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감독 : 드레이크 도리머스

주연 : 레아 세아두, 이완 맥그리거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다.

2001년에 개봉한 [왓 위민 원트]라는 영화가 있다.(최근에 [왓 맨 원트]로 리메이크되었다.) 멜 깁슨과 헬렌 헌트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주위 여성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게 된 남자의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사귀던 여자 친구한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은 터라 영화 속 주인공인 닉 마샬(멜 깁슨)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도 닉처럼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세상을 살다 보니 가장 힘든 것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친구를 사귈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직장을 다닐 때도, 상대방과의 관계는 언제나 힘들었다. 결혼하고 가족이 생겼지만 마찬가지이다. 아내는,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가 내게 화를 낼 때도, 아들이 내게 반항을 할 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자 고민하게 된다. 아마도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그러한 고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조]라는 영화가 이 영화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은 커플들의 연애 성공률을 예측해주는 연구소이다. 성공률이 높을수록 그 커플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러한 연구소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굉장히 편할 것 같다.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경험해보면 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그런데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성공률부터 확인하고 낮으면 차라리 사랑을 시작부터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이별의 아픔은 줄어들 것이 아닌가. 하지만 과연 그럴까? [조]는 관객에게 그러한 질문은 던진다.

로봇과 사랑에 빠지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욕심에 맞춰 기술력은 발전한다. 아무리 연애 성공률이 정확하다고 해도 100%가 아닌 이상 실패 확률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완벽한 것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과 똑같은 로봇을 만들면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100%가 불가능하지만 사람과 로봇의 관계는 100%가 가능하다. 로봇은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조(레아 세이두)이다.

조는 초기 실험 모델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 자신이 로봇인 줄 모르고 그저 사람처럼 생활을 하며 점차 사람의 감정을 배우게끔 만들어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조가 자신을 만든 콜(이완 맥그리거)에게 사랑을 느낀다. 조의 예상 밖의 행동에 놀란 콜은 조에게 진실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충격도 잠시, 조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아내와의 이혼으로 외로웠던 콜은 조와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그 사랑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조는 수리 도중 콜과의 감정을 잃게 된다. 콜에게 차갑게 대하는 조. 그렇게 콜은 또다시 이별의 상처를 입는다. 아이러니하다. 애초에 조를 만든 것은 이별의 아픔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는데 오히려 콜은 조로 인하여 더 큰 이별의 아픔을 겪게 된다. 그렇다면 로봇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었던 말인가?

사랑에 빠지는 가장 손쉬운 방법

조와의 실연으로 괴로워하던 콜이 선택한 것은 베니솔이라는 알약이다. 이 알약은 일시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콜은 베니솔에 빠져들고, 베니솔을 통한 낯선 여성과의 섹스로 외로움을 달랜다. 어쩌면 베니솔은 사랑에 빠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쉽기 때문에 허무함은 더 크다. 베니솔에 의한 사랑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는 콜과 조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진짜 사랑을 이야기한다. 연애 성공률을 측정하고,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을 통해 실패 확률 0%의 안전한 사랑을 하기도 하고, 베니솔이라는 알약을 통해 잠시 동안이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흠뻑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부 가짜 사랑이다. 진짜 사랑은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굳건하게 쌓여가는 것이다. 콜과 조처럼...

조를 초기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조 버전 2는 완벽하다. 조 버전 2는 상대 남성에게 복종하고, 상대 남성이 좋아할 만한 행동과 말을 한다. 조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아파트에서 조 버전 2를 만난 콜은 조 버전 2를 거부하고 아파트를 나선다. 이미 가짜 사랑을 실컷 경험한 콜은 이것 또한 가짜 사랑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와 애쉬의 차이

콜과 조의 사랑이 가짜가 아닌 진짜라면 누군가 내게 물을 것이다. 조는 어차피 로봇이니 조와의 사랑 또한 가짜 사랑이 아니냐고...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다. 조는 조 버전 2와는 다르게 스스로 학습하게끔 프로그래밍되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녀 역시 로봇이 아니던가. 하지만 조와 애쉬(테오 제임스)를 비교해보면 왜 조가 특별한지 알 수가 있다.

애쉬 역시 조와 마찬가지로 초기 실험 로봇이다. 하지만 조가 콜과의 사랑을 통해 점점 인간화되어간 것과는 달리 애쉬는 실험실에서 방치되며 사람과의 관계를 통한 업그레이드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애쉬는 스스로 활동 중지를 선택한다. 다시 말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와는 달리 조는 활동 중지를 선택했다가 마지막 순간 반항한다. 애쉬가 쉽게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는 마지막 순간 살고자 하는 의지를 통해 활동 중지를 거부한다. 조와 애쉬의 차이는 바로 그것이다. 겉보기에는 둘 다 인간과 똑같은 로봇에 불과하지만 조는 콜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 인간화가 된 것이다.

마지막 장면, 조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이를 증명한다. 애초에 조에겐 눈물이 프로그래밍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조는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을 흘린다. 프로그래밍된 것만 행하는 로봇이 아닌,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또 다른 인간이 된 셈이다.

굉장히 조용한 영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 등장하고,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 펼쳐지는 등 [조]는 얼핏 보면 굉장히 자극적인 SF 영화처럼 보인다. [블레이드 러너] 등 스스로 진화해서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는 로봇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SF 액션 영화이기 때문에 [조]도 그런 비슷한 장르가 아닐까 기대하기 십상이다. 굳이 SF 액션 영화가 아니더라도 인간과 로봇의 사랑은 금기에 도전하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아니다. 이 영화는 굉장히 잔잔하다. 물론 로봇 사창가, 그리고 마약을 연상하게 만드는 베니솔이라는 알약 등 자극적인 소재가 나오긴 하지만 [조]는 이 자극적인 소재들을 최대한 잔잔하게 연출해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자극적인 소재를 이렇게 잔잔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이는데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은 별거 아니라는 듯 이루어낸다.

그렇기에 잔잔한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조]를 봐서는 안된다. 만약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콜과 조의 사랑을 통해 진한 여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마지막 조가 흘리는 눈물에 벅찬 감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마치 '피노키오'가 온갖 모험 끝에 결국 사람이 되는 동화의 감동과 견줄만하다. 그렇게 콜과 조는 진짜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여느 연인처럼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어쩌면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기에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우리가 진짜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