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알베르 카뮈 1941년 作 <시지프의 신화>

나는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완전하게 바꿨다는 말을 좀처럼 믿지 않는다. 오랜 시간 책을 읽어왔지만, 특별히 지금 내 기억속에 남는 책을 꼽자면 다섯 손가락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감동의 시간적 지속력은 약하다. 책 한 권이 아니라, 인간은 읽은 책의 양만큼 조금씩 삶을 바꿔가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20년 전 신뢰했던 문장이 현재에 와선 어쩌면 미숙한 말장난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은 회심 혹은 반성을 통해, 자신의 삶의 궤적을 조금씩 바꾸어가는게 아닐까 싶다.

내게도 삶을 바꿨다고 표현할만한 책은 있었다. 서서히 책이라는 사물의 마력에 빠져들 즈음이었다. 알베르 카뮈라는 똑똑하고 잘생긴 프랑스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2차세계 대전을 전,후로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사조에 바탕을 둔 작품을 썼던 사람이다.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뫼르소'라는 주인공의 이름이나 `태양빛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소설 <이방인>의 모티브 같은 건 들어봤을 듯하다. 또, 그의 유명한 소설 <페스트>는 전염병 하나가 한 도시를 무참하게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인간이 이 불가항력적인 힘에 맞서, 어떻게 대항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 소설에 빗대자면, 소설가 정유정의 <28> 같은 작품들이 카뮈의 <페스트>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는 소설이다.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은 나의 20대를 점령했다. 그가 쓴 작품들을 나는 그 시절 열심히 찾아 읽었다. 책을 꾸준히 읽기로 결심한 후, 처음 전작으로 읽은 작가가 바로 그였다. 20대의 어떤 감성이 이 작가에게 이끌리도록 했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이란 20세기 중반에 유행한 실존주의의 문학적 기운을 담아냈다. 알베르 카뮈의 당대 경쟁자였던 철학자 사르트르만큼 난해하진 않지만, 그의 문학은 삶과 죽음, 신과 운명, 등 철학적 문제와 맞서 싸운다. 카뮈의 문학이 그러한 색채를 띤 것은 왜일까. 그것은 시대와 개인이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 그가 나고 자란 알제리의 알제라는 도시는 프랑스의 통치를 받는 세계였다. 카뮈의 증조부는 가난한 프랑스 이주민으로 알제리에 정착했다. 하지만 가난은 오랜 시간 이 가족을 옭아매는 밧줄이 되었고 카뮈는 고교시절, 천재성을 알아차린 스승 장 그르니에가 아니었다면, 1930년 알제 대학에 입학하는 걸 포기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가 작가로서 발돋음하던 시기 발발한 2차 세계 대전으로 유럽은 문명사에서 최초의 대량학살을 경험하고 있었다. 히틀러의 나치가 수백만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살육하던 시기이며, 조국 프랑스가 나치의 침략으로 무너져내린 때도 바로 그 때였다. 카뮈는 이 잔혹한 인류사의 한 장면을 모두 목격했다.

둘째, 그는 태생적으로 몸이 몹시 약했다. 17살의 나이에 결핵이라는 중병을 앓기 시작해 일생, 그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는 이러한 경향으로 항상 죽음이라는 문제나 인간의 운명이란 주제로 관심을 돌렸으며, 작품 활동에 그러한 경향성을 담아냈다. 실존주의 철학은 무신론을 기반으로 한다. 카뮈 역시, 일생 신을 믿지 않았고 종교를 부정했다. 신과 종교를 부정하는 사람이 도달하는 철학적 입장은 무엇일까.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일 것이다. 카뮈는 다행히 그 두가지에서 벗어난다. 그러면서, 유럽의 유명한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를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 자살에 대한 찬사를 하고 있다"(시지프의 신화)고 비꼰다. 그는 부조리(허망)에 대한 극복의 문제(반항)를 자신의 문학적 토대로 삼았다.

알베르 카뮈(1913 - 1960)

1941년에 탈고된 카뮈의 에세이 한 편은 그의 자전적인 인생론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카뮈는 그를 출세시킨 소설 <이방인>을 탈고한 그 이듬해, 연속해 두번째로 <시지프의 신화>라는 철학적 논고 한 편을 발표했다. 내 20대의 어느 시간을 멈추어 서게 만들었던 문장들, 어쩌면 지금도 그 어떤 청춘들에게 한번쯤은 호소력 짙은 문장과 매력적인 논리로 다가설만한 이 작품은 2차대전의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유럽 땅, 여기저기서 쓰여졌다. 이 에세이에는 일생 문학으로 형상화시킨 생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과 극복의 논리가 구현된다.

카뮈는 `삶이 부조리하다'고 결론 짓는다. 이때 부조리(허망)의 출현이 극적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부조리의 감정은 어떠한 길모퉁이에서 그 누구의 얼굴에라도 덮쳐올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유리로 된 칸막이 저쪽에서 전화를 건다. 그 음성은 들리지 않지만, 그 상대 없는 무언극, 몸짓만이 눈에 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쏙 떠오른다." 카뮈는 그 어떤 시대의 사람도 느낄만한 기계적 삶의 자동성에서도 부조리를 느낀다. "기상,전차,네 시간 근무,점심 식사, 전차, 네 시간 근무, 저녁 식사, 취침..." 이 반복적인 삶의 종착은 죽음이다. 그러나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태연히 살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불합리고 비논리적이다. 카뮈의 이러한 삶에 대한 절망과 불안은 동양적 사유로는 충분히 논파될 수 있다고 본다.

삶을 살아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삶이 꼭 해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의미를 가져야만 하는가.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도 삶의 이유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선, 침묵하는 것을 공자는 <논어>에서 말한다. 공자는 귀신에 대해, `경원(敬遠), 즉 공경하되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서양철학의 계보를 이어받은 카뮈에게는 부조리는 합리적 사유의 끝에서 만난, 절망 같은 것이었다. 그는 부조리의 극복 방안을 제시한다. 삶에 정면으로 맞서 `반항'하는 것이다. 그날 그날을 정열과 자유를 갖고 살아가는 것, 그때 우리는 인간과 세계의 한계, 그 부조리를 응시할 수 있다. 자살이 부조리에 항복하는 것이고, 희망이 부조리에 대한 회피라면, 반항은 생의 디테일한 모든 고통을 삶의 일부분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시지프가 부조리한 영웅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이해했다. 그는 그의 고통으로서만이 아니라 정열로서도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멸시, 죽음에 대한 증오와 삶을 향한 정열은, 온갖 존재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일에 전념해야 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그에게 내린 것이다. 이것은 지상의 정열을 위하여 지불하지 않으면 안될 대가다. " 시지프의 신화

그리스 신화 속에는 시지프라는 강도가 등장한다. 그는 비록 강도였지만 현명하고 신중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는 신들을 경시하고 그들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지옥에 끌려온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였고, 신들은 그 바위를 언덕 꼭대기로 굴려올리는 강제노동형을 부과했다. "경련이 인 얼굴, 바위에 비벼대는 뺨, 진흙으로 뒤덮인 바위 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 그 바위 덩어리를 고정시키려고 버틴 다리, 다시 시작하려고 쭉 뻗은 팔, 아주 인간적이고 믿음직스런 흙투성이의 양손"을 통해, 그에게 부과된 노동이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바위는 언덕위에 서면 다시 아래도 굴러떨어지곤 했다. 카뮈는 신화 속 시지프에게서 익숙한 인간의 숙명을 발견했다.

"시지프의 말없는 온갖 기쁨은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은 자기의 고통을 주시할 때 모든 우상을 침묵케 한다." 시지프의 신화

이것은 절대적인 삶에의 헌신과 열정을 불사른다는 점에서 비관과 회피가 아니다. 삶에 적극적인 의미두기를 실천한다는 점에서도 허무주의를 빗겨간다. 이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을 주체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모든 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자유롭다.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 마지막에서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아만 한다"고 썼다. 왜냐하면, 시지프가 산 꼭대기로 바위를 굴려서 올리는 행위의 결과는 허망하지만, 카뮈는 그 바위가 꼭대기로 굴려올려지는 과정속에서 인간의 노력이 갖는 매 순간에서 삶의 이유와 보람을 찾기 때문이다. "이 바위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이 산의 광물의 빛 하나하나가 유독 그에게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시지프의 신화)

나는 카뮈에게서 삶의 태도를 배웠다. 오랜 시간 잊고 있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펴본 <시지프의 신화>는 이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살아갈 방향을 설정해 준 것처럼 보인다. 젊은 시절에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에 더 매달렸다. 인생에서 진지한 질문들을 쏟아내던 시기였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가고 있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등 감당할 수 없는 의문들이 내면을 꽉 채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 만난 <시지프의 신화>는 나의 이 무모한 질문들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알게 됐지만, 그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작가들을 만나는건 쉽지 않았다. 이후, 자주 카뮈의 문장들이 내 입가를 맴돌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나는 `시지프'처럼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삶의 고달픔과 불가항력적인 일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카뮈가 내뱉곤 했던 "이 세계에선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체념 혹은 긍정의 철학에 기댄다. 그리고 다시, 내게 주어진 삶이란 `바위덩어리'를 굴리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한계와 숙명을 아는 자에게 `불평불만'처럼 무익한 게 없다. 신화 속 `시지프'의 노동과 열정은 그 자신의 미래와 운명이 해명되지 않았지만, 얼마나 숭고한 땀방울을 만들어내는가. 여기에 게으름이나 투정이나 불성실 등 인간세계의 악습이 개입할 여지는 조금도 없다. 반복되는 매일 매일의 삶은 권태와 의문을 불러오지만 우리는 무언가에 열정을 불사를 때, 그것을 잊는다. 시지프가 땀방울을 흘리는 동안, 그는 삶의 정체와 자신의 숙명을 묵묵히 견디어 내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어떤 영웅도, 어떤 천재도, 그가 살아 생전에 성취한 결실을 놔두고 죽는다. 시지프의 바위가 정상에서 다시 언덕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듯, 우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는 비극이다. 이 조건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마약같은 형이상학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견디어내며, "자유와 정열'로서 창조하고 받은 잔은 기꺼이 마시겠다는 자세, 그것이 바로 카뮈의 `반항의 철학'이다.

책이 삶의 나침반이 되던 시절이 20대였다. 나는 그 이후, 제법 많은 책을 읽고 있지만 인생을 바꿀만한 책과는 쉽게 다시 만나지 못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고 일찍이 말했다는데, 갈수록 도끼의 날은 무디어져가는 듯하다. 나는 최근 `도끼'와 같은 책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좋은 책에서 흘러나온 문장은 독자의 영혼을 적시고 그를 점령하며, 결국 책의 주장대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에 이르도록 한다. 하나의 세계관, 작가의 감수성에 공감하고, 닮아가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일, 그러한 책을 만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책과 멀어져버렸고, 책이 지식과 지혜의 지름길이라는 말을 믿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삶의 모든 진정성 있는 변화를 도모하는 이들은 오늘도 조용히 책장을 넘긴다. 인생을 바꿀 책 한 권은 어느 도서관의 서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진정한 독서란 그러한 책 한 권을 만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