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7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이 등장한다. 만일 내가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나는 결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가해자들은 분명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상태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나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지 않은가. 가해자가 감옥에 들어갔다가 출소해 세상에 다시 나온다면, 나는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 할까? 한편으론 궁금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영원히 그들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궁금하면서도 궁금해하고 싶지 않다는 이중적인 마음이랄까? 왜냐하면.. 잘 살고 있다고 하면 억울하고 화가날 것 같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더 불행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각 사연의 주인공의 되어 생각해본 것 뿐임에도 이렇게 여러 생각이 드는데, 진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어떠하겠는가..
이런 범죄들은 왜 이렇게 끊이지 않는걸까. 어째서 악당들은 자꾸 나타나는 걸까. 범죄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는 없는걸까?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여러 생각들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가독성은 무척 좋은데다, 재미있어서 폭 빠져서 금새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천사의 나이프>가 무척 궁금해졌다. 기회가 되면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이야기는 어릴적 누나를 잃어야 했던 범죄 피해자의 유족인 슈이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호프 탐정사무소에서 탐정으로 일하는 슈이치는 의뢰인들로부터 세상에 다시 나온 가해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의뢰인들의 의뢰를 해결하며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누나의 가해자들에 대한, 자신의 응어리를 풀기 위한 조사도 함께 진행하게 된다.
첫 의뢰인은 11년전 아들을 살해하고 소년원에 들어간 사카가미라는 남자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를 용서할 수 있는지 판단해 달라는 노부부의 의뢰였다. 자신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노부부의 말에도 썩 내키지 않았던 의뢰지만, 결국 맡게 된다. 두번째는 19살의 젊은 청년으로 16년전 자신의 동생을 죽인 여자를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그 다음은 임종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의 소원을 위해 살인자로 복역 후 출소한 동생에게 어머니의 상황을 전해달라는 의뢰였다. 이렇게 여러 사건들을 가지고 띄엄띄엄 그를 찾아오는 의뢰인들.. 의뢰가 들어올때마다 슈이치는 자신의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몇일 휴가를 내고 누나를 죽인 가해자들을 찾아 나선다. 과연 슈이치는 그들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 걸까? 악당은 정말 악당일 뿐인걸까? 강력범죄의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끝이 없다. 때문에 범죄에 대한 처벌이 좀더 강화되어야 한다.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정말 오랫만에 괜찮은 사회파 소설을 만난 것 같다. 한번쯤 꼭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나를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하지 말아야 하는가.. 넌 어떤 모습을 봤다면 나를 용서해도 좋다고 호소야 부부한테 말했을까?"
사카가미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다른 질문을 하지. 넌 네 누나를 범하고 죽인 놈들의 어떤 모습을 봐야 용서할 마음이 들까?"
사카가미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놈들이 형무소에서 나와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과거의 죄를 용서할 수 있나? 누님의 무덤이나 네 앞에서 울며불며 용서를 구한다면 넌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악당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아. 그래서 용서라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걸 구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아.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아.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라는 것다."
이것이 이 남자의 본심이라면 참으로 가엾다.
"이게 너의 인생인가?"
"그래.. 나란 놈은 죽음이 닥쳤을 때도 빼앗아 온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을 저울에 재보겠지."
사카가미는 나직이 대답했다. - P. 242~2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