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와 사냥을 가라. 날마다 멀리, 더 멀리, 또 더 멀리. 그리고 시냇가이든 난롯가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쉬어라. 새벽이 되기 전에 근심에서 깨어나서 모험을 찾아 떠나라." 200여 년 전 <월든>의 작가 소로우가 남긴 말이다. 그가 이 말을 남긴 시절에도,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성공을 찾아 헤매며 인생을 낭비했다. 인생의 목적은 대단한게 아니라, 하루치 만큼의 시간을 잘 소비하는데 있다. 하루를 기쁘게, 긍정적으로, 그리고 우울하지 않게 보냈다면 가치있게 보낸 것이다. 세속의 기준에서 성공은 자연이 아닌 도시속 삶을 지향한다. 하여, 셀러리맨들은 도시를 떠나고 회사를 떠나 결국 해고가 되면 인생이 끝장날 것처럼 생각한다.
하여, 회사에 충성을 다한다. 상사의 굴욕적 언사에도 참고, 협박엔 기죽는다. 이 순응적인 인간은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그는 안정을 얻지만 인생을 잃는다. 왜냐하면, 삶이란 어느 순간부터 일과 도시와 온갖 비즈니스에 예속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 쳇바퀴를 벗어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각인시킨다. 그런 보통 사람의 삶을 다룬 영화가 나타났다. 벤 스틸러 감독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최근 개봉했다. 내가 이 영화속에서 본 것은 월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일상이자 가치관이자 삶이었다. 어쩌면 새해가 밝은 지금 이 영화를 본 직장인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듯 하다.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라이프>라는 잡지의 필름 담당 에디터로 일한다. 그런데, 어느날 출근했더니 회사 임원인 테드 핸드릭스(아담 스콧)는 사원들을 모아놓고 폭단 발언을 한다. 오프라인 잡지 <라이프>는 폐간될 것이며, 온라인 잡지 체제로 전환될 것이다. 비필수 요원들로 판명난 사람들은 전원 해고될 예정이다. 물론 멍때리기 잘해 테드에게 찍힌 소심남 월터 미티는 해고 대상자에 암묵적으로 들어갈 게 뻔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에게 하나의 임무가 주어진다. 유명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이 보낸 25번째 필름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 필름에는 `삶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숀은 말했다. 이제 월터 미티는 생애 첫 모험을 결심한다.
이곳저곳을 방랑하는 사진가 숀 오코넬은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아프카니스탄, 히말라야를 종횡무진한다. 이 뒤를 쫓는 월터 미티는 그의 흔적을 따라가며 온갖 모험을 경험한다. 술주정뱅이가 조정하는 헬기를 타고 그린란드의 찬 바다속에 빠져보기, 그곳에서 상어떼와 깜짝 조우하기,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풍광을 배경으로 스케이트 보드 타기, 화산폭발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하기,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뇌물 바쳐 살아남기, 히말라야를 두 명의 셀파와 함께 등정하기, 그리고 히말라야에 산다는 전설적인 표범을 렌즈에 담아내기. 집 회사 집 밖에 몰랐던 월터 미티가 이제 연애정보 사이트 프로필 란에 써 넣을 경력치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모험을 해내고 만 것이다.
영화는 월터 미터가 본래 상상속에 빠져들고, 멍때리기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인디언 머리(모히칸)를 하고 스케이드 보드 챔피언에 올랐고, 유럽 여행을 계획할 정도로 활동적이던 그는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 들었다. 그 이후, 자신의 꿈과 모험심을 오직 상상력에 기대 해소할 수밖에 없던 그는 삶속에 즐거움과 짜릿함을 추방하고, 축 처진 어깨로 매일 출퇴근을 삶의 전부인냥 생각하며 살아갔다. 그 생활을 벗어날 수 없는 구질구질한 이유를 대가면서 말이다. 월터 미티가 한 일이라곤 비행기 티켓을 끊고, 그저 배낭을 챙겨 떠난게 전부다. 그 이후, 꿈같은 현실이 다가왔고 주인공의 삶이 바뀌었다. 모험이 그댈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대가 애써 재미없게 살았을 뿐이다. 우리 시대의 월터 미티들에게 아직 때가 늦지 않았음을 전해주는 영화적 메세지는 무척 고무적이다.
<라이프> 잡지의 설립 목표는 이런 것이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 우린 장애물을 보면 피했고, 서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꺼려했으며,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그게 바로 월터 미티와 평범한 우리의 공통점이다. 이 영화를 보면 우리가 삶을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단 느낌이 든다. 삶이 우릴 속인게 아니라 삶이 속이도록 우리가 방치한 것 아닐까? 내 삶에 모험이란 어울리지 않다고 끝없이 자학하진 않았을까? 재미란 특정한 그 누구, 짜릿함이란 내 삶에 불가능하다는 포기가 결국 우리의 인생을 흥분되는 사건들과 순간들로부터 멀어지게 했음이 분명하다.
그린란드,아이슬란드, 히말라야의 현지 로케이션으로 사진작가들도 욕심날만한 풍경을 영화 속에 담아 낸 것은 영화적 주제와 맞아떨어지며 관객의 눈과 마음에 큰 감동을 남겼다. 영화 전체적으로 잔잔한 스토리 전개는 캐릭터의 현실성과 균형감을 유지하며, 영화적 완성도를 높여주는 효과를 냈다. 그 가운데 설레이는 연애담을 양념처럼 발랐다. 여주인공 크리스틴 위그(셰릴)가 부르는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우주의 괴짜)`라는 곡은 연인을 향해 부르는 세레나데이자, 주인공의 모험심을 북돋으는 응원가로 귀에 착착 달라 붙는다.
현대인의 밋밋한 삶에 변화의 터닝포인트를 안겨주는 영화였기에 러닝타임 내내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월터 미티처럼 우리도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삶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숱한 이유들을 가득 던져주는 영화였다.
개츠비의 영화 읽기 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