 공식 선거기간이 이달 26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2주간이지만, 조합장에 도전하는 후보자에게만 불리하게 작용할 뿐 현직 조합장은 걸림돌이 될 게 없어 오히려 반사적 이익을 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애초에 출발점부터 공명정대한 선거는 기대하기 불가능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조합장이 현금과 똑같은 기프트카드를 무려 1억5000만원 배포했는데도 강화선관위가 저촉 소지가 없다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일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이게 문제가 안 된다면 사료 구입에 쓰라고 현금을 주든가 조합원 통장에 10만원씩 송금해도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법조계의 또 다른 관계자도 “현금을 줘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텐데 키프트카드로 줬다는 건 스스로도 무엇인가 찜찜하니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꼼수’를 부린 것으로 생각이 든다”면서 “입법 불비에 조합장들의 모럴헤저드(도덕적 불감증)까지 겹치며 혼탁선거를 막을 길이 없어졌다”고 평가했다.
앞서 인천·강화·옹진 축협은 이달 10일경 조합원 1480명에게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이 가능한 NH농협카드 발행 기프트카드를 1인당 10만원씩 보냈다. 또 현직 인천·강화·옹진 축협조합장이 조합 내 근황을 담은 소식지를 지난 5일자로 발간하면서 조합원 전원에게 본인의 얼굴이 나온 인물사진 및 인사말과 여타 유인물도 동봉해 물의를 빚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지방선거·총선·대선에 대해서는 키프트카드 등 용도와 사용처를 불문하고 후보자가 현금카드를 유권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금품살포로 보고 이를 선거법 위반이라고 유권해석하고 있다. 이번에는 선관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