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정적만이 감도는 연구실에 출근하여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는 레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로봇 프라모델을 수집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에게 문제 많은 남매,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수상한 할머니가 짐처럼 남겨진다. 설상가상 혼자 살던 아파트에 불이 나고, 어쩔 수 없이 문제 많은 가족들과의 예측 불가능한 동거가 시작된다.

은둔형 외톨이 형 모리, 드세고 제멋대로인 여동생 리사로 인해 레이의 평온했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고 피부색까지 다른 수상한 할머니까지! 할머니의 정체가 끝내 미심쩍은 레이는 몰래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수집해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는데…”

오기가미 나오코의 최신작 ‘토일렛’은 여전히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세계와 정서를 보여주고 있고, 그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인원이 참석한 장례식을 보여주며 작품은 시작하고 있고, 매일을 똑같이 살아가며 삶과 인생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이 살아가는 레이와 조금은 이기적인 리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는 모리 그리고 말없이 그들과 함께 하는 일본인 할머니가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가는지를 그리고 그렇게 다가가게 되어가며 변화되는 그들의 삶을 보여주며 외로움이라는 병에 걸려 지금-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금은 서로에게 다가가기를 권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기가미 나오코 특유의 유머는 여전히 곳곳에 담겨져 있고, 잔잔하게 이야기는 흘러가면서 조금씩 변하게 되는 그들의 삶의 모습들을 따스하게 바라보고 있다.

세명의 형제자매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만 그들의 삶을 조금씩 변하게 만들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과 함께 그녀에게 의지하고 영향 받으면서 그동안의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는 세명의 모습을 담백한 일본 음식처럼 화면 속에 담아내고 있고,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보이는 몇몇 놀라움과 기상천외함은 지루함을 갖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자신이 어떤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지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오기가미 나오코는 여전히 잘 알고 있으며 부족함 없이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것들을 그리고 채우고자 하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채우고 있다.

물론 오기가미 나오코는 이전 작품들과 동일한 분위기와 정서를 전달하려는 것에만 만족하는 게으른 감독은 아닌데, 이전 작품들의 연장선상에만 머물지 않고 ‘토일렛’은 단순히 이국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일본인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배우들을 등장시키며 조금 더 자신의 작품이 국제적 / 보편적인 성향을 갖도록 하고 있고, 이런 그녀의 의도가 어떤 호응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게 생각된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영화팬들에게도 그녀의 작품이 한국 / 일본과 같은 호응을 이끌어내게 된다면 그녀의 작품은 분명 보다 국제적 / 보편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녀가 갖고 있는 작품의 성향이 보다 지역적 / 특수성을 갖고 있는 정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평가를 받게 된다고 해도 그녀의 작품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갖게 될 이유는 없겠지만 결과에 따라서 그녀의 작품에 대한 의미는 분명 달라질 여지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 이외도 ‘토일렛’에서는 이전의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이 ‘돈’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모리와 리사는 자신들이 간절히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할머니에게 돈을 얻으려고 하고 있고 레이는 3,000 달러를 갖고 어떻게 써야 할지를 항상 고민하면서 지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가 돈을 많이 갖고 있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리사와 모리가 할머니에게서 얻게 된 돈을 갖고 하려고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매우 간절했던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전 작품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변화된 느낌을 갖게 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오기가미 나오코가 자주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혈연이 아닌 ‘관계로서의 가족’에 대해서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다루고 있는데, 할머니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하는 과정에 알게 된 출생의 비밀과 함께 그렇게 알게 된 진실에 충격을 받은 레이가 그의 친구와 모리에게서 듣게 되는 대답과 충고는 크게 부각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가족이라는 것과 관계라는 것을 조금 더 확대시켜서 혹은 개방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려는 것 같다.

무기력하기만 삶에서

외롭고 숨어있기만 한 삶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삶에서

그런 삶에서 조금은 벗어나기를 오기가미 나오코는 응원하고 권유하고 있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그동안의 자신들의 삶에서 조금씩은 벗어나면서 조금 더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깨달은 삶의 만족과 아름다움은 이 작품이 의도하고 있는 깨달음이고 정서일 것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이 전달하려고 하는 의도를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의문스럽게 느껴진다.

자극적이지 않은 일본 음식과 차를 대접받는 느낌의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은 여전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의문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