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남은 건 오직… 로프, 칼 그리고 500ml 물 한 병 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127시간의 간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년, 홀로 등반에 나선 아론(제임스 프랭코)은 떨어진 암벽에 팔이 짓눌려 고립된다. 그가 가진 것은 산악용 로프와 칼 그리고 500ml의 물 한 병이 전부. 그는 127시 간 동안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는 친구, 연인, 가족 그리고 그가 사고 전에 만난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침내 살아남기 위한 결심을 굳히고, 탈출을 위해서는 자신의 팔을 잘라야 하는데……”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예상하지 못했던(혹은 예상을 넘어선) 성공이었고,

그 감당하기 쉽지 않은 성공을 거머쥔 대니 보일의 다음 작품은 조금은 조촐한 느낌이 감도는 ‘127 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그가 영국적 전통(보다 정확이 말하자면 ‘찰스 디킨스 식의 이야기 구성’)으로 진입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었는데, 그런 방식으로 ‘127 시간’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 작품은 대니 보일 식의 ‘크리스마스 캐롤’과 같은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주인공이 고집불통에 자린고비 정신으로 무장한 스크루지는 아닐지라도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이전과는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구성은 대략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한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의 남성을 보여주면서 그에게 걸려오는 연락을 통해서 그가 가족 행사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작품은 시작하고 있고, 흥겨운 음악과 함께 작품은 진행된다. 대도시의 모습과 그 대도시에서 온갖 사람들이 뒤엉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그런 대도시의 풍경을 떠나 광활하다는 표현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그랜드 캐년의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은 서서히 진행된다.

자주 찾아 왔었는지 길을 잃은 이들을 안내해주기도 하고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있던 주인공 애론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서 좁은 계곡 사이에 있는 돌로 인해서 팔이 끼어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고립되어 그는 127 시간을 지내며 그동안의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반성을 하고 그리고 수많은 환상과 망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한쪽 팔을 희생하면서까지 삶에 집착하고 있고, 큰 희생을 치른 뒤에 그는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어떻게 보아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야기일 것이고,

보면서도 아주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지는 못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대니 보일은 이처럼 뻔하고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작품에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자주 화면을 분할해 움직임을 보다 역동적으로 만들어내고 있고, 시각적으로 자극적이도록 애쓰고 있으면서, 다양한 음악들을 잘 배치하여 심심하지 않도록 구성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 애론이 점점 지쳐감에 따라 생기게 되는 환상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었고 목숨이 위태로운 경험을 통해서 어떤 반성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그가 그동안 보였던 가족에 대한 무관심함과

가깝던 친구들을 그리고 멋진 추억들을 떠올리는 모습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언제부터인지 느끼게 된 무료함으로 소중하게 생각했던 연인을 떠나보내게 된 기억까지 그는 모든 것을 뒤돌아보게 되고 많은 것을 뉘우치게 된다.

반성적이고

성찰적이면서도

분할된 화면과 뮤직비디오를 연상하게 만드는 연출은 진지하지 않고 경쾌하게 작품을 만들고 있고, 캠코더와 회상을 통해서 한정된 공간에서만 머물지 않고 좀 더 공간이 확장되도록 하고 있다.

절망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주인공 애런의 모습을 제임스 프랑코는 부족함 없이 보여주고 있고, 그는 단순히 잘생긴 배우에서 머물지 않고 좀 더 연기도 가능한 배우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대니 보일 또한 단순히 재능 ‘있던’ 감독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작품을 좀 더 다룰 줄 아는 감독이 되어가는 것 같다. 물론, 좋다고 말하기에는 그리고 충분하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는 하지만 뭔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그동안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었고,

이기적으로만 살아왔던 주인공이 큰 고난을 통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고, 생각하지 못했던 주변을 뒤돌아보고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는 반성적이고 성찰하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심심하게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지 않고 있고, 회상과 상상 그리고 역동적인 화면을 더해서 조금은 날렵한 느낌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

21세기에 어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만드는 것에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아주 빼어나다고는 말하지도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