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 에이크번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여섯 개의 실내 세트와 어두운 조명 등 연극적 요소를 영화 속에 조화시킨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 서로 얽히고 설킨 파리지앵 여섯 명의 복잡한 마음이 어떻게 통하게 되는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2006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히로시마 내 사랑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02879061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52484921

난 인생을 혼자서 살아가는 거라 생각해요

인생을 혼자서 살아가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대답을 머뭇거리며 말하지 않는 알랭 레네의 ‘마음’은 그의 작품을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와 ‘히로시마 내 사랑’으로서만 기억하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는 무척 생소한 느낌이 드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난해함을 넘어서 악몽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아먹기가 어려웠던 그의 이전 두 작품들을 떠올린다면 ‘마음’은 좀 더 편하게 감상할 수 있고 생각보다는 이해하기가 어느 정도는 가능한 작품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영화 방식을 바꾼 것인지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묻어나면서도 어쩐지 개인의 고독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엇갈림에 대한 알랭 레네 특유의 여러 주제들은 여전히 동일하게 반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여러 평론가들이 말하듯이 연극적인 방식이 많이 가장 특징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연극적인 성향을 앞세우기 보다는 몇몇 장면들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 같고, 중요한 순간들에 적극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와 같은 방식이 어떤 의도 속에서 이뤄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마음’은 모든 장면들이 세트에서 촬영되었다고 생각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폐쇄적인 느낌이 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각기 다른 공간 속에서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어떤 대화들을 나누고 자신의 생각들을 전달하는지를 그리고 그 전달되는 생각들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은 과연 그들의 대화들에 어떤 동의를 혹은 반론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이 꽤 많기 때문에 특별히 누가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각각의 인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전혀 서로와 관련이 없기도 하지만 그 느슨한 관계와 얽히고설킴 속에서 서로에게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놓게 되거나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은 알아가게 되어가고 있는데, 그렇게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떠다니는 듯 아래로 내려다보기도 하고 흐르는 듯 그들의 주변에서 맴돌거나 뒤따라 다니기도 하면서 그들을 훔쳐보는 듯이 혹은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이 하고 있다.

오해와 엇갈림

후회와 실망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외로움

‘마음’ 속 등장인물들의 정신없는 삶 속에서 조금씩은 지쳐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비슷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그들의 겪는 일상적인 혹은 느닷없는 상황들에 공감하게 되거나 당황하게 되기도 하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약간의 위안을 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누군가가 내게 위안을 주는지를 그리고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 그들의 여러 대화들 중에서 후반부에서의 늙은 바텐더와 부동산에서 일하는 여성과의 대화는 알랭 레네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섬세하게 그리고 무척 고심한 흔적이 느껴지도록 담아내고 있는데, 집안 거실에서 이뤄지는 대화에서 의도적으로 점차 방안을 어둡게 만들고 그들의 대화가 진전되고 서로의 다른 생각들을 얘기하면서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시키는 눈이 내리는 상황을 실내에서 눈이 내리도록 연극적인 연출을 함으로써 그들이 서로에게 다가가고 또한 멀어지는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담아내고 있다.

어떻게 본다면 지나치게 장식적인 방식일 수 있고, 과감함을 넘어서 지나친 과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글로서 설명을 듣는다면 우스꽝스럽게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장면을 실제로 본다면 무척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느껴진다는 생각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서로의 헤어짐을 확인하기도 하고, 떠남을 보여주기도 하고, 기다림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음을, 화해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작품은 마무리 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결론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저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한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낸 것 같기는 하지만 알다시피 알랭 레네가 보통내기의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찾아낼 수 있는 몇몇 가지들은 이정도가 한계일 것 같고, 아마도 이정도로 만족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느긋함을 느끼게 되리라 생각되지 않았는데,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와 ‘히로시마 내 사랑’과 같은 작품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봤고 어떻게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는지 내 자신이 대견스럽게 생각될 정도였던 것을 떠올리면 그가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기도 하다.

하지만 그 부드러워짐 속에서 여전히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에 오랜 기간의 고민을 다시금 접하는 것 같다는 어려움 또한 느끼게 된다.

뚜렷한 답은 없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무겁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