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도움이 되는 철학을 배울 수 있다
가끔 철학을 대학에서만 배울 수 있는 학문으로 생각하고 계신 분들을 만납니다. 모두 잘 아시겠지만, 당연히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요. 소크라테스가 마을 광장에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눴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학생들에게 강의하지는 않았던 것처럼, 철학은 어디서나 또 어떤 형식으로든 배울 수 있습니다.
애플사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저와 동배였지요. 젊은 시절, 저도 그의 꿈을 좇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애플사의 광고 문구는 이러했죠.
“The Computer for the rest of us.(우리 모두를 위한 컴퓨터)”
일부 전문가를 위한 컴퓨터가 아니라, 전문가 이외의 ‘일반인을 위한 컴퓨터’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철학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이 독점하는 학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학문이 철학의 본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드려도 막상 철학을 배우려고 하면 괜스레 어렵게 느껴집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과목 중에 윤리사회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그 수업 시간에 저는 난생처음 철학이라는 학문을 접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느 날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에 관해 설명하셨는데, 수업을 듣다가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죠. 그런 제 모습을 보시더니 선생님께서 “아냐, 아냐. 괜찮아. 그렇게 어려워할 거 없어.”, “선생님이 설명하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거든.”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선생님의 수업은 늘 명쾌했습니다.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철학자 칸트의 강의를 이렇게 평합니다. “강의 그 자체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대화다.”라고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수업이 두말할 것 없이 그러했습니다. 후에 대학에서 교편을 잡게 된 저도 그런 강의를 하고 싶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강연이 그렇게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능한 한 그리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는 얼마간 방황하다 스물다섯이 돼서야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해 어머니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지요.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셨을 때, 아버지는 일을 하셔야 했고, 여동생은 결혼해서 출가한 상태라 학생이었던 제가 병간호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모 대학 교수님의 자택에서 열리던 플라톤 독서회에 매주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간병해야 해서 한동안 독서회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전하려고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그때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게 바로 철학이라네.”
그 말씀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철학을 두고 ‘도움이 된다’라는 얘길 듣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해봤으니까요.
교수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어머니는 마침내 의식을 잃고 병원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하는 상태가 되셨습니다. 만일 그때 제가 철학을 배우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저 절망하기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철학을 배우고 있었던 덕분에 차분하게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지요. 몸도 못 움직이고 의식까지 잃게 되면 과연 살아갈 가치가 있을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병상에 계신 어머니 곁에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이왕 배우는 거 이런 철학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을 배우는 이상 배우기 전과 배운 후의 인생은 달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철학을 배우는 의미가 없습니다.
‘철학’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애지(愛知)’, 즉 ‘지혜를 사랑한다’라는 말을 통해 철학의 정의를 내려 보면, 철학은 기성의 가치관이나 상식을 의심해 보는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평소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이를테면 ‘성공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하는 통념에 반문하는 일이지요.
저는 오랫동안 심리 상담을 해왔습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 중 대부분이 우리 사회가 당연시하는 ‘인생 코스’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찾아오시는 분들과 함께 성공을 해야만 행복한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철학이라고 일단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성의 가치관이나 상식에 의문을 품어야 함은 물론이고,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며, 정치가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를 항상 의심해 봐야 합니다.
오늘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렵기는 해도 배움에 앞서 긴장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어질 철학에 관한 얘기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은 배우기 전과 후의 삶이 바뀌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학문입니다. 지금부터 강의할 내용도 결코 듣기에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