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불행하게 사는 확실한 방법
건설현장에는 서울 각지의 인력소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다. 아침 조회가 끝난 후 포디엄, 오피스, 레지던스, 호텔, 전망대, 기계설비, 시설안전, 환경, 전기, 양중, 취사지원 등의 근무지로 배정받는다. 아침에 근무지가 정해지면 그날 하루 동안 바꿀 수 없기에 사람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어디에 속할지 눈치를 보았다.
근무지를 배정하는 인사권은 직영반장이 가지고 있다. 아침마다 줄을 세워 인원수에 맞게 사람들을 배분하는데 직영반장 자신과의 유대관계, 친분 등을 고려하여 근무지를 배정했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그날 하루 흙먼지가 휘날리는 곳에서 땀을 흘려 무거운 시멘트를 나를지, 마음 편히 빗자루질을 할지 결정된다.
사람들은 인사권을 가진 사람 앞에 순한 양이 되어 고개를 숙인다. 아침 조회 때 인원을 배분하는 반장뿐만 아니라 각 부서의 반장들도 인사권을 가진다. 필요에 따라 야간작업에 들어갈 인원을 충원할 수 있는데, 야간작업을 하면 늦게까지 일하는 만큼 하루치일당을 더 받게 된다. 그래서 야간작업이 있는 곳은 늘 사람이 몰렸으며 ‘야간 고시’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마냥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보다 평소 반장과 친분을 유지하며 ‘정치’를 잘했던 사람이 우선적으로 뽑혔다. 나와 친했던 형은 인사권을 가진 반장이 보이면 한걸음에 달려가 등과 어깨 등을 주물러주었으며 홍삼, 비타민 등을 챙겨주고 어떨 때는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완공일이 다가올수록 인부들을 줄였는데, 그런 소식이 들려올 때면 반장에게 술을 사거나 창고에 믹스커피를 사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꼭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간사하고 영악한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성과가 나거나 공로가 생기면 오롯이 지시한 반장 개인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일을 하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그 잘못은 당사자 혹은 아랫사람들을 향했으며 공통의 책임이 있다면 대부분 그중 약자를 향했다.
나와 함께 안전시설반에서 일하던 형이 있었다. 작업 도중 형의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전감시단은 형의 사고를 확인한 후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그러자 상급자가 나타나 형의 발 상태를 확인하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윗분’이 와야 한다고 했다. 30~40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형은 “다친 사람 앉혀놓고 뭐하는 겁니까? 병원으로 보내주세요!”하고 항의했다. 그제야 주변 사람들은 형을 부축해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에서도 시민들 눈에 다친 형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도록 안전요원들이 둘러쌌다.
형은 사고가 일어난 지 한 시간 반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관리자는 형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는커녕, 상습적으로 다쳐서 보험을 타려는 거 아니냐면 CCTV를 확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늘 이런 식이었다, 인부가 다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당사자를 욕했다. 나와 동갑내기인 한 청년은 작업 도중 손목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산재처리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치료가 끝나고 다시 출근한 그는 3일 후 해고되었다. 어느 날은 조회시간에 작업 중 위급한 상황이 생기거나 사람이 다치면 119에 신고하지 말고, 꼭 반장과 안전감시단에게 얘기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옆에 있는 아저씨께 이유를 물어보니, 건설현장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시청에서 제재가 들어와 공사를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람보다 다른 가치가 더 귀한 세상, 이런 기막힌 현실이 너무 슬펐다.
건설현장 일을 오래한 사람들은 젊은 사람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하며 버릇처럼 말한다.
“젊은 사람이 이런 데 있지 말고 얼른 회사 취직해야지.”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너 계속 여기 있으면 낙오자 된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일에 자부심을 갖거나 직업의식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업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열악했다. 새벽 일찍 달을 보고 출근해 달을 보고 퇴근하며, 주말과 평일의 구분 없이 일했다. 건설현장은 사회보장시스템에서 열외 되어 있고 모든 소요비용은 오롯이 개인의 부담이었다.
이토록 찬란한 빌딩이지만, 이런 빌딩을 세우기 위해 더러운 똥 벼락을 맞는 사람들이 있다. 이 빌딩의 간이화장실 철수작업은 거의 내가 했다. 간이 화장실을 철수할 때는 오물 파이프 안에 고여 있던 썩은 각종 씨앗과 똥 찌꺼기들이 온몸으로 떨어진다. 사다리에 매달려 작업해야 했기에 눈을 감는 것 외에는 얼굴에 떨어지는 똥 오물을 피할 수도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도저히 즐기기 힘들었다. 이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이었다면 똥 벼락도 기꺼웠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나는 불행했고 끔찍했다.
인생을 불행하게 사는 확실한 방법은 하기 싫은 일을 돈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다. 행복하려고 돈을 버는 건데 행복을 팔아가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 난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불행해진 사람일 뿐이다. 돈 외에는 그 일을 하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