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영화 <죽여주는 여자>
우리 영화에서 쉽게 다루지 못한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위의 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으로 이승에서의 삶에 대해 어떤 미련이나 집착도 갖고 있지 않은듯한 화자가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마주하는 태도가 아름다운 시어를 통해 묘사된 작품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끝이 있을 수 밖에 없기에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 그래서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한 죽음. 때문에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만은 없기도 한 것이 바로 죽음인데, <죽여주는 여자>는 우리 영화에서 그동안 쉽게 다루지 못했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품으로,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도 고민해야 되는 현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 남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살고 있던 집은 편안한 안식처였지만
그 집을 벗어나서 마주하는 세상은 그야말로 '생존의 장'으로 변합니다
이제 가진 것이라고는 '몸'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라도 팔아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65세 할머니 '소영'(윤여정)과 그녀가 잠시 맡아주기로 한 코피노 소년 '민호', 다리에 장애가 있었던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윤계상)과 이들이 모여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었던 트랜스젠더 '티나'(안아주)까지, 각기 남다른 사연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한 집에 모여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보편적인 사회의 시선을 따르자면 사회적 약자 혹은 소외받는 이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서로 돕고 도우면서 살아가던 그들에게 그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던 사연들은 어쩌면 우리 영화가 잘하는 '신파'로 빠질 여지도 충분히 있었지지만 그런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은 감독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이제는 많이 퇴색되어버린 '이웃'의 정을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영'이 그 안식처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게 되면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집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당장 하루 하루의 삶도 걱정해야할만큼 불안정했고 따가운 시선까지 받아야만 했던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인 문제'가 담겨 있는 작품
'잘 먹고 잘사는 것' 뿐만이 아니라 '잘 죽는 것' 역시 고민해야 하는 시대
이처럼 <죽여주는 여자>는 결코 평범하진 않은 일을 하고 있는 소영의 시선을 주로 따라가는 작품으로, 그 시선속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인 문제'가 담겨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온전한 사회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지 않은 대한민국이기에 현 시대의 노년층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어려움들,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 팔아도 단돈 천원 벌기가 힘든 현실과 자식들에게까지 외면받으면서 가난 속에 방치되어 홀로 외롭게 살고 계신 어르신들,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OECD 국가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률과 자살율을 영화의 이야기속에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죠.
다시 말해 이제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잘 죽는 것' 역시 고민해야 하는 시기와 직면하고 있음을 밀하고 있었던 <죽여주는 여자>였는데 이는 우리 영화에서 보기 드문 이야기이긴 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기 때문에 무겁고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 아니 살아서 버티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극중 대사는 죽는 것만큼은 스스로의 의지대로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존엄사'에 대한 화두를 넌지시 던져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논쟁적인 화두면서 결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그것을 말이죠.
▣ 그 모진 풍파와 상처뿐이었던 삶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왔던 소영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가슴속 커다란 구멍, 그 공허함과 슬픔을
훌륭하게 표현해내신 윤여정 배우, '좋은 배우'라는 표현만으론 부족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소영'을 연기하신 윤여정 배우님으로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홀로 이끌고 가다시피하고 있는 그녀야말로 이 영화의 7할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 모진 세상의 풍파와 상처뿐이었던 삶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왔지만 가슴에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심연을 갖고 있었던 극중 '소영'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계셨던 윤여정 배우님. 그 기나긴 외로움과 죄책감에서 비롯하여 갈 곳이 없었던 코피노 소년 '민호'를 돌봐주고 집없는 고양이에게도 밥을 주셨던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결코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묻어나고 있었던 소영의 눈빛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결코 쉽지 않으셨을 것 같고 감정 소모 역시 심하셨을 '소영'을 훌륭하게 연기하신 윤여정 배우님께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