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작가라고 부르기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작가가 있을까. 사랑의 낭만과 현실에 발끝을 붙인 방황. 헤르만 헤세의 글에는 늘 이런 것들이 가득하다. 비교적 덜 유명한 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표제작부터 너무나도 헤세답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언제나 행복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들의 방황 때문에 괴로워하는 기색이 더 짙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반짝이는 삶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그 몇몇 순간들 때문에 마음 졸이는 그들의 시간이 값져 보이고, 그들의 인생이, 우리 인간의 삶이 지닌 영롱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아픔을 청춘과 엮으며 고통 끝에 맺게 될 열매를 바라보며 힘을 내야 한다는 금욕적이고 학대적인 청춘 담론은 정말이지 탐탁지 않다. 청춘이 아름다운 건 지금부터 그 언제까지 누리고픈 달콤한 행복을 탐닉하기 때문이지, 고통을 참아내기 때문이 아니다. 청춘이 젊은 세대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고 짚을 때에도 으레 그렇듯 말이다. 청춘이 고통받아도 아름다운 건, 그 험난함이 낭만적인 행복을 위해 스스로 감내한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이 강렬해 아픔까지 견디게 했을 뿐.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기준에 맞추고 기대에 부응하려 하는 과정에서 오는 고통은, 그냥 고통이다. 그게 청춘의 것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청춘이기에 괜찮을 이유도 없다.

헤세의 이야기의 이들 역시 사람과 사람이 사회를 구성해 산다는 점에서 오늘의 사회와 그리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낭만적 꿈에 젖어 고통으로 뛰어든 청춘을 만나기가 쉽진 않다. 꽤 제멋대로 사는 편인 나조차도 조심스러운 매일이니까. 핑계를 찾자면 이미 타의에 의해 앓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헤쳐나가다 보니 아름다울 수 있는 청춘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것 아닐까. 세계 1차 대전의 풍파를 평화를 원하는 독일인으로서 견딘 헤세가 이런저런 글들에서 수없이 청춘의 아름다움을, 인생의 가치를 보여줄 때마다 나는 자꾸 초조한 마음이 든다. 고통은 분명한 현실이지만, 인생의 청춘에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움 또한 현실일 텐데 종종 그걸 잊곤 하니 말이다. 삶의 아름다움이 사그라든다고 느낄 때마다 헤세를 처방해야 할 것 같다.

이성과 책임감은 갓 피어난 사랑의 감정을 이기지 못했고, 사랑의 감정은 양심의 가책에서 오는 씁쓸한 뒷맛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바래지도 약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마리아는 그를 좋아했고 그도 그녀를 좋아하고 싶었다. (55쪽, 한스 디를람의 수습 시절) 

심한 폭풍우가 물러가고 여름도 나이를 먹으며 사려 깊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는 듯 사랑의 깃발을 펄럭이며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나날을 항해했다. 하루하루를 황금빛 희망으로 채우고는 다가왔다가 반짝하고 가버리는 날들을 그저 들뜬 기분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붙잡으려고도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136쪽, 청춘은 아름다워)

그날도 삶은 역시나 확신했던 대로 맥이 빠졌고, 토요일인데도 월요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날들보다 세 배는 더 길고 세 배는 더 지겨운 월요일의 냄새가 났다. 삶이란 저주스럽고 성가신 것, 기만적이고 역겨운 것이었다. 어른들은 마치 세상이 완벽한 것처럼 반쯤은 신이라도 된 양 행동했지만, 우리 소년들은 쓰레기고 인간 말종에 지나지 않았다. (311쪽, 어린아이의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