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하얀리본', '아무르' 등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이제는 세계적인 거장 감독으로 그 이름을 떨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초기작 '퍼니게임'을 봤습니다. 참고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본인이 직접 이 영화의 리메이크를 2007년에 만들었습니다. 거의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똑같게 말이죠.
오스트리아의 여름은 아름답지만 약간 서늘하다. 티롤계곡의 저녁은 예고 없이 어두워지곤 한다. 호숫가 별장으로 향하는 게오르그 가족의 자동차를 내려다보는 높은 카메라는 이들의 왜소함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들은 헨델, 모짜르트를 좋아하고, 함께 휴가를 즐길 이웃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이웃의 태도는 어딘가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이상한 느낌이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게오르그의 부인 안나는 짐을 대충 정리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이때 찾아든 낯선 청년 피터, 이웃의 에바가 보냈다며 달걀 4개를 빌려 달라고 한다.
이웃 에바의 사촌이라고 나타난 피터, 청년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 전화기를 물에 빠뜨리지 않나, 달걀을 깨먹질 않나, 달걀을 더 내놓으라고 태연자약하게 요구하질 않나, 낯선 청년 폴의 등장은 더욱 안나를 불쾌하게 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안나는 그들에게 나가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청년들의 태도가 돌변하고 안나와 게오르그는 어쩔 줄 몰라한다. 골프채로 가볍게 게오르그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관객을 향한 눈짓과 함께 재밌는 게임이 시작된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게임이 펼쳐진다.
<갑자기 게오르크 가족의 별장에 들이닥쳐 살인게임을 하는 파울(아르노 프리쉬)과 피터(프랑크 지에링)>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철저하게 끔찍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미하엘 하네케의 연출력을 만나 굉장히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하엘 하네케의 엄청난 연출력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영화를 보면서 단지 연출력 하나만으로 소름이 돋은 적은 드물었습니다는 점에서 미하엘 하네케가 왜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는 감독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굉장히 독특한 연출을 하고 있는데 바로 주인공이 극의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오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게오르크 가족의 별장에 들이닥쳐서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물인 파울이 화면 정면을 보며 관객과 소통을 시도합니다.
파울이 죽인 개를 찾아다니는 게오르크의 부인 안나를 지켜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관객을 향해 윙크를 한다던지 게오르크 가족들을 소파에 앉힌 뒤에 9시까지 그들이 살아있을지 죽어있을지 관객에게 물어보는 등, 이런 방식으로 관객을 극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입니다.
그와 동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용 전개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일반적인 헐리우드의 싸이코 스릴러물의 관습적인 전개를 시종 뒤집고 비틀면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웬만한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우면서 더한 긴장감을 갖게 합니다.
특히 리모콘과 관련된 이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을 보면 이미 관객으로써의 주도권은 빼앗겼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렇게 관객을 살인 현장의 무기력한 방관자로 만드는 이 영화는 '파울'이라는 극의 외부와 내부를 오가는 인물을 통해서 미디어에서 표현되는 폭력에 심드렁해지는 관객들에게 그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들이미는 동시에 미디어 속 폭력에 경계의 태도를 가지게 합니다.
이것은 극 중 파울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파울이 안나에게 죽음의 게임을 제안하는데 게오르크는 대꾸하지 않으면 그냥 빨리 끝날 거라고 말합니다. 그때 파울은 게오르크에게 그것은 반칙이라고 하고 갑자기 화면의 정면을 쳐다보면서 관객에게 말합니다.
[납득할 만한 전개를 하고 제대로 끝내야지, 안 그래?]
이 대사 자체가 돈을 주고 이 폭력적인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즉 미디어 속의 폭력은 돈까지 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보는 현대인들을 꼬집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장면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이 영화는 사실 직접적인 수위를 따져보면 그렇게 잔인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다른 고어물이나 좀비물이 더 잔인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런 영화들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점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후의 상황을 롱쇼트로 차갑게 찍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여 전체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면서 클로즈업을 통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게 하는 그 차갑고 날카로운 연출법이 소름을 끼치게 합니다. 미하엘 하네케가 인간적으로는 어떤 인물인지는 몰라도 감독의 타이틀로 이야기한다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연기 역시 굉장히 훌륭합니다. 특히 파울 역을 맡은 아르노 프리쉬의 연기가 돋보이는데 뭔가 정중하고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시한폭탄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온몸에 둘러싸서 연기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말만 하고 있는데도 그 잔혹함은 물론 악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퍼니 게임'은 다른 분들에게는 적극 추천하기에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너무 잘 만들어서 기분 나쁠 정도의 영화이니까요.
<파울과 피터에게 잡혀있는 게오르크의 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