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조금만 읽어볼까~ 하고 집었는데 단숨에 읽어버렸다. 현재 사회적으로 너무나도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를 소재로 삼은 책이다. 왕따를 당하던 아이가 자살을 하고 난 뒤 같은 반 아이들의 삶과 남겨진 가족의 삶을 전개해놓았는데, 읽는내내 답답하고 꽉 막힌듯한 마음 안에 슬픔도 함께 가득찼다. 왕따..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왕따라는 건 정말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을 크게 부풀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끌어모아 결국엔 집단으로 단 한사람을 공격하게끔 주도하는 이가 분명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주동자가.. 그 주동자는 그런 행동을 누구에게 배운 걸까?....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배우고 습득한다. 그러니 결국은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배운 아이들이 이런 일을 만든다는 얘기가 된다. 거기에 특히나 경쟁을 유도하는 요즘의 교육현실도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스펙 쌓기에 힘을 쏟고 인성 교육은 뒷전인 교육 현실이..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고마워.
용서못해.
미안해.
이 세 가지 마음을 남기고 후지슌은 세상을 떠났다. 유서에 이름이 등장한 네 명은 후지슌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등에 짊어진 채, 그 이후의 인생을 걸어가게 되었다. - P13
미시마와 네모토는 집요하게 후지슌만을 괴롭혔다. 나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다. 1학년 때 녀석들과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작년보다 훨씬 낫다고. 작년에는 닥치는 대로 동급생들을 괴롭혔단다.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얻어맞은 아이도 있고, 걸레 조각으로 변한 운동화를 시궁창에서 발견한 아이도 있었다. 그해는 달랐다. 콤비를 이룬 미시마와 네모토가 괴롭히는 사람은 오직 후지슌뿐이었다. 즉, 후지슌이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우리는 무사히 있을 수 있다. 반대로 그것이 끝나면 다음에는 누가 표적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후지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교묘하면서 교활하기까지 했다. 후지슌은 분명히 우리의 제물이었다. - P17
알면서도 모두가 등을 돌린 사이.. 더없이 괴로움에 학교생활을 해야했던 후지슌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유서를 한장 남긴 뒤 자살을 한다. 유서에는 절친, 가해자 둘, 짝사랑의 상대.. 총 네 명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절친이라 지명되어진 사나다 유와 짝사랑의 상대로 지목된 나카가와 사유리 두 사람은 얼결에 학교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사나다 유는 어리둥절.. 그렇게 친하다고 볼 수 없는 사이인 자신이 왜 절친으로 지목되었는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멍하기만 하다. 후지슌의 죽음이 매스컴을 타면서 많은 비난의 눈초리가 학교와 학급 아이들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을 죽인 녀석과 죽게 내버려둔 녀석들의 반이군." - P55
장례식장에 참석한 학급 아이들을 향한 다하라 기자의 질책.. 다들 고개를 떨구고 만다. 절친이면서도 구해주지 않았다며 후지슌의 아버지와 후지슌의 동생 겐스케에게 비난을 받은 사나다 유.. 머리 속이 새하얘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아이의 불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했기에...
나이프의 말.
십자가의 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뿐, 마음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을 꺼야. 나이프의 말은 가슴에 박히지."
"예...."
"당연히 굉장히 아파. 쉽게 일어나지 못하거나 그대로 치명상이 되는 일도 있어. 하지만....."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 때는 찔린 순간이야."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 P74~75
여자 기자 혼다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사태가 안정될때까지 한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유와 사유리는 책임감을 짊어진채 후지슌 어머니의 초대로 집을 왕래하게 된다. 가기 싫은 마음 반, 사유리에 대한 걱정반, 책임감 반.. 어쩌지 못하고 그렇게 후지슌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고 또 졸업을 하면서 사유리와 함께 도쿄의 대학에 합격해 동네를 벗어나게 된다.
"생각해봐, 같은 반 학생이 죽었어. 더구나 자살이고. 더구나 왕따 때문이야. 그런데 동요하지 않을 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 게 이상하잖아? 그렇게 생각 안해? 그런 때는 동요해야 하는 거고, 동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안 그래? 인간은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동요하게 돼 있어. 충격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그 고민과 괴로움을 가르쳐주는 게 학교가 아닐까? 그게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그는 힘주어 말하고 나서야 우리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깜짝 놀란 시선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미안해"라고 말하고 나서 헛기침을 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슌스케 사건만이 아니야. 조금 전 말했던 교통사고도 마찬가지지. 그때 구경꾼은 집에 간 다음날 다른 날과 똑같이 저녁을 먹었을까? 오늘 깜짝 놀란 일이 있었어, 라고 말하며 이야깃거리로 끝났을까? 한 사람의 죽음을 보거나 겪었는데, 그렇게 가볍게 끝나도 될까? 인간의 목숨은 그런 것일까?"
말투는 다시 뜨거워졌지만 목소리는 조금 전과 미묘하게 달랐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슬퍼하는 것이었다. - P271~272
도쿄 생활을 하던 중 몇년만에 다시 만난 다하라 기자와의 대화를 통해 장례식날 그가 왜 그런말을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 뒤로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한다.
그제야 겨우 깨달았다. 아무리 아둥바둥해도 도망칠 수 없는 이유를...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도망쳤다. 하지만 정말로 도망쳐야 할 상대는 따로 있었다. 나에게는 그녀였고, 그녀에게는 나였던 것이다. - P288
오랫동안 알고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사귀었던 유와 사유리. 하지만 대학교 2학년 가을 무렵부터.. 서서히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후지슌에 관한 이야기를 피했고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 부자연스러움을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서로의 생활로 너무 바빴다. 결국 두 사람은 깨닫는다. 후지슌의 죽음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도망쳐온 것 뿐이라는 것을.. 서로에게 편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날 밤, 아들이 잠들고 나서 아내가 말해주었다. 이시자키란 아이는 반의 영웅이라고 한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며 성품도 좋다.
"사실 그 애는 절친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야."
"하지만 이시자키는 우리 애를 절친이라고 여기지 않을 거야."
불현듯 후지슌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 짱"이라고 부르며 말을걸 때의 얼굴이었다.
너도 그랬어...?
나에게는 이시자키만큼 뛰어난 면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억에서 되살아나는 후지슌은 눈이 부신 듯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전혀 몰랐던가...?
초등학교 때라면 또 몰라도, 중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계속 모르고 있었던가...?
절친이라는 것은 죽고 싶을 정도의 고민이 있을 때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인 동시에, 털어놓지 않아도 눈치를 채거나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도 뭔가를 해주려고 하는 상대이다. 너는 그렇게 간단한 것도 몰랐단 말인가...? 후지슌의 입가가 움직인다. 눈이 부신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움직인다. 그래도 유 짱은 내 절친이야. 그 목소리가 들린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깜짝 놀라서 "왜 그래?"라고 묻는 아내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려는 순간,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통곡하고 말았다. 나는 갓난아이처럼 울었다. - P329~330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결혼을 한 유.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아들을 통해 그때의 후지슌을 돌아보게 되고.. 후지슌의 마음을 깨닫는다. 그가 유서에 적어냈던 '절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하면 어쩌지? 아니 내 아이가 다른 아이의 불행을 보고도 피하면 어쩌지? 과연..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우게 될까.. 내 아이는 어떻게 자라게 될까..' 걱정과 고민이 한없이 밀려들었다. 왕따를 방관했던 아이들과 가해자들 모두 똑같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받는 것을 보니..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자라게 되니.. 영향을 안 받는게 이상한거겠지..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좀더 신경을 쓰고 보살피는 것이 이런 일을 좀더 예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 아닐까.. 왕따 문제.. 언제나 해결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너무 기계적으로, 너무 경쟁적으로 자라게 만드는 환경이 너무 원망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