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에서 송변호사가 울분을 토해내듯 말했던 대사이자 많은 분들의 심금을 울리고 공감을 얻었던 대사인 "국가란 국민입니다"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헌법에도 명시되어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그럼에도 여전히 국가는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고 국가에 대항하여 약하디 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심지어 '의회 민주주의'의 발산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조차 이런 영화가 나오는 것만 보더라도 말이죠.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만큼 더 가까이 다가오는 위협의 손길들

< ▲ 테러 용의자의 변호를 맡게 된 '마틴', 하지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위협의 손길 역시 다가오는데.. >

<프라이버시>의 원제는 'Closed Circuit'으로 우리말로 직역하면 '닫힌 순환, 즉 폐쇄 회로'라고 할 수도 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CCTV'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영화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더군요. 수많은 CCTV가 설치되어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런던 시내의 시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서 영화는 시작되는데 그 테러의 용의자로 잡힌 터키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가 갑자기 자살을 하면서 마틴(에릭 바나)은 이 사건을 맡게 됩니다. 처음에는 승산이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마틴, 하지만 다시 사건을 조사해가는 과정에서 사건에 엄청난 음모가 있음을 알게되고 그 배후에는 거대한 권력이 존재함을 알아차리는데 그렇게 사건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자신은 물론 함께 사건을 맡은 옛 연인이자 '특별 변호인' 클로디아(레베카 홀)에게도 위협의 손길이 다가옴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그 '실체가 있는 위협'은 마틴과 클로디아의 과거를 들추며 협박하기도 하구요.

음모론적 이야기이지만 이게 자화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의지할 곳이라곤 단 두 사람뿐.. >

이처럼 <프라이버시>는 음모론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으로 한 개인을 이용하지만 '용도폐기' 해야되는 상황에 다르면 그야말로 인권을 철저하게 짓밟아버리는 행태. 하지만 그럼에도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 없음은 물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는데 그것은 그 용의자에게는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 없었던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실에 조금씩 다가갈수록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눈길들은 어디에든 위치하고 있었고 어느 누구 하나 맘놓고 신뢰할 수 없었던 현실에서 발버둥쳐봐야 그야말로 공허한 아우성일뿐이었으니까요. 너무나도 미약했던 두 변호사와 비교되는 강력한 상대는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니 알 필요도 없어 보였고 오직 그것이 국익에 해가 되는 것인지 아닌 것이지만 중요할 뿐이었던 것인데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답답함이 가득 느껴집니다.

정보의 은닉과 사생활 침해, 그 이율배반적인 행태들

< ▲ 증거가 있다고 해도 국익에 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저 은닉하면 그만입니다 >

'국민들의 알권리'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자신들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정보는 철저히 '비공개'로 돌리면서 은닉하지만 반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사생활을 파헤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들은 이런 영화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꼭 영화의 이야기만이 아니라고 생각되기도 했고 특히 영화의 그 마지막 멘트는 정말 싸늘한 비수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속에서 주위 사람들 모두가 다 의심스럽게 느껴지는 영화의 분위기에서는 쫀득쫀득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데, 마치 드넓은 템즈강에서 홀로 카약을 타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힘에 맞서 고군분투했던 그들의 '계란의 바위치기'는 어떻게 됐을까요? 다만 '정치 스릴러'라고 할 수 있었던 영화는 표면 위로 드러나는 사건보다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야말로 '암투'라고 할 수 있을만큼 수면 아래서만 진행되기 때문에 영화의 분위기 역시 무척이나 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영화 <프라이버시>

< ▲ 드넓은 템즈강에서 홀로 타는 카약, 영화의 이야기는 이 사진과 닮아있었습니다 >

<노팅 힐>,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과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제작사로 유명한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한 스릴러물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많이 생겼었던 영화 <프라이버시>는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지만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부'였기 때문에 '누가 범인이다'라는 과정을 찾아가는 일반적인 스릴러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짜릿한 반전이 느껴지거나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작품도 아닙니다. <프라이버시>는 그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싸움을 통해 너무나도 무력할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는 영화였었고 그를 통해 현실을 자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