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통해 배우는 것
한번은 큰아들에게 십이지(十二支)에 관한 그림책을 사준 적이 있습니다. 큰아들은 그 책을 한동안 즐겨 읽었습니다. 띠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그 무렵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띠와 자기가 알고 있는 모습을 비교도 해보고, 띠가 들어가 있는 속담의 뜻도 알아봤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속담을 ‘누가 듣든 듣지 않든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험담하는 상황과 이 속담을 연결 짓습니다. 말조심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말자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듣든 듣지 않든 그 사람을 흉보지 말자는 것이죠. 아들과 얘기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아직 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요. 그러니 애당초 남을 욕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아이들에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의 뜻을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커가면서 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못마땅히 여기는 걸까요. 아이들을 보면서 비난하지 말자 다짐했습니다. 누군가의 의견을 비판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까요. 아이들을 키우면 반성할 일이 많아집니다. 그렇게 조금씩 더 커간다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틀을 깨뜨리는 배움은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엉뚱하기도 한 그들의 순수함은 차갑게 얼어붙은 어른들의 영혼과 생각에 금을 내는 도끼가 될 때가 많으니까요.
큰아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빠, 여름방학이 끝나면 바로 겨울방학이 되고 또 봄방학이 이어지면 진짜 좋을 것 같아”
“왜?”
“계속 노는 거잖아!”
아이답다는 생각을 하며 저는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언제 마시는 물이 제일 시원할까?”
“그야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시원한 물이지.”
“아니야, 엄청 목이 마를 때 마시는 물이 가장 시원해. 땀 흘린 다음 씻는 게 개운하고 배고플 때 먹는 밥이 제일 맛있지. 방학도 맨날 쉬면 지겨울지도 몰라. 학교에서 공부한 다음에 즐기는 방학이 제대로지 않겠어!”
냉장고에서 꺼낸 물이 가장 시원하다는 말만 계속 하는 걸 보니 아이들은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에 이 말을 곱씹어보니 제 생각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우리는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걸까요. 물론 고생 끝에 낙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 믿음이 힘든 오늘을 버티는 동력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못한 채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요. 고생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 떳떳한 대가는 반드시 희생이 따른다는 논리.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기다리는 우리가 막연히 가슴 한쪽에 품고 있는 희망은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다시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빠가 생각해보니까, 방학이 계속되는 게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방학하면 이렇게 맨날 시원한 바닥에 누워서 얘기도 할 수 있고 싸우기 놀이도 하고, 자전거도 많이 타고, 강가에 고기도 잡으러 갈 수 있고 할 수 있는 게 많잖아.”
아이들을 스펀지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속도로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의 이런 학습 능력을 간과한 채 교육이라는 획일적인 틀을 씌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적절한 방치심.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게 아닐까요. 아이들이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거나 함께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성장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계획한 대로 따라가는 것은 그들의 인생이 아닙니다. 스스로 개척하고 성장해 자신의 보물 상자를 열도록, 그 과정에서 진정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의 보물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바로 부모들의 책임이 아닐까요. 아이를 키우며 일상의 대화에서도 고민할 거리가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습니다. 일상에서 아이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다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아이 셋 키우는 남자의 칼럼 다음 편 ‘아이를 보며 깨닫는 것’에서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들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