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찌우는 호르몬, 따로 있다
‘다이어트를 기필코 성공하고 말리라!’ 매번 성공 의지를 불태우지만 의지는 의지일 뿐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는다. 배고픔을 느끼는 위장과 그것을 참는 의지는 별개로 보이지만 모두 하나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자신의 장속에 있는 유해균과 가장 큰 통제력을 가진 뇌의 영향이 가장 크다. 배가 부른데도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먹는 이유, 방금 식사를 마쳤는데도 음식을 보면 또 먹고 싶은 이유, 달달한 음식을 보면 먹는 것을 참지 못하고 먹게 되는 이유, 이 모든 것이 뇌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 몸은 정교한 프로그램에 의해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다.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체내의 상태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현상을 항상성이라고 한다. 더운 환경에 있더라도 체온이나 체액의 삼투압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몸무게 역시 세트포인트라고 하는 체중 조절점이 있다. 평소보다 더 많이 먹는 것은 체중 조절점이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몸의 세트포인트를 조절하는 물질은 어떤 것일까?
미국 록펠러대학의 제프리 프리드먼 교수에 의해 세트포인트 이론을 설명하는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비만해진 쥐를 대상으로 연구하던 중 지방세포에서 분비되고 뇌의 상하부에 특정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을 찾았다. ‘렙틴’이라고 하는 식욕 억제 호르몬이다.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고 에너지 대사 센서를 작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방세포가 커지면 렙틴이 분비되고 시상하부를 자극한다. 그리고 식욕을 억제하고 신진대사 속도와 활동량을 늘려 칼로리 소비를 촉진한다. 렙틴은 몸속 지방량을 뇌에 알려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지방이 축적되면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렙틴 호르몬의 농도가 함께 증가한다. 그렇게 뇌의 시상하부가 이에 대한 신호를 받아들여 에너지 섭취를 줄이고, 에너지 소비를 늘리도록 한다.
그렇다면, 몸속 지방량을 측정해서 알려주는 메신저가 있음에도 살이 찌는 이유는 뭘까? 비만은 렙틴이 부족해서 오지만, 비만한 사람들은 렙틴 분비량이 많았다. 렙틴 분비량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체중 감소는커녕 식욕도 감소하지 않았다. 비만한 사람은 렙틴 수용체에 장애가 생긴 것이다. 렙틴이 아무리 “이제 그만 먹어!”라는 신호를 보내도 수용체에서 이를 전달받지 못하면 뇌는 ‘그만 먹어!’라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지방조직에서 렙틴을 충분히 보냈는데도 뇌에서는 ‘렙틴이 부족하다’, 즉 ‘지방이 부족하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렙틴 저항성’이라고 한다.
렙틴 저항성은 왜 생길까? 뇌에서 렙틴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용량이 초과하면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렙틴 저항성이 생기면 몸에는 지방이 충분해도 뇌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지방을 더 저장하려고 하게 된다. 렙틴 저항성은 결국 체지방의 세트포인트를 상향 조정시켜 몸무게가 50kg이던 체중을 60kg으로 올라가게 한다.
렙틴 호르몬이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식욕 억제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라면 배고픔을 느끼게 하고 먹을 것을 찾게 하는 호르몬인 식탐 호르몬도 있다. ‘그렐린’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그렐린 호르몬이 시상하부를 자극하면 강한 공복감을 느끼며 음식을 먹게 한다. 그렐린 호르몬의 분비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난다. 끼니를 거르거나 굶는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경우 그렐린 호르몬은 분비량도 늘어나고 강도도 강해져서 과식이나 폭식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렐린이 식욕을 당기게 한다고 해서 결코 나쁜 호르몬이 아니다. 그렐린은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 호르몬이다. 인체가 필요한 영양소 공급을 원할 경우 위의 상단부에서 그렐린 호르몬이 분비되어 시상하부를 자극하게 된다. 뇌에서는 생명 유지에 대한 긴박감과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고 사냥을 하기 위한 전투 태세에 임할 것을 우리 몸에 명령한다. 그렐린 호르몬이 분비되는 공복 시기에 두뇌는 축적된 지방을 연소시켜 에너지로 사용한다. 공복은 지방 분해 호르몬을 분비하여 살을 빼주는 공짜 트레이너인 셈이다.
따라서 다이어트 실패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렙틴 호르몬과 그렐린 호르몬에 대한 예의 주시가 필요하다. 렙틴 호르몬을 높이는 몇 가지 방법을 추천하면 다음과 같다.
1. 음식을 천천이 먹는다 : 식사 시간 20분 후부터 활동하는 렙틴 호르몬을 위해 여유 있게 식사할 것을 권한다,
2.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 공복 시간이 길어지면 식탐 호르몬인 그렐린의 증가로 다음 식사 시간에 폭식을 유발한다.
3. 식이 섬유를 많이 먹는다 : 적은 양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있어서 렙틴의 분비를 촉진한다.
4. 단백질 섭취를 늘린다 : 단백질은 그렐린 분비를 억제하고 공복을 완화시켜준다.
5. 혈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는다 : 현미밥, 통밀, 콩류 등은 혈당을 천천히 낮춰주고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6. 걷기 운동을 자주한다 : 렙틴 분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진정한 다이어트는 뇌 속에 답이 있다. 렙틴과 그렐린은 시상하부의 만복 중추와 섭식 중추에서 쉴 새 없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체중 조절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방법은 뇌를 깨워 렙틴 호르몬의 작동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