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담그고 사는 사회를 지옥이라 말하며 불행을 자조하는 나라. 요즘 내 눈에 비친 대한민국과 청년층의 모습이다. 시린 바다에 가라앉는 생명들을 보던 즈음부터 확신하게 된 것이지만, 대한민국 청년층에 속하는 나 또한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경제에 대한 그림이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긴다. 이곳이 지옥의 어느 한 구역쯤은 될지도 모르겠다. 젊은이들이 희생해 세운 역사 이전으로 시대가 역행했다고들 하지만,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때만큼 강한 움직임을 일으키지 않는다. 광화문에 사람이 쓰러지는 날에도, 역사의 왜곡이 코앞에 닥친 날에도 SNS에는 반려 고양이의 예쁜 사진을 올리기에 바쁜 게 오늘의 젊은이다.

옛날이라고 모든 젊은이가 거리로 나갔던 건 아니었겠지만, 확실히 오늘의 젊은 층이 정치, 사회, 경제에 갖는 관심은 희박하다. 그나마도 타인의 그릇됨을 지적하기 위해서거나 자신의 옳음을 인정받기 위함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희망을 가진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역시 85년생 젊은이인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우리와 비슷하게 불행한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왜 행동하지 않는지에 대해 논한다. 그가 찾은 이유는 이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점. 희망이 있을 때 현재의 불행을 인지하고 미래의 행복과 비교해 불행하다 느끼지만, 오늘의 젊은이들은 희망이 없으니 현재에 만족해버린다는 것이다.

'사람이 미래'라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대규모 인재 채용을 해 오던 대기업이 20대 청년에게 명예퇴직을 강요하기도 하는 시대다. 수혜 가능성이 묘연한 연금을 박한 생활비에서 떼어내며 점점 더 많은 노년층을 젊은이들이 나날이 힘들게 부양해야 하는 시대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위해 구축한 시스템에 청년들은 보상받지 못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근근이 살아야 개인의 삶이 지속되는 현실이니 미래의 희망은 물론, 대안을 고민할 위기감까지 가질 여유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갖 자극을 주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시시각각 쏟아져나오고 접근도 너무나 쉬운 일상에서 젊은이들이 즐겁게 살기 역시 어렵지 않다.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주목하는 건 젊은이들의 이런 기이한 행복이다. 변화하려 노력하는 어려움보다 적당히 포기하고 만족해버리는 것을 택한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 그의 또래에 대한 진단이자, 우려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자가 이들에게서 보석처럼 발견한 건 공동체다. 국가적 단위보다 작고 다양하게 구성된 공동체들은 젊은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연대의식을 잃지 않게 한다. 가장 고무적인 건, 평소 각자의 세계에만 집중하던 이들임에도 동일본 대지진 때처럼 기회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행동하기까지 한다는 점이며,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어 보인다.

기회를 만나지 못한 젊은이들은 희망과 준비 없이 맞이한 미래를 겪게 될 테고, 기성세대의 외면이 지속된다면 기회를 만난다 해도 미래는 어디까지나 불투명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바라는 것처럼 모두가 젊은이들의 행복, 결국 모든 개인의 행복을 함께 고민할 수 있다면 다시 희망이 생기고 진짜 행복의 조짐이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할 수 있는 시대만 되어도 우리의 이런 비관론이 조금은 수그러들지도 모른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에 젊은이들의 '생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던 이유가 설명된다. 말하자면, 그 시기의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믿었다. 더불어 자신들의 생활도 점차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품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불행하지만,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135쪽)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겉보기에 참으로 풍요로워 보인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풍요로움과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젊은이의 빈곤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것(빈곤)이 젊은이들에게 현재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으로 나타나게 될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91쪽)

실리실익을 따지지 않는 공동체가 증가하면서, 승인 욕구를 채워 주는 것들이 분산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보장해 주게 되었다. 이런 공동체에서 제공받는 포근한 상호 승인 덕분에, 젊은이들은 굳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모두 해결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혹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더라도, 그 어떤 불안감에 시달리더라도, 상호 승인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는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불만, 막연한 미래가 주는 불안도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통해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젊은이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탓이기도 하다. (300쪽)

'일본'이 사라지더라도, 일찍이 '일본'이었던 나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국가의 존속보다도, 국가의 역사보다도, 국가의 명예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3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