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감독 : 이수진

주연 :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잔뜩 긴장하며 영화를 봤다.

요 근래 들어서 이렇게 심사숙고를 하며 영화를 본 적은 없었다. [우상]은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의 조합만으로도 내 호기심을 잡아끌었고, 개봉 전부터 일찌감치 극장에서 봐야 할 기대작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개봉 후 [우상]에 대한 네티즌의 혹평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대부분 내용을 이해하기엔 너무 난해하다는 평이 많았고, 대사 전달이 잘 안되는 문제도 공통적으로 대두되었다. 결국 나는 [우상]을 보기도 전에 다른 이들의 리뷰를 먼저 읽었다. 스포가 포함된 각자의 영화 해석까지 꼼꼼히 읽었다. 그러고 나서 [우상]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우상]을 보기 전 스포와 결말 해석까지 읽은 이유는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이해 안 되는 것이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우상]이 내게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건 영화를 보다 보면 감수해야 할 일이다. 내가 선택한 모든 영화가 재미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영화를 이해 못 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우상]을 보기 전에 [우상]을 이해하며 관람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내 노력 덕분일까? 최소한 나는 [우상]의 내용이 이해가 안 되는 불상사는 피할 수가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이 지적한 연변 사투리로 인한 대사 전달 문제, 구명회의 처를 연기한 강말금의 연기력 문제는 나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구명회, 유중식(설경구), 최련화(천우희)가 왜 저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고, 그 덕분에 [우상]을 제법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이후 영화의 스포가 잔뜩 담겨 있음)

자신의 꿈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라.

[우상]의 내용을 이해하라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세 명의 캐릭터별로 이야기를 쫓으면 된다. 이수진 감독은 [우상]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관객을 위해 친절하게도 세 캐릭터가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우상'이 무엇인지 밝혔다. 그에 따르면 명회의 '우상'은 꿈, 중식의 '우상'은 혈육, 련화의 '우상'은 생존이라고 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우상'을 위해 앞으로 내달리면서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그들이 서로 얽힐 수밖에 없었던 사건의 시작은 명회의 아들인 요한(조병규)이 낸 뺑소니 사고이다. 요한은 인적인 드문 해변가 도로에서 중식의 아들인 부남을 차로 친 것도 모자라 부상당한 중식을 집으로 데려와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는 차기 도지사를 꿈꾸는 명회에게 치명상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다. 명회는 자신의 꿈을 위해 요한을 자수시키고, 단순 뺑소니 사고로 사건을 은폐한다. 문제는 사고 현장에 부남 외에도 부남의 처인 련화도 있었다는 점이다. 사건의 완벽한 은폐를 위해서는 련화를 찾아 입을 막아야 한다. 그가 심부름센터 김용구에게 천만 원을 비밀리에 주고 련화를 찾아 나선 이유이다.

련화를 찾아 납치한 명회는 련화를 살해하려 시도하지만 그녀가 그날의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살려준다. 하지만 심부름센터 김용구가 련화 납치 현장을 목격했고, 명회는 그를 죽임으로써 후환을 없앤다. 이렇듯 명회는 자신의 꿈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가차 없이 처리했다. 영화 후반 중식과 손을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중식의 지지 선언이 도지사라는 자신의 꿈에 꼭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실수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련화에 대한 판단 착오이다. 그 실수로 인하여 명회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자신의 핏줄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

명회가 자신의 꿈을 위해 방해물을 제거하고 무조건 앞으로 내달리는 캐릭터라면 중식은 앞으로 내달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는 캐릭터이다. 중식의 '우상'은 부남이기에 그는 처음부터 '우상'을 잃었다. '우상'을 잃은 중식에겐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그는 부남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며 끊임없이 명회를 압박한다. 그런 그가 련화의 임신 사실을 알았는 때 갑자기 태도가 급변한다. 부남의 죽음으로 '우상'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중식. 하지만 련화의 임신으로 새로운 '우상'이 생긴 것이다. 이제 그는 새로운 '우상'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건다.

중식은 '우상'을 잃었다가 새로운 '우상'을 맞이하는 캐릭터이기에 극과 극의 변화를 보여준다. 부남의 죽음에 대해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태도로 명회에게 달려들더니, 련화의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는 명회에게 무릎을 꿇는다. 련화의 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해 김용구에게 이천만 원의 거액을 줬고 (이천만 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더라.) 련화의 중국 추방을 막기 위해 굴욕을 자처한다.

하지만 련화의 뱃속 아기는 중식의 핏줄이 아니다. 그러한 사실을 중식 또한 알고 있었다. 중식이 직접 부남을 병원에 데려가 정관수술을 시켰으니까. 그는 그저 잃어버린 '우상'을 되찾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그것이 가짜일지라도... 결국 련화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되자 중식은 마지막 선택을 한다. 중식은 대한민국 국민의 '우상'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 이순신 상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그러한 중식의 마지막 선택은 단순히 명회에 대한 복수심 때문만은 아니다. '우상'을 잃은 자신의 상실감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느끼도록, 대한민국 전체에 대한 복수였던 셈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녀는 악마가 되었다.

명회는 굉장히 단순한 캐릭터이다. 자신의 '우상'을 위해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으니까. 그에 비해 중식은 조금 복잡한 캐릭터이다. '우상'을 잃었다가, 새로운 '우상'을 맞이했다가, 또다시 '우상'을 잃었으니까. 하지만 련화의 캐릭터는 복잡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그녀의 '우상'이 생존이기 때문이다. 도지사라는 꿈, 핏줄이라는 대상과는 달리 생존은 굉장히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련화는 이 생존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녀가 생존을 위한 것 외에도 자신에게 해를 끼친 것에 대한 복수도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우상]의 내용이 어렵게 느껴졌다면 생존을 위한 련화의 행동 때문일 것이다.

련화는 한국으로 밀입국을 하기 위해 연변에서 이미 살인을 저질렀다. 그렇기에 중국으로의 추방은 련화 입장에서 죽음과도 같다. 련화는 어떻게든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련화와 함께 밀입국한 수련(김재화)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련화의 생존 방식은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어떻게든 찾아가 제거를 해야만 한다. 부남 이전에 련화와 결혼했던 오 씨(그는 뺑소니 사건 당시 련화를 쫓던 남성의 정체이다.)를 죽인 이유도 자신의 생존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중식에게 기댄다. 중식이 자신의 생존에 꼭 필요한 인물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중식이 자신을 찾기 위해 이천만 원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중식에게 이천만을 꼭 되찾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는 생존을 위해 중식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적을 뒤쫓음으로써 생존에 방해가 된 심부름센터 김용구에 대한 복수이다. (어쩌면 김용구가 명회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련화에게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 김용구의 행적을 뒤쫓던 련화는 자신을 납치했던 인물이 명회임을 알게 되고, 복수를 위해 명회의 집을 찾는다.

'우상'을 쫓던 그들의 최후

이렇게 세 명의 캐릭터는 각자의 '우상'을 위해 내달린다. 그리고 각자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우선 한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명회와 련화의 '우상'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중식의 '우상'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로 인하여 중식은 이순신 동상에 폭탄 테러를 강행한 후 검거된다. '우상'을 위해 내달렸지만, 결국 '우상'을 영원히 잃은 자의 비참한 최후인 셈이다.

명회는 끝까지 살아남는다. 련화에게 어머니와 아내가 죽었지만 '우상'을 향한 그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사람들의 앞에서 이상한 언어로 연설을 하는 그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의 말을 관객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영화속 관중들은 경의에 찬 표정으로 명회의 연설을 듣고 손뼉을 친다. 련화의 뱃속 아기라는 거짓 '우상'을 쫓던 중식처럼, 어쩌면 우리들도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거짓된 '우상'에 매료된 것은 아닐까?라는 이수진 감독의 직접적인 풍자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한가지 불분명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이번에도 역시나 련화이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연변에서 찾아온 킬러를 죽였고, 자신을 위협했던 명회를 찾아가 처절한 복수를 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마치 그녀가 명회의 집에 가스 폭발을 일으키며 함께 자살하는 것처럼 나온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생존이라는 '우상'을 쫓던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무너뜨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그녀가 분명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엔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깊숙한 곳으로 숨어서... 어쩌면 명회를 살려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명회의 집을 찾아가기 전, 중식에게 이천만 원을 찾아준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보면 애초에 그녀의 목적은 돈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중식과 명회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는 달리 련화의 마지막 모습은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생존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최후가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우상]을 보러 가기 전에 다른 이들의 리뷰와 해석을 먼저 읽은 것은 분명 도움이 되었다.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우상]을 봤다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결국 이해하지 못한 채 극장 밖을 나서며 투덜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상]을 여러 번 반복해서 관람할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영화에 대한 해석,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경우는 분명 흔치 않다. 내 경우 [우상]이 해석, 결말을 일부러 미리 찾아본 후 극장을 찾은 거의 유일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며 [우상]이 15세 관람가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했다. 며칠 전 본 [악질 경찰]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는데, 솔직한 내 생각으로는 [우상]의 수위가 [악질 경찰]보다 훨씬 높았다. 시체 유기 장면은 물론, 목이 잘린 시체가 나오질 않나, 명회의 환상 장면에서는 요한의 목이 360도로 비틀리며 부남과 김용구의 얼굴이 나오는 장면은 요 근래 봤던 그 어떤 장면보다 가장 끔찍했다. 특히 련화가 일하는 불법 안마시술소 장면이 고스란히 나오는데 15세 관람가라니... 도대체 요즘 영화 관람등급은 어떻게 매겨지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강말금의 연기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강말금은 [자유연기]라는 단편영화로 제2회 신필름예술영화제 경쟁단편영화부문 배우상, 제17회 마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연기부분을 수상했다고 한다. 결코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상]에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국어책 읽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완벽한 장면을 위해 배우들을 그렇게 괴롭혔다는 이수진 감독이 강말금의 연기에 OK 사인을 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색한 강말금의 연기는 의도된 것일까? 아니면 이수진 감독의 완벽주의는 주연 배우들에만 한정된 것일까? 예상과는 달리 [우상]을 재미있게 관람하고 극장 밖을 나섰지만 관람등급과 강말금의 연기는 여전히 찝찝하게 내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