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전국시대, 끊이지 않는 전란(戰亂)이 만들어낸 '노부시'(野武士: 산적 무리)의 횡포에 백성들이 떨고 있던 그때...

주민들은 황폐한 땅에서 어렵게 수확한 식량으로 한해 한해를 넘기는 빈촌에 살고 있다. 이 빈촌엔 보리 수확이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산적들이 찾아와 모든 식량을 모조리 약탈해 간다. 싸워도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던 촌장의 결단으로 사무라이들을 모집하는데, 이들은 풍부한 전쟁 경험을 가진 감병위(勘兵衛)를 포함한 7명이었다. 감병위의 지휘 아래 마을은 방위태세를 갖추고 전투훈련도 시작한다.

이윽고 산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어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산적들은 전멸한다. 하지만 마을사람들 다수와 7명 중 4명의 사무라이도 목숨을 잃는다. 마을엔 평화가 찾아오고 주민들은 벼농사에 여념이 없다.”

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36103961

빨리 죽기나 했으면 좋겠어요

얼른 죽어서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더 큰 고통이 올까봐 겁이 나요

무언가를 되풀이 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위험성이 있는 새로움을 찾기 보다는 안정된 반복을 선호하거나,

다른 하나는 반대로 새로움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 이상의 것을 반복을 통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거나.

그 이유가 전자라면 나태함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을 것이지만,

만약에 후자가 이유라면 그럴 위험은 조금은 적을 것이다.

아마도 세 번 혹은 네 번째 보게 되는 ‘7인의 사무라이’를 다시 보게 되는 이유는 후자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고, 그렇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이미 이 작품에 대해서 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더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최고작 중 하나인 ‘7인의 사무라이’는 그가 항상 관심을 갖고 있던 여러 요소들이 잘 어울리고 자리를 잡고 있는 작품이며, 항상 그가 목표로 하고 있던 예술적 성취와 상업적 재미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걸작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자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던 혼란기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안정되지 못한 시대에서 살아남으려고 그리고 지켜내려고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 / 사회적 안정이 어느 때보다 절실했던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본 사회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내면의 그리고 구로자와 아키라의 심리적 풍경을 전국시대라는 배경으로 표현하고 있고 그 탁월한 표현력과 재미에 많은 이들은 여전히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작품은 혼란기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은데,

아마도 그는 ‘구원이라는 열망’과 ‘안정이라는 감정’을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그 둘을 항상 자신의 작품에 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 속에서 구원을 그리고 안정을 지독히도 갈망하는 것 같고, 그 힘겨운 과정을 담아내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가 왜 그리도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몰두했었는지 이해가 된다. 몰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7인의 사무라이’는 앞으로 있을 산적들의 습격을 알게 되어 절망감과 패배감에 빠지게 뙨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누구도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한 지배계급에 대한 불신, 그리고 자신들에게 놓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한 주인 없는 무사들을 고용하기까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 절망을 벗어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행동한다.

그들을 가엽게 여기게 된 무사와 함께 하나둘씩 모아지게 되는 동료들.

무사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그 동료들을 찾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당시의 시대상과 농민들의 삶의 고단함은 농민들이 어떤 불안감 속에서 삶을 살았는지와 그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두려움’이라는 인간을 나약하게만 만드는 감정에 휩쓸려진 사람들의 모습과

여러 죽을 고비를 넘김으로써 조금이나마 (농민들에 비해서) 초연한 모습을 보이는 무사들의 대비되는 모습.

그리고 그 두 입장 사이에서 그들 모두를 비웃는 농민출신의 사무라이(라고 주장하는...) 까지 작품은 조금은 길지만 흥미진진한 상업영화의 모습에서 시대와 계급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담아내고 있는 시대극의 성격 그리고 구로자와 아키라가 항상 관심을 기울였던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예술적인 성취 까지 수많은 요소들이 잘 어우러지고 있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농민(평민)으로 대표되는 피지배계급의 곤궁한 삶과

그리고 그런 삶을 바라보지 못했던 이들(지배계급 / 무사)이 조금은 알아가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깨달음과 이해, 그리고 이를 통해서 생겨나게 되는 연대감과 친밀감은 구로자와 아키라가 자주 꿈꾸었던 세계관을 함축하고 있는 관계일 것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지게 되고,

그 높아진 친밀감으로 인해서 그들은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산적들의 침입을 대비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는 결국 이해일 뿐이고 선발대를 사로잡게 되었을 때 산적들에게 보이는 농민들의 공격성과 적개심은 그 광폭한 분노로 인해서 무사들이 난감해 하기도 하고 당황하게 되기도 한다.

산적의 습격에 대한 예고와 무사들을 모으는 과정 그리고 습격에 대한 대비와 함께 산적들과의 몇 차례를 걸치는 치열한 공방까지 이야기는 서두르거나 급하게 진행하지 않고 서서히 진행시키고 있고 담고자 하고 얘기하고자 하는 것들을 잊거나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고 들려주고 있다.

이야기 진행을 서서히 진행시키고 한 가지가 아닌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더딘 느낌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하나가 아닌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는 생각이 앞서게 되므로 당연스러운 진행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느낌은 날카롭다고 말하기 보다는 폭넓고 묵직하다는 느낌이고 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된다(개인적으로는 상영시간이 2시간이 넘으면 조금은 지친다).

산적과의 공방전이 길게 느껴질 수 있기는 하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처음에는 두려움에 빠져만 있던 농민들이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몇 차례의 전투로 인해서 겪는 슬픔과 고통을 통해서 들려주고자 하는 얘기들도 있기 때문에 들려주고 보여주는 장면들과 얘기들에 경청하게 되는 것 같다.

조금은 기다린 느낌이 든 다음에 등장하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벌이는 마지막 전투는 누구나 인상적이라고 말할 것이고, 몇 번을 보았지만 여전히 인상적이라는 말만 입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작품에서는 비가 내리는 장면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잇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전투가 마무리 된 이후,

마을 사람들과 무사들을 지도한 무사의 입을 통해서 나약하고 두려워만 하고 있지만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농민들이고 그들이 진정한 승자라는 말은 처음도 그랬지만 여전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들의 질긴 생명력에 동의하게 되기도 하면서도 그렇게 살아남았을 뿐으로서 갖게 되는 승리라는 것에 결국 살아남은 자가 승자일 뿐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그리고 슬픈 결론을 다시금 확인시키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살아남은 것만이 올바른 것일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역설이 여전히 옳은 것일까?

‘죽으면서까지 지켜내야 하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라는 질문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든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씁쓸한 결론만이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갑함이 앞설 뿐이다. 그리고 그 갑갑함을 알고 있다는 듯이 영화는 전투로 인해서 죽은 네명의 무사와 마을 사람들의 무덤을 보여주며 작품을 마무리 짓고 있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듯이...

아직은 확고하게 말할 수 없는 것에는 그저 침묵을 하게 될 뿐이다.

참고 : 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 하고도 30분이나 된다. 웬만한 감독이 만약 지금 이런 작품을 만들겠다면 당장 제작자에게 해고를 당하거나 2 - 3부작으로 만들자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소리라도 듣게 된다면 다행일 것이다. 아마도 이런 시도 자체에 대해서 말도 꺼내지 못할 것이니까.

그리고 만약에 만들어진다고 해도 감독도 모르게 수많은 장면들이 잘려나갈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나마 이 작품 이전에 많은 상업적 그리고 비평적인 성공이 있었던 구로자와 아키라였기 때문에 그의 의도가 받아졌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살아남고, 성공하고 볼 일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