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합니다. 내 짝이 되면 좋을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떤 이유로든 이뤄질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연이 아니었다 말하고 미완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겨두곤 하는데요. 여느 영화 같으면 엇나간 사랑에 대한 추억을 곱씹는 두 남녀의 아련한 감상을 늘어놓으련만, 영화 무뢰한은 재곤과 혜경이 살아가는 살벌한 세상처럼 살벌하고 어둡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데요. 자칫 식상할 수 있었던 사랑 이야기도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남다른 깊이와 넓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치명적인 멜로, 영화 무뢰한입니다.

   지켜보다 지키고 싶어진 남자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살인범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의 혈흔이 낭자하고 죽어 잠든 피해자의 곁을 지키는 여자의 집착이 혼재된 사건 현장에 도착한 한 남자,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면서도 날선 눈빛을 하고 있는데요. 그의 이름은 정재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들어 눈에 띄는 성과도 거둔 실력 있는 형사인데요. 그런데 글쎄요... 그에게서 풍겨지는 분위기에서는 형사라고 생각할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차에서 내려 사건 현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꽤 오랫동안 이어지는 어둡고 음침해지는 터널과 좁은 골목길은 앞으로 펼쳐질 재곤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한데요.

   혜경과 재곤의 만남은 거짓에서 출발합니다. 오직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살인자의 애인인 혜경에게 접근했던 거죠. 하지만 그녀를 지켜볼수록 범인보다 그녀에 대해 알게 됩니다. 남들 몰래 흘린 눈물과 외로움, 술집 여자라는 신분에 가려졌던 순수함까지... 그리고 그것들은 형사로서의 거리를 두는 데 익숙했던 재곤의 마음을 흔들기에 이르는데요. 선을 넘는 순간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면서도, 더 이상 그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남자를 다 아는 여자

   위험한 세계에서 살면서 쌓인 연륜 때문이었을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재곤의 거짓말을 꿰뚫어 본 여자, 과연 노련하다 싶었죠. 혜경은 본능적으로 남자를 경계하고 외면하는데요. 입에서 나오는 말이며 몸 구석구석에 새겨진 상처들의 이유도 모두 거짓인 줄 알면서도 늘 자신 곁에 있어주는 재곤에게 마음이 열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거짓의 무게는 거짓을 뱉어낸 자가 짊어지는 것이기에, 충분히 흙탕물 같은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그녀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데요. 말하지 않아도 남자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여자와 여자의 여린 속내까지 지키고 싶어하는 남자... 충분히 연인이 되어도 좋을 두 사람이지만, 현실은 그들의 사랑을 이뤄줄 맘이 없는가 봅니다.

   아니야... 진짜 같애

   사랑은 단순하지만 상황은 복잡합니다. 두 사람 다 각자에게 주어진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마음은 남자로 하여금 단 한 번의 진실을 뱉어내게 하는데요. 무미건조하고 가벼운 한 마디... 여태껏 남자가 나열했던 거짓말들과 다를 게 없건만 용케도 여자는 또 알아봅니다. '이 두 사람은 정말 완벽한 짝이었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마저 들게 했던 장면인데요. 영화 자체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방식이 현실 속에서 받여들여지기는 어렵겠죠. 그저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P.S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열연에 시선을 빼았겼는데요. 절대 미워할 수 없는 팜므파탈의 연기를 보여준 전도연의 내공은 역시 그녀다웠고,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연심과 형사라는 입장 사이에서 복잡했을 내면을 깊이 있는 눈빛으로 표현해 낸 배우 김남길을 발견할 수 있어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잊고 있던 또 한 사람, 사랑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또한 쫓기는 상황에서도 자기 여자의 나체를 보이기 싫어 옷을 덮어주던 혜경의 애인을 연기한 배우 박성웅은 이번에도 역시 엄지 척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